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2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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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불화의 조형세계(3)
바다의 관음·산의 관음

우리 나라 3대 관음성지는 낙산사·보리암·보문사이다. 이들 성지는 모두 바닷가에 자리잡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중국의 관음성지인 닝보우(寧波)의 보타산(補陀山)도 이름만 산이지 실제로 가보면 바닷가의 언덕에 불과하다. 우리에게 있어 관음보살은 바다를 배경으로 영험을 주는 분으로 인식되고 있다.
바다가 아니라 산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관음의 이미지가 있다. 당나라 스님 현장(玄  )이 쓴 <대당서역기>에 묘사된 보타낙가산(布  洛迦山)을 보면 산에서 시작된다. 험준한 산꼭대기에 거울같이 맑은 연못이 있고, 그 물이 대하를 이루어 산을 돌아 남해로 흘러가며, 그 연못 옆에는 관자재보살(관음보살)이 거주한다고 했다.
조선불화에서도 산을 배경으로 하는 관음보살을 만날 수 있다. 바로 도갑사 관음32응신도(일본 지온인(知恩院) 소장)가 그것이다. 이 불화는 1550년(명종 5) 인종의 비인 공의왕대비가 인종의 명복을 빌기 위해 이자실(李自實)로 하여금 그리게 하여 전남 영광 도갑사 금당에 봉안한 것이다. 관음보살이 여러 신들의 모습으로 나투어 중생을 구제하는 장면들을 가파른 봉우리와 깊은 산 속에 배치하였는데, 산수화로 분류해도 될 만큼 산수의 비중이 높다. 고려시대 수월관음도가 바닷가 암반을 배경으로 하는 것을 염두에 둔다면 산을 배경으로 하는 관음보살은 조선시대에 새롭게 등장한 형식인 것이다. 조선이 건국된 직후인 15, 16세기에는 중국 북송 때 이성(李成)과 곽희(郭熙)에 의하여 성립된 이곽파(李郭派) 화풍이 화단에 유행하였다. 이곽파 화풍은 울퉁불퉁하게 침식된 산에 두서너 그루의 키 큰 나무가 솟아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 화풍은 원래 중국에서 시작되었지만, 고려에서도 크게 유행하였다. 특히, 수월관음도의 배경이 되는 암반은 거의 이곽파 화풍으로 표현되었다. 조선시대에도 이 화풍의 유행은 수그러들지 않았는데, 15세기에는 안견을 비롯한 이 시기의 대표적인 화가들이 이 화풍을 즐겨 구사하였다. 1550년에 제작된 이 불화도 역시 이곽파 화풍으로 묘사되었다. 산의 위용이 앞 시기에 비해 다소 약화되고 대신 산 사이의 공간이 넓어지는 변화를 보였다. 그래도 아직 위용이 남아 있는 산 속에는 32응신 가운데 22응신의 장면이 배치되어 있다. 이 장면들은 법화경 보문품이나 능엄경에 근거하였을 텐데 아직 확실치는 않다. 관음보살이 산 속에 있든 바닷가에 있든 뭐 그리 대수겠냐만은 조선초기 사람들은 관음보살과 그 응신이 바다보다는 산 속에서 등장하는 것을 더 선호했던 것만은 틀림없다. 이러한 경향은 이 불화뿐만 아니라 조선초기에 제작된 사이후쿠지(西福寺) 소장 수월관음도, 지온인 소장 오백나한도 등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조선초기 불화에 산의 관음이 등장하게 된 이유는 경전과 더불어 당시에 유행한 산수화에서 풀어가야 할 문제인 것이다.
■경주대 문화재학부 교수
2002-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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