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공부하기 원하면 늘 환영
수행력·당당함 후학들 의지처
서산시의 서쪽 끝에 뚝 떨어져서 천수만을 바라보고 있는 도비산 동쪽 자락에 동사(東寺)가 있다. 이 동사에는 10년 가까이 수좌스님 한 분이 홀로 정진하고 계시는데 바로 상묵스님이다. 모든 것이 다 서쪽으로 향하는 서쪽 끝에 자리한 산에다 왜 동쪽을 바라보는 암자를 짓고 동절이라고 이름 붙이게 됐는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상묵스님은 이 동절에 아주 잘 어울리는 스님이다.
젊은 시절 만공스님께서 경허스님께 찾아가 지도받고 정진하시던 도비산 부석사가 동사 너머 서쪽 중턱에 자리하고, 잠시 산을 오르면 무학대사 깨달음의 인연처인 간월암이 바라다보인다. 조선초와 조선말기의 불교를 이끈 선지식들의 인연이 어린 곳이 도비산이다.
상묵스님이 계신 동사는 명색이 절이지만 인법당과 붙어있는 요사채 한 동이 있을 뿐 거의 토굴에 다름아니다. 공양주도 없이 혼자 끼니를 해결하고, 한번씩 찾아뵈면 그저 묵묵히 앉아 정진하고 계시다가 손님을 맞아 즐거이 차를 다려주시곤 한다.
몇 년전 본사의 소임을 살 때 말사 감사가 있어 처음으로 동사로 스님을 찾아갔다. 비포장 길로 한참을 털털거리며 가서 차에서 내려 가파른 산길을 걸어 10여분을 더 올라가야 했다. 미리 전화로 연락을 드렸지만 법당참배를 마치고 몇 번을 불러도 대답이 없어 혹 스님이 외출하셨나 싶어 방문을 여니 스님은 가만히 앉아 선정에 들어있었다. 당황스럽기도 하고 따로 별 말이 떠오르지 않아 “스님, 감사하러 왔습니다” 하고 기다리니 스님께서 눈을 뜨고 일어나시며 부시시 웃으셨다. 인사를 드리고 몇 가지 필요한 일을 챙기고는 “스님, 저희 오는 것 모르셨습니까?” 물으니 “알았지”하시기에 “그럼 왜 대답도 없이 가만히 계셨습니까?” 하니 “아, 수좌가 정진하고 있으면 그게 최고의 감사지, 별스러울 것 있나?”하시는 것이다. 잠시 대화 중에 “스님, 겨울에는 어떻게 지내십니까?”물으니 “참, 자네 여비 가져온 것 있나? 있으면 여기 좀 놓고 가게, 겨울에 기름값이라도 하게”하시는 것이었다.
상묵스님은 출가 전에 수선회라는 참선모임을 결성하여 열심히 정진하면서 출가의 인연을 익혀서, 수덕사에서 방장스님께 계를 받은 뒤 한시도 쉬지 않고 정진에 몰두해온 만년 수좌다. 실력이 수준급에 있다는 검도수행으로 지금도 짬짬이 건강과 심신을 단련하곤 하시는 스님의 자세는 작은 체구임에도 늘 늠름하고 당당하다. 광대뼈가 드러나도록 마른 얼굴은 피부가 어린아이처럼 해맑고 눈빛은 늘 깊이가 있으면서 빛이 난다. 잡담과 세간의 잡사에는 관심이 없지만 수행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배가 부르도록 차를 따르고 따르며 공부의 바른길과 잘못된 방법, 옛 스님들의 수행담이 끊임없이 이어져 나온다. 서로 공부를 드러내어 묻고 답해야 비로소 탁마가 되어 모나고 뾰족한 것들이 없어지고 수행의 바른 길을 찾게 된다더니, 상묵스님은 누구보다 치밀하고 자상한 탁마의 도반이 되어주시곤 한다.
“직업수좌로 걸망메고 철철이 선방을 돌면서 세월만 보내면서 제대로 수행을 못해 정진력을 얻지 못하고, 이력만 내세우는 사람은 시주밥을 축내고 업만 지어서 그 과보가 한없이 무거운 거야. 정진을 못하면 기도와 포교를 열심히 하고 봉사라도 하면서 시주 인연에 보답해야지, 머리 깎은 것 하나만 자랑으로 삼아서 잘난 체만 하면 신도들도 그렇고 모두 스님들을 존경하지 않게 돼요.”
스님은 당신 공부하는 동안에도 누가 찾아와 수행에 대해 묻거나, 함께 머무르며 공부하기를 원하면 늘 흔쾌히 받아주신다. 그래서 가끔 참선 수행하는 처사들이 머물기도 하고 때로는 도저히 공간이 안 될 것 같은데도 10여명이 넘는 사람들이 며칠 수련을 하고 가기도 한다. 옛 스님들이 자리가 없어 부뚜막에 웅크리고 자면서 수행했다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과연 상묵스님의 동사가 그에 버금가는 형편이 아니가 싶다.
몇 해 전엔 수덕사에서 서울에 개설한 무불선원 선원장을 맡아 매주 두번씩 산길을 걸어 시내로 나와 시외버스를 타고 서울로 오셔서 참선지도를 맡아 주셨다. 처음 완강하게 사양하실 때와는 달리 3년 가까운 세월을 지치지 않고 그 일을 계속하셨다. 스님 계시는 곳은 그곳이 설사 도심의 건물속이라도 바로 선방으로 변하고, 스님과 함께하는 자리는 자장면을 먹고 난 뒤라도 법담이 이어지는 법석이 되곤 한다.
스님의 늘 변함없는 자신감은 흐트러지지 않게 쌓아온 스님의 수행력에서 비롯되는 것이라 실로 당당할 수 있고 그 당당함이 후학의 의지처가 되는 것이다. ■서산 부석사 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