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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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호스님
젊은 열정 삶의 현장서 치열하게
광부 농부로 원양어선 타고 만행

천호스님을 처음 만난 것은 90년 여름 강원도 정선근처의 깊은 산골 외딴 토굴에서다. 강원의 여름방학을 맞아 성전스님을 비롯 몇몇 도반들과 만행을 나선 길에 천호스님이 혼자 머물고 있다는 토굴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기인처럼 산다는 천호스님에 대한 이야기와 강원도 깊은 산골이라는 매력에 빠져 그 곳을 찾게 된 것이다. 밭농사를 지으며 약초를 캐며 살던 사람이 버려 둔 집을 일년간 빌려서 산다는 그 곳에 비포장 길의 덜덜거림에 지친 우리가 도착했을 때 일행의 피로만큼이나 깊은 어둠이 깔려 있었다.
길이 맞는지 모르겠다며 앞선 성전스님이 “천호스님~” 하고 외치며 앞서 가고 토굴스님을 위한 먹거리며 물품을 챙긴 도반들이 혹시 길을 잘못 들었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과 함께 더듬거리며 뒤쳐져 따라가고 있었다. 잠시 뒤 천호스님과 함께 지내는 듯한 처사 한사람이 지게를 지고 마중나와 우리를 반갑게 맞았다. 물건을 받아진 처사는 거친 돌길과 작은 냇물을 앞서 걸으며 차근차근 길 안내를 하여 곧 허름한 농가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런데, 한발 일찍 도착하여 막 걸망을 내리고 우리를 맞이하는 성전스님은 혼자였다. ‘혹시 천호스님이 어디 출타한 것이 아닐까’하는 불안감에 “천호스님은?”하고 묻는 우리에게 씩~ 웃으며 눈짓으로 우리를 안내해온 처사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작업복차림에 머리와 수염도 적당히 자라 있었고, 먼저 스스로를 스님이라고 밝히지 않아 해인사의 칼같이 엄격한 대중살이를 하던 우리로서는 선뜻 스님이라는 느낌을 가질 수 없었던 것이다. 어쨌거나 잠시 같이 오면서도 스님으로서 예의를 갖추지 못하고 처사처럼 대한 것에 양해를 구하고 인사를 나누었다. 하지만 늦은 저녁을 해결하기 위해 아궁이에 불을 때고 방 정리를 하며 음식을 준비하는 중에도 ‘스님이 왜 이렇게 살고 있을까?’ 의심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때로 계를 받고 나서도 스님들은 신분을 숨기고 행자생활을 하기도 하고, 공장에 가서 노동자로 일을 하기도 하며, 농사를 짓기도 하지만 자신의 신분이 드러나거나 아는 스님들을 만나게 되면 스님으로서의 태도를 분명히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늦은 저녁을 마치고 흙냄새 풍기는 좁은 방에 둘러앉아 차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천호스님은 얼마전까지 근처의 탄광에서 석탄을 캐는 광부일을 했었고, 그러다가 무너져내린 흙더미에 다리를 다쳐 대충 치료를 하고 휴양겸 해서 그 곳 토굴에 살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밤늦도록 나눈 차와 이야기로 다음날 늦은 아침을 먹고 함께 산행에 나섰다. 앞장서 안내하며 풀어놓는 산 골짝골짝 품은 이야기들이며 나무와 풀꽃들의 이야기, 그리고 버섯, 물고기며 약초 등의, 듣기만 해도 푸짐하고 넉넉한 이야깃거리와 천호스님의 수더분하면서도 사람을 끄는 구수한 말투는 정말 산골생활 오래된 심마니와 다름없이 해박했다. 어눌하지만 분명한 언어선택으로 이야기를 하고, 깊이를 가진 맑은 눈매에 농사꾼같이 부담없는 행동과 삶의 방식은 강원생활 중 스님으로서의 겉모양에 집착이 강했던 나에게 새로운 충격이 되었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집을 떠나 멀리 강원도 오대산으로 출가한 천호스님은 출가하였지만, 오롯하고 반듯한 스님생활과 수행 말고도 해보고 싶었던 일이 많았던 모양이다. 탄광의 광부로, 산골의 농사꾼으로, 한때는 멀리 알래스카의 바다를 떠도는 원양어선을 타기도 하며 젊은 열정과 에너지를 세상사와 삶의 현장에서 치열하게 부딪치며 발산하기도 했단다.
해가 지나고 성전스님으로부터 천호스님이 다시 산으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건강이 회복되어 다시 탄광촌으로 가서 생활하다가 당시 처음 시행되었던 ‘학사고시’에 응시했는데, 전국수석인가를 차지해서 언론과 방송을 타게 되었고, 마침 방송을 본 은사스님이 찾아가 다시 승복을 입은 것이다. 산으로 돌아온 스님은 100일 기도로 그간의 만행을 정리하고는 걸망을 멘 선방 수좌의 길을 걷고 있다.
천호스님은 감성이 풍부하고 시를 좋아해 입을 열면 밤을 새워 외울만큼 시를 외우고, 책을 잡으면 그 현지를 꿰뚫을 지혜가 있으며, 몸으로 부딪치는 노동과 육신의 고단함도 두려워 않고 도전하여 견딜 줄 아는, 정말 멋있는 사람이다. 출가 전에 월급봉투 한번 받아보지 못했음이 늘 아쉬움인 나에게 천호스님의 만행담은 부러움을 넘어 경이로움이다. 또 정진의 길에 들어서는 뒤돌아보지도 곁눈질하지도 않고 한 길로만 향하는 우직함은 빨리 함께 그 길을 가고 싶은 바람과 더불어 좋은 도반을 가진 큰 위로와 넉넉함이 되어주곤 한다.
문득 바람처럼 찾아와 잠시 차를 마시거나 이야기를 나누곤 별 기약 없이 홀연히 떠나지만 천호스님의 자리는 늘 든든하고 따뜻하다.
■서산 부석사 주지
2002-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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