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로도에 지옥·천도의식·극락 함께
“언제든 천계갈 수 있다” 희망 담겨
부처님의 10대 제자 중 한사람인 목련존자(目連尊者)는 효심이 지극한데, 돌아가신 어머니가 생시에 죄를 많이 지은 탓에 아귀지옥에 떨어져 굶주리는 것을 보고, 부처님의 말씀대로 정성을 다하여 공양을 올려 목련존자의 어머니가 아귀보를 벗어나 화락천(化樂天)에 태어나 무량복락을 받았다. 이 고사에 따라 음력 7월 15일 백중날, 안거가 끝나는 스님들을 맛있는 음식으로 공양하여 죄를 짓고 지옥에서 거꾸로 매달려 고통을 받고 있는 조상들의 혼백을 구하는 의식을 행한다. 농부들은 호미를 씻고 백중놀이로서 여름 내내 힘든 농사일에서 잠시 휴식을 갖는다. 목련희(目連戱)라는 연극을 무대에 올리고, 목련전(目連傳)이라는 한글소설이 간행되었다. 이 명절의 성대함은 연극, 문학, 놀이, 음악, 회화 등 다양한 예술로 전하고 있다.
불화에서도 지옥에 떨어진 조상의 혼백을 구하는 의식인 우란분재(盂蘭盆齋)를 표현한 감로도(甘露圖)가 있다. 이 불화는 비참하고 고통과 죽음으로 가득 찬 육도(六道)의 중생이 두려움을 느끼게 할 뿐만 아니라 효를 통해 지옥에서 극락으로 회생할 수 있는 극적인 기적도 보여준다. 지옥의 내용을 담고 있지만 지옥도라 하지 않고 달콤한 이슬을 뜻하는 감로도라 부른 까닭은 이 그림 속의 현실 같은 지옥 또는 지옥 같은 현실이 극락을 향해 열려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언제든지 극락으로 갈 수 있다는 희망적인 고이기 때문에 그다지 고통스럽지 만은 않은 것이다. 특히 하단에는 여러 현실장면이 그려지는데, 이를 통해 불화를 제작한 당시의 풍속과 풍속표현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최근에 이 불화가 주목을 받고 있다.
1759년에 제작된 봉서암 감로도를 보면, 하단에는 지옥과 지옥 같은 현실생활이 펼쳐져 있고, 중단에는 두 아귀들을 중심으로 천도의식을 베풀고 있다. 하단과 중단 사이에는 나무가 총총한 산들로 구분되어 있다. 그 위 상단에는 극락으로 인도하는 7불이 줄지어 있고, 그 좌우에 인로왕보살·지장보살·관음보살이 거들고 있다. 하단의 인물들은 삶의 고통과 지옥에서 신음하고 있는 모습이다. 물에 빠져 죽고, 호랑이에 물려 죽고, 맞아 죽고, 전쟁 중에 죽는 등 아비규환이다. 특히 인물들의 눈초리에는 근심과 경계의 빛이 가득하다. 심지어 소의 눈빛에도 경계심이 담겨 있다. 서로 믿지 못하는 험악한 세상을 눈초리를 통해서 강조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중생계가 지옥처럼 느껴지지 않는 것은 이 불화는 워낙 화려하고 밝게 표현되었기 때문이다. 18세기 전반에 불기 시작한 장식성이 화면에 가득 차있는 것이다. 적색과 녹색이 주조를 이룬 가운데 장면과 장면 사이를 구분하고 있는 삼색 구름이 화려하게 빛나고 있다. 이 불화 속의 지옥은 이미 극락에 닿아 있는 것이다.
■경주대 문화재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