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꺼운 채색법…무겁고 중후한 느낌
사실 바탕으로 한 명료한 장식성 돋보여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불자들이 가장 친근하게 부르는 명호의 주인공 아미타불. 이 부처님은 살아서는 장수하게 하고 죽어서는 극락으로 인도해주는 분이기에 언제나 인기가 높다. 아미타불화는 고려시대에는 수월관음도, 지장보살도와 더불어 3대 불화 가운데 하나였고, 조선시대에도 꾸준히 제작되었다. 1776년 지리산 천은사에서 조성된 아미타후불탱은 조선후기를 대표하는 불화이다. 이 불화는 여덟 분의 보살, 즉 8대 보살과 함께 등장하는 아미타구존도(阿彌陀九尊圖)의 형식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고려시대의 아미타구존도는 그림의 상단에 아미타불이 화려한 보좌 위에 앉아 계시고 그 무릎 아래 여덟 분의 보살들이 서 있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런데 천은사 불화에서는 8대 보살과 함께 앞에 사천왕, 뒤에는 석가불, 미륵불, 여러 제자상이 아미타불을 빙 둘러싸고 서 있다. 게다가 화면 아래에는 아미타불을 향하여 등지고 앉은 사리불존자가 진지하게 설법을 듣고 있는 모습까지 덧붙여져 매우 복잡한 구성을 이루고 있다.
이 불화는 각 상마다 친절하게 이름을 밝히고 있는데, 이것은 매우 보기 드문 경우이다. 여기에 자세히 써놓은 이름은 조선시대 불화 연구에 더없이 고마운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하지만 이 불화에 적힌 이름 때문에 논란이 되고 있는 문제도 있다. 이 불화에 표기된 사천왕의 이름이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내용과 일치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탑을 들고 있는 사천왕의 경우 북방천왕이라 부르는데, 이 불화에서는 서방천왕으로 기록되어 있다. 왜 이러한 차이가 생기는지는 아직 의견의 일치를 보고 있지 못하고 있다. 조선 초기 밀교의 영향으로 도상의 내용이 바뀌었다는 주장도 있고, 불화를 그린 화원의 착오라는 주장도 있다.
이 불화가 주목받는 또 하나의 이유는 18세기 후반의 특색이 잘 드러난 명품이라는 점이다. 18세기 전반의 불화와 비교하여 가장 달라진 점은 두텁게 칠한 채색법이다.
18세기 전반에는 가벼운 수채화를 연상할 만큼 색을 얇게 칠한다. 석채(石彩)를 여러 번 칠하지 않아 바탕의 섬유질이 비쳐 보이는 것이다. 반면에 18세기 후반에는 두텁게 여러 번 칠하여 무겁고 중후한 느낌이 든다.
또한 18세기 전반의 채색은 밝고 따뜻한 색조가 두드러져 보인다면, 18세기 후반에는 녹색이나 청색의 사용이 증가하여 보다 무겁고 차갑게 느껴진다.
이 불화 역시 두터운 채색에 녹색의 증가로 중후한 분위기가 화면을 지배하고 있다. 채색은 무거워 보이지만, 보살이나 사천왕을 표현한 장식은 이전 시기 못지않게 여전히 화려하다.
이 불화를 1729년 의겸이 그린 해인사 석가후불탱과 비교하여 보면, 환상을 불러일으킬 정도의 섬세한 장식성과 달리 사실에 근거한 명료한 장식성을 보여준다. 전체적으로 중후한 분위기임에도 제자상의 모습은 자유롭기 그지없다. 짧은 유머 같은 제자상의 모습은 연이어 등장하 는 19세기 불화의 특징인 해학적인 자유로움을 예시하고 있다. ■경주대 문화재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