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5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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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불화의 조형세계(5)
민간불화의 등장

질박·자유로운 조형…새로운 美感
조선초 ‘지장시왕도’엔 해학 넘쳐

고려불화와 조선불화의 차이. 그 가운데 하나는 고려불화의 경우 궁중 및 귀족 발원의 불화인 반면, 조선불화는 궁중 및 귀족 발원뿐만 아니라 민간 발원의 불화가 조성된다는 점이다. 전통 회화에 상류 계층에서 향유한 일반 회화가 있고 민간인들의 취향에 맞춘 민화가 있듯이, 불화에도 왕족이나 상류 계층에서 발원한 불화가 있고 민간인들에 의하여 조성된 민간불화가 있다. 궁중 혹은 귀족 불화에서 민간 불화로 확산되어 불화의 대중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지방 불교 판화와 16세기 마(麻)에 그린 불화에 나타난다. 궁중과 귀족의 화려한 취향과 달리 민간의 질박하면서도 자유로운 조형으로 새로운 미감을 보여주고 있다.
1586년에 조성된 지장시왕도(일본 코쿠분지(國分寺) 소장)가 조선초기 민간 발원 불화의 대표적인 예이다. 이 불화의 대시주자는 김돌이(金乭伊), 채색 시주자는 오손애(吳孫愛)이다. 김돌이는 돌자가 이두식 표현인 점으로 보아 양반 집안은 아닌 것 같고, 오손애는 여자로 보인다. 이 불화의 시주자는 일반 서민들인 것이다. 이는 이전의 불화에서는 나타나지 않는 현상으로, 16세기 중엽을 기점으로 기존의 왕실 또는 귀족 발원의 불화에 민중 발원의 불화까지 제작된 것이다.
이 불화의 민간적인 특징은 먼저 바탕으로 삼은 마에서 느껴지는 거친 질감에서 찾아볼 수 있다. 거친 마에 그리다 보니 붓질이 원활치 못해 정교한 장식이 생략되는 경향을 보인다. 다음으로 형상의 표현에서도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다. 4등신의 짤막한 몸매에 부리부리한 눈초리가 그것이다. 이 불화의 권속들은 유난히 눈에 힘이 들어가 있다. 어떤 상은 사천왕상처럼 눈이 튀어 나왔고, 어떠한 상은 날카로운 눈매를 간직하고 있다. 다만 지장보살의 인자한 눈과 동자의 따뜻한 눈을 제외하고는 모두 인상을 찡그리면서 강한 눈빛을 발산하고 있다. 그런데 매서운 눈매에서는 무서움보다는 오히려 그 과장된 모습에서 웃음을 자아내게 된다. 역시 민간 발원의 그림이라 해학이 그 형상 속에서 두드러져 보이는 것이다.
해학 하면 우리는 김홍도의 풍속화를 떠올린다. 김홍도의 ‘서당’을 보면, 서당 전체가 웃음으로 가득하다. 심지어 점잖은 훈장 어른조차도 웃음을 참느라 애쓰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이 풍속화도 기본적으로 서민의 정서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해학이 화면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해학은 풍속화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민간 미술, 그것도 조선시대 민간 미술의 전면에 걸쳐 드러나는 특징이다. 궁중 회화와 민간 회화, 사대부 회화와 민간 회화를 구분 짓는 특징을 들라면 무엇보다도 해학을 기준으로 삼을 수 있다. 궁중 회화에 충만한 근엄함이나 사대부 회화에 풍겨나는 아취는 보이지 않지만, 민간회화에는 자유분방함이 넘친다. 대부분의 민간 회화는 우스꽝스러운 변형, 재미있는 표정 등을 통해서 민간 특유의 감성을 드러내고 있다.
■경주대 문화재학부 교수
2002-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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