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4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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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단은 좋은 벗의 둥지
평등·자유·인간적 행복 중시
승가를 사회변화 ‘진원지’로

좋은 벗의 집단은 다름 아닌 승단을 지칭하는 말이다. 부처님께서 처음 전법을 시작하여 다섯 비구를 교화하고, 그들을 제자로 받아들이면서 승가가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처음 상가의 구성원은 비구들 위주였지만 시간이 흐르고, 부처님의 전법활동이 활발해지면서 거기에 비구니와 재가자들까지 포함되게 되었다.
부처님은 상가의 구성원을 모두 좋은 벗이라 불렀다. 좋은 벗은 한문으로는 선지식(善知識) 혹은 지식(知識)이라 부른다. 산스크리트어의 칼야나미타, 팔리어의 칼야나미트라의 번역어이다. 이것을 현대어로는 좋은 벗이라 부르고 있지만 중국인들은 선지식, 혹은 지식이라 번역한 것이다. 따라서 불교에서 말하는 선지식이나 지식이란 용어는 특정한 사물이나 사안에 대한 지식을 의미하는 용어가 아니다.
부처님께서 좋은 벗의 집단을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고 계셨는가를 알려주는 일단의 대화가 <<잡아함경>>27-15에 실려 있다. 부처님의 시자인 아난이 부처님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한다. “대덕이시여, 제가 생각해 보건데 우리가 좋은 벗을 지니고 있고, 좋은 둥지 속에 있다는 것은 이미 성스러운 이 도(道)의 절반을 성취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봅니다. 저의 이러한 생각은 어떻습니까?” 이런 질문에 “아난아, 사람들은 나를 좋은 벗[선지식]으로 삼아 늙지 않으면 안 될 몸이면서 늙음으로부터 자유스러워질 수 있다. 병들지 않으면 안 될 몸이면서 병으로부터 자유스러워질 수 있다. 죽지 않으면 안 될 몸이면서 죽음으로부터 자유스러워질 수 있다. 아난아, 이것만을 생각해도 좋은 벗을 지니고, 좋은 벗의 둥지 속에 있다는 것은 이 도의 전부임을 알 수 있지 않겠느냐?”고 대답한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그 절반이 바로 좋은 벗의 집단인 승가라 생각하고 있던 아난에게 절반이 아니라 전부라 대답하고 있다. 그렇다면 좋은 벗을 지니고, 좋은 벗의 둥지에 있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 전부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삼귀의를 통해서도 상가가 불교의 세 가지 보배 중의 하나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그렇지만 그것이 왜 보배스러운 것인지는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지 않다. 그것을 엿볼 수 있는 경전이 바로 <<증일아함경>>42의 수륜이나 <<증지부경전>>8-19의 파하라다이다. 여기에는 “(첫째) 네 가지 종성이 있지만 그것들이 내 법안에서 사문이 되면 그 전의 이름을 쓰지 않고, 다시 다른 이름을 만든다. 마치 여러 개의 이름이 다른 강이 바다에 들어가면 꼭 같은 한 맛이 되어 다른 이름이 없는 것과 같다… (둘째) 온갖 중생들이 수염과 머릴 깎고 세 가지 법복을 가지고 집을 떠나 도를 배우고 무여열반의 세계에 들어간다. 그러나 내 법에는 더하고 덜함이 없다. 마치 저 큰 바다에 여러 강이 들어와도 더하고 덜함이 없는 것과 같다”는 내용이 있다.
이상의 인용문에서 우리는 몇 가지 중요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첫째 각각 다른 종성 즉 카스트 제도에 구애받지 않고, 좋은 벗의 집단에 들어온 사람들은 모두 부처님의 제자가 되어 사문 석자(釋子:석가모니부처님의 제자)가 된다는 점이다. 부처님의 제자가 되면 과거의 출신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가 더 열심이 수행하고 법답게 실천하는가가 중요시 되었다. 그것을 많은 강을 받아들이되 더함도 덜함도 없이 한결같은 바다에 비유하고 있다. 둘째 카스트에 대한 부정은 계급의식을 부정하는 것이다. 이것이 우선 교단 안에서 실질적으로 시행되고 있었다. 셋째 계급모순의 타파는 직업에 대한 선택권과 평등권을 고취시키고자 하는 사회의식이 내재되어 있다. 태어나면서 빈부귀천이 정해지고 직업이 정해져 있었던 당시의 사회제도에 대한 전면적이면서도 직설적인 부정과 비판이다. 넷째 이 세상에서 최고의 선은 열반이며, 열반의 세계에는 차별이 없다는 점을 바다가 강을 받아들이되 차별하지 않는 것에 비유하고 있다. 인도적 전통에선 출신성분에 따라 구원을 받는 것도 달라진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며, 이러한 관념에 대해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좋은 벗의 집단을 소중하게 생각했던 이유는 바로 평등과 자유와 인간적 행복이 보장되는 사회건설의 전초기지로 승가를 생각하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계급모순으로 충만해 있었으며, 인권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던 당시의 인도사회에서 그러한 현실을 정면으로 부정하며 비판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정치, 사회적인 대립과 투쟁을 감수할 수 있다면 고려해 볼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비폭력과 자비심을 중시했던 부처님에겐 불가능한 일들이었으며, 그런 점에서 승가를 사회변화의 진원지로 삼고자 했던 것이다. 좋은 벗의 집단이 불교의 전부가 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었던 것이다. 오늘을 살아가는 부처님의 제자들이 유념해야할 사항이다.
<본지 상임논설위원·불교학 박사>
2002-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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