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행정 소임에도 산승의 향기 가득
‘원심회’·‘풍경소리’ 버팀목 구실

늘 단정한 두루마기차림에 행전을 차고 투명한 안경을 쓴, 언뜻 보면 비구니스님으로 착각 할 수도 있는 모습이 덕신스님의 첫 인상이다. 몸가짐이나 말소리가 차분하고 그 품성이 고요해서 일생을 계율에 의지해 사는 율사스님과 다름이 없다.
흔히들 덕신스님은 본사가 조계사라고 말하곤 한다. 10여년이 넘는 세월동안 조계사에서 그 모습을 감추지 않는 까닭이다. 조계사는 ‘한국불교의 1번지’ 라고 한다. 그만큼 종단의 행정이나 교육, 포교, 사회, 문화의 모든 일이 조계사에 위치한 총무원을 중심으로 추진되고 있고, 그로 인해 조계사 자체가 갖는 상징성에 기인한 별명인 것이다. 한국불교의 중심으로 늘 번잡함이 끊이지 않고, 일과 사람이 얽혀 바쁘게 돌아가는, 분주한 곳에 잘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덕신스님이 10여년 세월동안 터잡은 것은 일면 아이러니컬한 일이다.
대부분의 스님들은 산사를 품고 산다. ‘입산(入山)’이라는 말이 출가라는 말과 동의어로 쓰이는 이유가 출가의 목적지인 절이 산에 있는 까닭이고, 산은 대다수 스님들의 첫 출발지인 동시에 언제나 수행의 근본자리며 마침내 생을 마감해야 할 출가자의 고향인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덕신스님과 자리를 하다보면 스님도 마음속에 산을 품고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다. 사무실과 방에 늘 차를 준비해 놓고 산에 사는 스님들보다 오히려 더 차를 즐겨 마시고, 때때로 대화의 틈틈이 산승의 향기를 짙게 풍기곤 한다.
조계종의 포교국장을 시작으로 문화, 사회 등의 소임을 줄곧 맡아오다가 지금은 총무원 총무국장의 소임을 보는 스님은 일면 행정승일 수 있다. 출가 승려의 입장에서나 종단사정에 관심깊은 불자의 시각에서도 스님들의 긴 행정직 소임이나 도시생활을 좋게 보지 않는 것을 감안하면, 덕신스님은 스님을 아끼고 존경하는 출 재가의 주변인들에게 염려와 걱정을 주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스님이 수행의 인연을 더 깊이 맺어서 훌륭한 도인이 되어 많은 중생을 제도하고 법맥을 잇는 우리 불교의 큰 동량이 되어주기를 바라는데, 혹 도시생활에 발목을 잡혀 큰 뜻을 피워보지도 못하고 시들게 될까봐 걱정스러운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론 덕신스님이 조계사를 떠날까봐 걱정하는 사람들이 스님의 도시생활을 걱정하는 사람들과 같은 사람들이다. 종단의 특수포교 분야에서 그 역할이 지대한 시각장애인에 대한 봉사와 포교를 선도하는 ‘원심회’와 어린이 찬불동요 창작 및 보급을 맡고 있는 ‘풍경소리’는 스님의 헌신적인 노력과 신심의 힘이 그 든든한 바탕을 이루고 있으며, 이 외에도 강원도, 충청도 등 원근을 가리지 않는 교도소 법회활동과 청년회, 대학생 등 청년불교에 대한 관심과 애정도 각별하다. 이같은 법회와 모임을 통해 만난 사람들이 덕신스님을 아끼고 걱정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이다. 스님은 이미 보통 스님에 비해 월등히 많은 일을 하고 있지만,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관심을 아끼지 않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주변의 스님들을 모아 포교와 전법의 인연을 만들어가곤 한다. 진지하고 쉼없는 스님의 보살행에 주변의 선후배 도반스님들도 가히 작은 동참을 사양할 수 없어 알지 못하는 중에 어느 덧 포교의 일선에 서게 된다.
조계종의 총무국장으로 종단 및 불교계의 주요 행사에 진행과 사회를 맡아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지만, 덕신스님은 늘 수수하고 소탈한 수행자의 모습을 잃지 않는다. 행사를 진행할 때는 꼼꼼하고 치밀한 준비에 한치의 오차도 허용을 않아 늘 단정하고 깔끔한 운영이 되도록 하여 실수가 없다. 일을 준비함에 혹 토론이나 논쟁이 있어도 결코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차분하고 꼼꼼하게 이야기를 정리하여 문제를 풀어나갈 뿐, 쉬 화를 내거나 분노를 표출하지 않는다.
덕신스님은 언제나 바쁜 일정으로 생활하고 있지만 개인사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아직 보지 못했다. 종단의 주어진 일속에서 조금이라도 시간을 내어 주변의 불자들과 신행모임의 법회와 행사를 돕기 위해 노심초사하는 스님은 보살심을 가진 공인으로 살아가는 한 전형을 보여준다.
근래에 생긴 덕신스님의 카페에는 손을 들어 한 곳을 가리키는 스님의 흑백사진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마치 빛바랜 사진처럼 출가스님의 은은한 수행상과 정진의 일념이 스님의 이미지를 담백하게 전달한다. 이곳은 덕신스님을 좋아하고 존경하는 사람들이 모여 잔잔한 삶의 인연을 담담하게 나누는 곳이다. 스님이 직접 만들지도 않았고 따로 홍보를 한 일도 없는데 알음알음 가입한 회원이 짧은 기간에 이미 백명을 넘기고 있다. 법당에서 현장에서 나누지 못한 스님과의 교감이 이곳에서 이루어진다. 때로 스님에게 어리광을 부리거나 투정도 하면서 젊은 네티즌들이 스님과 불법의 인연을 곱들여 나가는 열린 법당이며 도량인 것이다. ■서산 부석사 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