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2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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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세·단아·독특한 공간’ 고려전통 계승
◇14m에 달하는 거대한 화폭에 조선시대의 독특한 조형을 보여주고 있는 북장사 괘불탱(1688년, 마에 채색, 1,337×807㎝, ‘한국의 불화 9’).

조선 불화의 조형세계

한국불화의 대표격은 고려불화이다. 특히, 13·14세기에 제작된 고려후기 불화는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적인 문화유산이다. 이에 비하면 조선불화에 대한 관심은 미미하기 그지없다. 현재 시중에 나와 있는 한국회화사나 한국미술사를 보면 고려불화에 대한 설명은 있지만 조선불화는 빠져 있다. 이러한 평가와 대접이 과연 정당한 것일까? 이는 분명 절름발이식 회화사이다. 조선불화가 전개된 5백년이라는 적지 않은 세월만 떠올려도 그처럼 간단히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대부분 개론서는 이미 20년 전에 집필한 것인데, 그 당시에는 조선불화에 대한 연구가 미진하여 그 가치를 충분히 인식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여러 소장 학자들의 의욕적인 연구에 의하여 조선불화의 정체가 한 꺼풀 한 꺼풀씩 드러나고 있다. 그 뿐인가. 불화는 일반 회화와 달리 사람을 압도하는 장엄의 효과가 강하기 때문에 색다른 감동을 자아낸다. 앞으로 출간되는 한국회화사나 한국미술사는 반드시 일반회화와 불화를 총체적으로 아우르는 역사가 되어야 할 것이다.
최근 조선불화에 대한 우리의 시각을 바로 잡아주는 두 가지의 계기가 있었다. 하나는 성보문화재연구원에서 한국의 불화를 집대성하여 도록으로 출간한 <한국의 불화> 전집이다. 이 전집은 탐험가에 의하여 갓 발견된 보석상자처럼 신비로 가득 차 있다. 앞으로 많은 학자들이 신비로운 보석을 갈고 닦을 것으로 기대된다. 다른 하나는 통도사성보박물관에서 연속하여 개최하고 있는 ‘괘불탱 특별전’이다. 우리 미술을 연구하면서 항상 아쉽게 느끼는 점은 유적의 규모가 작다는 것이다. 왜 우리는 돈황막고굴, 용문석굴, 운강석굴과 같은 웅장한 미술은 없는 것일까? 황룡사 9층목탑이 79m의 높이를 자랑했지만, 지금은 휑하니 주춧돌만 남아있을 뿐이다. 이러한 스케일 콤플렉스를 단번에 깨부숴 주는 것이 17, 18세기 괘불이다. 15m에 달하는 크기도 놀랍거니와 세월이 무색할 정도로 완벽에 가깝게 보존된 찬란한 색채와 크기를 뛰어넘는 정교한 문양이 어우러진 조형세계는 보는 이의 가슴을 뭉클케 한다. 두 프로젝트는 현대 불교미술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쾌거로 평가받을 만하다.
조선불화의 역사는 고려불화의 기반 위에서 전개되었다. 섬세한 장식성, 단아한 형상, 그리고 독특한 공간구조 등은 고려의 전통을 계승한 요소이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조선초기인 15세기에 그칠 뿐 16세기에 이미 조선적인 특성이 정립되었다. 이후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여러 차례 변화를 거듭하였다. 그 변화의 진폭도 커서 더욱 다채로운 양상을 띠고 있다. 고려청자와 조선백자가 역사의 맥락을 같이하면서도 그 맛이 전혀 다르듯이, 조선불화도 고려불화와 다른 독특한 조형세계를 간직하고 있다.
우리는 더 이상 조선불화를 외면할 수는 없다. 조선인의 풍부한 상상력과 아름다움으로 엮어진 조선불화의 세계를 올바르게 평가하는 작업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 상상력과 아름다움은 조형의 차원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진리의 세계를 여는 열쇠이기 때문이다.
■경주대 문화재학부 교수

※정병모 교수는 서울시립대에서 건축학을 전공하고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동국대에서 ‘조선시대 풍속화의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이후 풍속화와 판화, 민화 등 민간 회화를 중점 연구하고 있다. 경주대학교 박물관장을 거쳐 현재 같은 학교 문화재학부장으로 있다. 저서로는 <한국의 풍속화>(한길아트, 2000), <미술은 아름다운 생명체다>(다할 미디어, 2001), (도서출판 예경, 2001) 등 여러 권이 있다.
2002-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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