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형진
고려대
물리학과 교수
미국 국방부는 올해 미국대학의 나노기술 연구소를 지원하면서 ‘전투병력 나노기술 연구소’를 설립하겠다고 했다. 이 연구소에서는 나노기술을 전투장비 개발에 응용하는 연구를 하게된다. 나노기술로 개발된 재료는 머리카락의 백 분의 일 정도 두께를 가지는데, 이를 다른 재료와 혼합해 쓰면 기존의 전투복보다 가벼울 뿐 아니라, 온도가 자동적으로 적절하게 유지된다든가 위험한 화학물질 침투를 자동으로 막아주는 전투복을 만들 수 있다.
나노(nano)는 그리스어로 ‘난장이’를 의미하는 ‘나노스(nanos)의 줄임말이다. 현재는 도량형의 접두어로 사용한다. 백 분의 일이나 천 분의 일을 의미하는 센티나 밀리보다 더 작은 단위가 필요할 때 쓰는 접두어가 마이크로(micro)나 나노인데, 마이크로는 백만 분의 일, 나노는 10억 분의 일을 가리킨다. 그래서 1 nm(나노미터)는 10억 분의 일 미터이다. 나노과학은 1 내지 수십 nm 크기의 물질을 그 연구 대상으로 한다. 이는 원자 서너 개를 합한 크기에 해당한다. 이러한 크기가 되면 전혀 새로운 물리적 특성이 나타나게 되며, 이를 적절히 이용하면 대단히 유용한 소재를 만들어낼 수 있다. 한 예로 탄소 나노 화합물을 이용한 트랜지스터는 전극간의 거리가 약 1 nm이고, 한 개의 전자로서 구동되는 것으로서 세계에서 가장 작은 트랜지스터로 이미 개발되었다. 이를 사용하면 정해진 공간에 많은 회로를 집어넣을 수 있는 나노 소자를 만들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고집적 회로는 컴퓨터의 연산능력을 크게 향상시킬 수 있다.
나노기술은 소재 개발 뿐 아니라 원자나 분자의 위치를 대단히 정밀하게 제어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이러한 기술은 하나의 원자에 1 비트의 정보를 저장하게 하여 정보 저장 기술에 획기적인 발전을 기대하게 한다. 이러한 소재 및 제어 기술의 발전은 의학 분야에서는 진단 센서 및 극미세 수술용 기구 개발에 대단히 유용하게 응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나노기술은 아직까지는 여러 면에서 초보적인 단계지만, 앞으로는 마이크로미터 크기의 물질을 다루는 현재의 기술을 대체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생활 환경은 크게 바뀌게 될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아주 작은 세계에서 나온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무언가를 원할 때 그것을 밖에서 찾는 데에 익숙해져 있다. 그래서 인류사에서도 제국주의 시대에는 국가의 부를 축적하기 위해 다른 나라를 무력으로 지배하는 일에 열중하였다.
그러나 자연에 대해 알면 알수록 그렇게 밖에서 얻는 것보다 훨씬 더 큰 것을 안에서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지천으로 깔려있는 모래 속에 반도체를 만드는 재료가 들어 있다는 것을 안 건 얼마 안 되는 일이다. 그리고 나서 세상이 얼마나 바뀌었는가.
우리의 감각 기관은 주로 외부 상황을 알아차리게 되어있다. 몸이 안 좋거나 배가 고픈 때가 아니면 몸 안 상황에 대해 감각 기관은 거의 작동하지 않는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바깥일에 분주하기는 하면서도 자신의 내면을 살펴보지는 않는다. 내시경으로 뱃속을 진찰하기는 하지만 자신의 마음을 스스로 들여다보지는 않는다.
그러나 어떤 가치에도 비교할 수 없는 참으로 진정한 보배는 아주 작은 곳에, 그리고 눈에는 보이지도 않는 마음속에 있는 것이 아닌가.
천하의 가을이 이미 내 뜨락에 다 와 있는데 다시 그 가을을 찾아 나서지는 말아야 할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