막힘없는 논리·자세 당당
출가 망설일때 길 열어줘
조계종에서는 출가연령을 기존의 50세 이하에서 40세 이하로 10년을 낮추기로 하였다. 이유인즉 “세속에서 오래 살다가 오게 되면 수행자로서의 위의를 갖추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다.”는 데 있다. 부처님 당시를 생각해 보거나 계율에 비추어 보면 단순히 나이로 출가의 조건을 삼는 것에는 문제가 없다고는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지만 또 한편으로 종단이 처한 고령출가자 문제의 현실적 어려움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시점에 나는 휘광스님을 생각하게 된다. 스님은 내가 고교를 졸업하기 전 출가를 놓고 수없이 망설이고 할 때 너무도 편하고 자연스럽게 대화의 물꼬를 터주셨던 분이다. 고교시절 불교의 인연을 만나 절에 다니게 되었다. 영등포 집에서 우이동 도선사까지 2시간 걸렸던 거리를 고3이 될 때까지 한 주도 빠지지 않고 열성으로 다녔다. 매주 법회에서 스님의 법문과 철마다 하던 철야정진, 수련회 등이 그렇게 즐거울 수 없었다.
휘광스님은 그렇게 절에 다닐 때 우리 학생회를 지도해주던 법사셨다. 둥글고 약간 살이 붙은 얼굴에 안경을 끼고 항상 바빠 보였던 스님은 마치 대학 강단의 교수처럼 학생들에게 법문을 하곤 하셨다. 절에 다닌 인연이 깊어지면서 너무 어렵고 멀게만 느껴지던 스님들이 점차 가까워져 갔고, 열린 문틈으로 흘낏 스쳐보기도 어려웠던 스님의 방에 들어가 처음으로 차를 얻어마신 것도 휘광스님의 방에서였다고 기억된다. 당시 도선사에는 독성각과 바위틈 사이에 낸 작은 방이 있었는데 그 방이 휘광스님 방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책상하나 놓고 한 몸 누이기도 빠듯한 그 공간에 책이 얼마나 많았던지, 발 디딜 공간도 없이 책이 쌓이고 포개져 있었다. 설법시간에 우리를 그렇게 감탄하게 하고 빨려 들어가게 한 그 법문이 다 이 책들 속에서 나왔다는 것이 실감되는 순간이었다. “스님, 무슨 책이 이렇게 많아요?”물음에 “방이 좁아서 가져오지 않은 책이 더 많아, 박스에 싸서 다른 곳에 맡겨두었는데 나중에 여건이 되면 옮겨야겠어.” “그런데, 이 책들 다 보셨어요?” “그럼 다 봤지. 최근에 산 몇 권만 빼고.”
차를 한잔 마시면서도 나의 눈길은 책 무더기들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모두 손때가 묻어 여러번 잡았던 흔적이 분명하였다. 차를 마시면서 스스로의 무식과 그동안의 교만함에 가슴이 두근거리며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견딜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또래의 다른 법우들 보다 조금 많이 안다고 아는체 하였던 것이 그렇게 부끄러울 수 없었다. “스님 책 몇 권만 빌려주세요.” “왜?” “공부 좀 하게요.” “음~ 네가 볼만한 책이 별로 없는데.” “그래도 몇 권만 빌려주세요.” 떼를 쓰다시피 해서 책을 한 권 골라 받았다. <아함경>에 관한 책이었다. 몇 권 더 빌려달라는 요구에 우선 그 책을 보고나서 다시 오라며 단호한 태도를 보이셨다. 순간 초파일 행사가 끝나고 중국집에서 짬뽕을 사주시던 편안한 모습과 차를 주시던 여유로운 모습은 사라지고 없었다. 정색을 하시고는 “네가 책을 읽겠다는 생각은 기특하지만, 네 수준에 맞지도 않는 여러 권의 책을 가져가면 오히려 공부에 방해가 되니 시키는 대로 해라”며 자칫 겉넘을 수 있는 공부의 길을 잡아주셨다.
스님의 그 건강해 보이는 몸이 밤잠을 잊고 공부하시느라 언제는 법회를 마치고 코피를 쏟기도 하셨다. 시간이 지난 뒤 알게 되었지만 스님은 당시 동국대에 재학중이셨고 당신의 공부가 바쁨에도 법회에 오는 학생들에게 늘 최선을 다하여 소홀함이 없었던 것이다. 언제나 자신 있고 시원스런 목소리에 막힘없는 논리와 당당한 자세는 참 닮고싶은 모습이었다. ‘어떻게 세상을 살아야 할까?’ 또는 ‘사회에 나가서 무엇이 되어 뭘 해야 할까?’하는 고민으로 시간을 엮어가는 청소년기의 되고 싶은 한 ‘표상’으로 충분한 모습이었다.
주변에 출가한 이들 중에 청소년법회나 대학생법회 출신들이 몇 있다. 속가에서 법회와 스님의 인연을 맺어 출가를 결심하게 되는 것이다. 과거에는 어렸을 때부터 절에서 자라 스님이 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제는 그 비율이 줄어들어 거의 미미한 수준이다. 출가연령이 높아지는 것은 청소년, 대학생 등의 젊은 층에게 출가생활의 당당함과 멋을 전달할 포교스님이 부족한 때문이다.
지금은 적지 않은 불자들이 혹 하나뿐인 자녀가 출가하겠다면 허락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나이 든 사람의 출가가 문제가 있어서 제한을 한다면 따로 젊은 사람의 출가를 유도할 방안이 나와야 할 것이다. 출가의 뜻을 일어나게 하고 그 뜻이 잘 익어지도록 지켜주던 휘광스님 같은 스님이 필요한 때다.
이번호부터 12월까지 ‘스님이야기’를 연재하는 주경스님은 86년 동국대 불교학과를 졸업하고 수덕사에서 설정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89년 범어사에서 비구계, 93년 해인사 강원을 졸업했으며 수덕사 포교·교무 국장, 조계종 포교원 포교국장을 지내고 현재 조계종 포교원 신도국장과 서산 부석사 주지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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