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2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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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세한 장식의 부활
18세기 들어 고려불화 장식 능가할 정도
의겸의 ‘해인사 영산회상도’가 대표적

고려불화는 섬세하고 화려한 장식의 극치로 평가받고 있다. 이러한 장식성은 11세기보다는 12세기, 12세기보다는 13세기, 13세기보다는 14세기가 더 극성하였다. 이 현상만 두고보면 고려불화는 궁극적으로 섬세한 장식을 향해 치닫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14세기에 절정을 이룬 장식성은 15세기, 즉 조선에 들어와서는 한풀 꺾여 점차 약화되는 추세를 보였다. 그런데 18세기에 다시 고려불화를 능가할 정도의 장식성이 되살아난 것이다. 특히 의겸(義謙)이 제작한 불화들에서 섬세한 장식성이 다시 등장하였다. 왜 18세기에 와서 장식성이 부활한 것일까? 그 계기는 17세기에 불교를 중흥하려는 강렬한 의지에서 찾아볼 수 있다. 크게 그리고 강렬하게 표현하는 17세기 불화의 활력이 있었기에 18세기에 접어들면서 디테일에 침잠할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된 것이다. 18세기 전반에 풍미한 장식성은 이 시기 불교계의 풍요로운 상황을 짐작케 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의겸은 어떤 화가인가? 18세기 전반에 일반 회화에서는 겸재(謙齋) 정선(鄭 ?)이 대표적인 화가라면, 불화에서는 의겸을 꼽을 수 있다. 그러고 보니 양겸(兩謙)이 이 시기 화단을 주도하였던 것이다. 그가 금어로서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한 곳은 1719년 고성 운흥사이다. 이후 송광사, 선암사, 흥국사, 실상사, 천은사 등 주로 전라도 일대에서 활동하였다. 또한 그는 신감(信鑑), 채인(彩仁), 환척( 陟), 색민(色敏) 등 수십 명의 화승을 배출하여 이른바 의겸파(義謙派)라 불릴 만큼 한국불교회화사에서 뚜렷한 업적을 남겼다.
의겸이 1729년에 제작한 해인사 영산회상도는 그의 대표작으로 꼽기에 손색이 없다. 석가불을 중심으로 그 주변의 권속들을 빽빽하게 배치하여 이미 구도에서부터 장식성을 부여하였다. 전반적으로 녹색조의 바탕에 주색이 생기를 띠고 있고 금색이 화려함을 더하고 있다. 그런데 이 불화는 10가지도 안 되는 색을 사용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다채롭게 보인다. 그 비밀은 금색 선의 무늬에 있다. 같은 적색 바탕이라 하더라도 어떠한 금선 무늬를 넣느냐에 따라 색감은 달라진다. 색채는 10가지 이내라도 그 위에 들어가는 금선의 무늬에 따라 체감하는 색채의 수는 대폭 늘어나게 되는 것이다. 아울러 금선의 무늬로 인하여 면이 딱딱하지 않고 색채 또한 고정되지 않고 움직이게 된다. 즉 색채와 색채가 서로 진동하기 때문에 시각적으로 풍부한 느낌을 주는 것이다. 이것이 이 그림에 장식성과 동시에 활기를 부여하는 비결인 것이다. 그런데 이 불화의 화기에는 의겸을 호선(毫仙)이라 소개하고 있다. 굳이 호선의 뜻을 새기자면 ‘붓 신선’쯤 되는데, 그의 명성이 이미 당대에 세상에 떨쳤음을 보여주는 자료이다. 신선의 경지에서 노닐었던 의겸은 18세기에 새롭게 등장한 장식성의 중심에 서 있었던 것이다.
■경주대 문화재학부 교수
2002-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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