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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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산스님 <하>
쉼없는 공부…옥스포드大 박사

국제행사 큰 몫, 든든한 의지처

지금은 승가기본교육기관으로 지정되어 그렇지 않지만 과거 동국대학교는 스님들의 무덤(?)으로 통했다. 어렵게 대학공부를 마치고 나면 환속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4년의 대학생활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인생의 가장 자유로우며 활기가 있는 시간이다. 따라서 공부를 위해 진학한 스님들도 대학의 활기차고 자유로운 분위기에 젖어들 수밖에 없고, 또 아직까지도 군법사라는 제도는 조계종 스님들의 공식적인 결혼을 인정하고 있는 까닭에 환속의 유혹이 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불가에는 ‘굽은 나무가 산을 지킨다’는 말이 있다. 쭉 뻗은 나무는 서까래나 기둥, 대들보 감으로 다 베어지지만 굽은 나무는 아름드리 거목으로 자라 산을 지킨다는 뜻이다. 세상의 눈으로 볼 때 쓸모있어 보이는 사람은 출가 수행생활을 지속하기가 쉽지 않다. 자신의 안팎으로부터 오는 유혹이 그만큼 많은 것이다. 세상의 안목에서 볼 때 굽은 나무가 불가에선 오히려 더 귀하고 소중한 역할을 할 수도 있다.
미산스님처럼 우직하게 자신의 공부만 챙기는 스님은 눈에 쉽게 띄지 않는다. 혹 눈에 띄었다가도 홀연히 그 모습을 감추곤 한다. 마치 산을 지키는 거목처럼 쉬 자신을 팔지 않고 오롯하게 한길로 매진하는 까닭에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것이다.
90년대 초반 강원을 마치고 인도 및 동남아시아 성지순례를 나서서 스리랑카에서 우안거를 날 때 우연히 미산스님의 소식을 듣게 되었다. 스리랑카와 인도에서 학업을 계속하여 석사과정을 마치고 또 공부를 더 하기 위해 영국으로 가셨다는 소식이었다. 대학을 졸업한지 10년의 세월이 흘렀는데 스님은 은근한 끈기와 쉼없는 노력으로 공부를 계속하고 있었다. 그저 조용한 가운데 자신의 공부를 챙겼다는 스님이기에 유학생들 사이에서 특별한 이야기 거리를 들을 수 없었다.
2년 전 불교계 신문에서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미산스님의 기사를 접하게 됐다. 세계적 명문으로 이름난 대학에서 한국 스님의 향학열과 구도열정이 그 결실을 맺은 것이다. 그리고 얼마 뒤 귀국한 스님을 만날 수 있었다. 거의 20년 세월을 넘어 스님을 뵙게된 것이다. 스님은 반가움에 어쩔줄 모르는 나에게 마치 어제 만났다 헤어졌던 사람처럼 그렇게 맞아 주셨다. 학창시절 법사의 인연으로 만났다가 출가의 세월이 익어 어느덧 종단의 소임을 보게된 후배를 스님은 스님의 늘 그런 담담함으로 격려하고 다독여 주었다. 많은 이야기를 듣고 싶었고, 묻고 싶은 이야기와 청하고 싶은 부탁이 많았지만 바쁜 스님의 발길을 잡기엔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다만 스님께 나중에 여건이 되면 우리 종단과 포교를 위해 조금의 힘이라도 도와달라는 부탁을 드렸고 스님은 흔쾌히 그러마는 대답으로 자리를 접었다. 그리고 미산스님은 다시 미국 하버드대학의 세계종교연구소 선임연구원으로 잠시 더 외국생활을 했다.
미국생활을 정리하고 귀국한 뒤 스님은 남방의 수행처와 국내의 선방을 다니시면서 바쁜 시간을 보내고 계셨다. 월드컵을 맞아 한국불교계에서 추진하던 템플스테이 일을 맡아 다시 서울로 온 나에게 있어 종단의 국제적 감각이나 제반 상황은 극히 열악하기 그지없는 것이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 마침 한국방문의 해 추진위원회와 함께 외교관과 그 가족들을 위한 시범 프로그램을 운영하게 되었고, 그 핵심 역할을 맡아줄 프로그램 진행 스님의 역할은 절대적이었다. 수 차례 논의와 회의를 거쳐 미산스님이 최적임자라는 결론을 내고, 당시 수행처에 계시던 스님께 어려운 부탁을 드렸고 스님은 거절하지 않으셨다. 템플스테이가 시작될 당시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불교계 대표행사인 연등축제가 한창이었다. 하지만 같은 기간 국내의 전체 일간지와 외신에까지 보도된 직지사에서의 외교관 템플스테이에 대한 기사비중은 오히려 연등축제를 압도할 정도로 성공적이었다. 발우공양을 비롯해 참선, 다도, 연등 만들기 등 미산스님의 유창한 영어로 진행된 가르침과 지도는 대다수 참석자들의 깊은 관심과 주목을 받았고 이후 템플스테이의 운영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종단의 유일한 국제포교인력 양성과정인 국제포교사연수와 국내외 거주 국제포교사 한국문화체험 등 스님의 도움이 필요할 때마다 미산스님은 수고와 번거로움을 아끼지 않으신다. 하지만 미산스님은 일을 아무리 해도 표를 남기지 않는 스님이다. 마치 흐르는 땀방울을 식혀준 바람이 자취를 남기지 않듯 어느새 산사의 고요속에 몸을 감추고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30년을 넘긴 출가수행의 이력은 스님의 한결같은 젊고 편안한 얼굴속에 갈무리되어 있다. 산사의 살림을 즐겨 백양사 참사람 수행원의 소임을 맡고 계신 스님은 주변사람들에게 늘 든든한 의지처이다.
■서산 부석사 주지
2002-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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