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화서 탱화로
16세기 후반 큰변화…벽화 대신 탱화 등장
조선초 봉정사 후불벽화 고려불화 계승
◇조선초기 후불벽화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봉정사 후불벽화.
불전(佛殿)에 들어가 보면, 중앙의 수미단 위에 불상이 놓여 있고 그 뒤에 후불벽화나 후불탱화가 설치되어 있다. 이들이 중심이 되는 예배대상이다. 고려시대의 사찰에는 지금과 같은 후불탱화가 없었고 후불벽화를 중앙에 세웠다. 후불벽화보다 덜 중요한 불화의 경우는 탱화로도 그려졌다. 이러한 전통은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도 바뀌지 않았다. 적어도 16세기 이전까지는 후불벽화가 중심을 이루었다. 그런데 16세기 후반에 와서 큰 변화가 일어났다. 후불벽화 대신 후불탱화가 등장한 것이다. 1587년에 제작된 석가팔보살도(일본 오사카 시텐로지(四天王寺) 소장)가 그 변화의 첫머리에 해당한다. 이 불화는 지금까지 알려진 것 가운데 가장 오래된 후불탱화이다. 이 불화를 통해 임진왜란 이전에 후불탱화가 조성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후불탱화가 본격적으로 유행하게 된 시기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 끝난 17세기 이후이다. 양란을 전후한 시기에 벽화의 시대에서 탱화의 시대로 옮겨 간 것이다.
1997년 1월 16일 봉정사 대웅전의 후불탱화 뒤에 가려져 있던 후불벽화가 세상에 알려져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이 벽화는 15세기 중엽에 제작된 것으로 조선초기 후불벽화의 중요한 일면을 보여주고 있다. 15세기의 후불벽화로는 봉정사후불벽화가 처음이 아니다. 1973년에 1476년에 제작된 무위사극락적후불벽화가 공개된 적이 있다. 그런데 이 두 벽화는 제작시기가 불과 일이십 년 차이밖에 나지 않지만 그 양식은 매우 대조적이다. 봉정사후불벽화가 고려시대의 모습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는 반면, 무위사후불벽화는 고려와 다른 조선적인 모습을 선보이고 있다. 15세기 후반은 고려적인 벽화에서 조선적인 벽화로 넘어가는 과도기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봉정사후불벽화에서 고려시대의 모습이란 어떠한 것일까? 그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구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주변의 상들은 뒤로 갈수록 작아지는 원근법에 의하여 배치되었으나, 석가불과 양쪽의 보살은 이들 가운데 우뚝 솟아있다. 가까운 것은 크게 보이고 먼 것은 작게 보이는 것은 인간이 지닌 시각의 한계이다. 주변의 상은 인간의 한계에 제약을 받고 있지만, 불과 보살은 그 차원을 넘어서고 있다. 현재 고려시대 후불벽화는 한 점도 전하지 않는다. 현재 남아 있는 고려불화는 탱화이거나 사경화다. 그렇다면 고려시대 후불벽화가 과연 어떠한 모습일까? 현재 남아 있는 탱화와 어떤 점이 같고 어떤 점이 다른가? 이러한 의문들을 한꺼번에 해소시켜 주는 것이 봉정사후불벽화이다. 봉정사후불벽화는 무엇보다도 고려시대 후불벽화를 떠올리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는 점에서 그 역사적 의의를 부여할 수 있다.
■경주대 문화재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