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원철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작년 9월 11일 뉴욕시의 세계무역센터와 워싱턴의 미 국방성이 테러 공격을 받을 때 마침 미국에 가있었다. 뉴욕시에서 100킬로미터쯤 떨어진 곳이어서 직접 위험을 당하지는 않았지만 세계무역센터에서 일하는 이들의 가족, 친지가 많은 동네여서 그네들의 비탄과 분노를 생생하게 접하였다. 테러범들이 인간으로서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있는지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분위기였는데, 하긴 그랬다. 인간으로서 차마 못할 짓이라는 데에 누구도 이견을 달 수 없을 것이다.
한편, 함께 분노하면서도 직접 당한 당사자가 아니어서 그런지 몰라도 다른 생각도 들었다. 인간으로서 차마 하지 못할 짓을 저질렀다면, 그것도 우발적으로 저지른 것이 아니라 그토록 치밀하게 계획해서 저질렀다면, 그런 막 가는 짓까지도 감행하게 한 어떤 절실한 배경이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하긴 미국이 하는 짓이 오죽한가. 이슬람권의 입장에서는 몰리고 몰리다 못해 그런 참혹한 방법을 동원하게 되었다는 점을 동의는 아니지만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성의 전당이라는 대학교에서조차 그런 식의 이야기는 입도 뻥긋하기 어려운 험악한 분위기였다. 다만 가까이 지내는 미국인들에게 좀 다른 식으로 이야기를 건네 보았다. 다름아니라, 미국이 보복 공격을 준비하고 있는데 그렇게 폭력으로 폭력을 응징하는 것은 해결책이 되지 못하고 대신에 정말 좋은 방법이 있다는 얘기였다. 당시 이슬람권 각국의 정부들도 매우 당황해하고 있었다. 자칫하면 이슬람이 몽땅 몹쓸 종교, 몹쓸 문화로 낙인찍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미국의 막강한 외교력을 동원하여 이슬람국가들의 연합회의에서 알카에다를 비롯, 테러 단체들에 대해 이를테면 이슬람의 이단으로 규정하는 선언이 나오도록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이야기를 하였다. 그렇게 하면 이후 이슬람 과격 단체들의 테러 문제에 대처하는 데 예전에 없던 막강하고 효과적인 무기, 즉 전세계적인 지지를 확보하는 셈이라고 강조하였다.
그러나, 한방 맞고서도 주먹으로 되돌려주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하는 사람이 없었다. 때린 놈은 꼬부리고 자고 맞은 놈은 발뻗고 잔다는 지혜가 그네들의 심정에는 들어갈 자리가 없었다. 막강한 주먹이 있는데 왜 안 쓰냐는 것이다. 그렇게 한방 크게 맞고 난 뒤에 특별히 격앙되어 있었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네들의 문화가 워낙 그런 것 같았다. 마구 크게 얘기하자면, 동서양의 차이를 실감하는 대목 가운데 하나였다.
아무튼, 아프가니스탄을 신나게 두들겨 팼지만 그 뒤로 미국인들은 자기네들도 말하듯이 생활방식에 큰 변화를 겪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테러 단체들도 마찬가지이지만 워낙 그랬으니 손해볼 것이 없다. 그들이 노린 것이 바로 그 점이니 그만큼 성공한 셈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과연 테러리스트 사냥을 통해 테러가 지구상에서 없애버릴 수 있을까? 과연 테러를 통해서 미국이 망가지거나 수그러질까? 과연 테러를 통해서 팔레스타인 문제가 해결될까? 우리 누구나 그 답을 분명하게 알고 있다. 그런데도 저네들은 서로 갈수록 인간 말종이 되는 길을 치달려가고 있다. 지옥에서 또 만나 계속 싸울 것이니 지옥도 계속 시끄러울 터이다.
‘원한은 원한으로 갚을 수 없다’는 <법구경>의 구절을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