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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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스님
덕숭산 가풍이은 동진출가자
겸손함으로 자신의 흔적 감춰

덕숭산 수덕사는 근대한국 선불교의 중흥조 경허, 만공스님의 법맥이 이어지는 도량이다. 그런 까닭에 산세가 작고 가람의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음에도 삼보사찰에 이어 조계종 덕숭총림으로 지정되어 그 위상과 격을 달리하고 있는 것이다. 경허스님의 어록을 보면 늘 ‘호서로 돌아가는 승려’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경허스님이 늘 돌아가고자 했던 그 ‘호서’는 바로 수덕사를 중심으로 서산의 천장사, 개심사, 부석사이다. 이 곳 절들은 경허스님의 보림처이며 선불교 중흥의 기틀을 다지고 후학지도의 인연이 익어진 곳이다. 경허스님은 무애자재의 행으로 일세를 풍미한 무애도인으로 알려져 있으며, 선사의 걸림 없는 무애행은 출가스님들뿐 아니라 세간에까지 널리 알려져 있다. 경허스님의 활달한 선풍은 만공스님과 그 법손을 통해 덕숭산의 가풍으로 자리를 잡아왔다.
보리스님은 이런 덕숭산의 가풍을 잇고 있는 스님중 하나이다. 아직 스님은 젊다. 이제 삼십 중반에 접어들었을 뿐이다. 하지만 수덕사 생활은 30년이 다 되어간다. 흔히 말하는 동진으로 절에서 자랐고 일찍 계를 받았다. 그렇다고 해도 아직 덕숭산의 가풍운운하기엔 너무 젊은 나이다. 그렇지만 덕숭총림 정혜사 선원을 한철이라도 난 스님은 보리스님이 덕숭산 가풍을 잇고 있음을 다들 기꺼이 인정한다.
보리스님은 늘 맨발에 검은 고무신을 신고 다닌다. 옷은 다 낡아 떨어지고 군데군데 불구멍이 송송 나있다. 어깨는 장정처럼 떡 벌어져 있고 사람을 만나면 씩~ 웃는 웃음이 순박한 마을 총각을 연상케 한다. 생활이 일이고 일이 생활이라, 보리스님은 빗자루와 물양동이가 손에서 떠날 새가 없으니 양말은 신으나 마나고, 아궁이 앞에 앉아 공양주를 마다않으니 옷에 불구멍 가실 날이 없다. 보리스님은 선농일치禪農一致, 선수행과 농사일을 한결같은 본분사로 삼으셨던 덕숭총림 2대 방장, 벽초 노스님을 꼭 빼 닮았다. 실제로 벽초 노스님의 무릎에서 자랐다는 보리스님의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노스님의 생전모습과 다르지 않다고 한다. 노스님께서는 방장으로 계시면서도 “큰스님”하고 부르면 “노스님이라고 불러”하시고 절을 올릴 때면 “한번만 해, 한번만”하시며 삼배받기를 사양하셨다. 법상에 오르지 않으니 큰스님이란 호칭도 법사에 대한 삼배례도 당신과는 관계없는 일이었던 것이다. 혹 신도가 인사를 한다고 하면 보리스님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다. 큰스님 옆에서 자라면서 신도의 절 받는 일이 얼마나 막중한 일인지 잘 아는 까닭이다.
계를 받기 전에는 초등학교 졸업할 나이부터 수덕사에서 정혜사까지 1080계단을 쌀 지게를 져서 나르고, 공양주를 살면서 수좌스님과 신도들을 시봉하더니, 계를 받고 나서는, 하는 일은 똑 같이 하면서 철철이 선방에 앉아 정진에 들어가더니 십여년 세월동안 한철도 쉬는 것을 보지 못했다. 공양주가 복짓는 일이라고 혹 다른 스님이 공양주 살기를 원하면 두말없이 자리를 양보하고 누구든 소임보기 싫어하는 일을 맡기에 꺼림이 없다. 십년, 십 오년 세월이 지나가면서 아랫자리가 많아지고 점점 윗자리로 가는 것이 오히려 부담스러운 눈치다. 맘껏 일을 하지 못하고 오히려 눈치를 봐야 하는게 갈수록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대중이 움직이는 일을 즐겨하진 않지만 절대 빠지지도 않는다. 분명 얼굴을 보았는데, 나중에 찾아보면 어느새 사라지고 없다. 할 말이 있으면 보았을 때 하거나 약속을 해야지 일없이 오가는 법이 없다.
보리스님은 무학이다. 학교를 다닌 적이 없다. 잠깐 학교의 인연을 만들기는 했으나 학교의 인연이 절의 인연과 병립할 수 없었던 것이다. 타고난 총기로 필요한 공부는 절에서 스스로 마쳤다. 그래서 보리스님의 수계에 논란이 일기도 했단다. 제도적으로 계를 받는데 문제가 있다는 것이었다. 어려서부터 절에서 자라 이미 뼛속까지 스님 사상이 배었는데 수계를 인정할 수 없다니 난감한 일이었다. 하지만 곧 스님의 지나온 이야기가 전해지고 덕숭산 가풍의 현대의 계승자로 인정돼 버렸다. 아직도 이런 올곧은 동진이 존재할 수 있는가 하는 놀라움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오래전부터 수덕사에는 동자들을 키워왔다. 절에서 키우는 동자들은 더러 가출도 하고, 이런저런 일로 절에서 살지 못하고 떠나가는 일이 있지만, 보리스님과 함께 자란 정혜사 동자들은 든든한 맏형 보리스님 덕에 다들 잘 자라 대학도 가고, 출가하여 계를 받기도 하고 스스로도 부끄럼이 없고 스님들도 떳떳한 일이 되었다.
적지 않은 동자들이 절과 인연을 맺고, 자라서 계를 받기도 하지만 보리스님 같은 동진출가는 참 귀하고 귀한 일이다. 옛 스님의 발자국을 밟아가며 오직 실천행으로 수행의 기본을 삼고, 겸손함으로 자신의 흔적을 감추며 안으로만 자신을 찾아갈 뿐이다. ■서산 부석사 주지
2002-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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