神位圖 신의 수 39위서 104위로 급증
표정도 변화무쌍…해학적이고 친근감
단순히 부처님 말씀만 전하고 참선만을 강요해서는 더 이상 일반인들을 부처님의 세계로 이끌지 못한다. 19세기 불교계는 이 점을 깨닫고 매우 현실적인 포교방법을 강구하게 된다. 민간의 신들뿐만 아니라 도교의 신들까지 과감하게 끌어들여 불교의 신앙체계로 삼았던 것이다. 일반인들에게 친숙한 신인 산신, 용왕, 조왕신, 수성노인 등을 불교의 신으로 만들고, 산신각, 독성각, 삼성각 등을 세우면서 적극적으로 일반인에게 다가갔다. 물론 이전에도 칠성신을 조심스럽게 불교화한 적은 있지만, 이 때만큼 다른 신앙의 신들을 대폭적으로 수용한 적은 없었다. 원래 불교의 신들은 화엄경에 기록된 것처럼 39위(位)인데, 19세기에 와서는 무려 104위로 늘어났다. 104위는 인도 신, 중국 신, 한국 신을 망라하니, 신들의 천국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들 104위의 신을 그린 104위신중도는 조선, 그것도 19세기에만 나타난 독특한 도상인 것이다. 이 불화는 19세기 불교계가 어떤 변신을 꾀하였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이 당시 불교계의 넉넉한 포용력으로 해석할 수 있지만, 민간불교로서 정착하기 위한 자구책이기도 하다.
그런데 104위신중도에는 단지 신들이 늘어난 변화에만 그치지 않았다. 1862년에 제작된 해인사 대적광전 신중도를 보면, 전혀 의외의 얼굴 모습에 당황하게 된다. 신들이 마치 코미디의 주인공들처럼 얼굴표정이 극적이고 변화무쌍하다. 적어도 해인사신중도에 표현된 신들은 권위적이고 무서운 분들이 아니라 흥미롭고 친근한 분들이다. 그렇다고 이 불화가 결코 예술성이 떨어진 것은 아니다. 이 불화는 후대의 불모(佛母)들이 신품(神品)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은 작품이다. 다양한 표정을 창출해 낼 수 있는 상상력도 놀랍거니와 그 많은 상들이 부딪힘이 없이 조화로운 구성을 이루고 있고, 상들의 캐릭터도 매우 개성적이다.
해인사신중도에 보이는 해학적 표현은 이 불화에만 국한된 현상은 아니다. 현왕도, 지장시왕도, 나한도, 심지어 석가불화 중 제자상 등 주로 신중과 조사상을 중심으로 유행하였다. 그러한 의미에서 필자는 이러한 현상에 대하여 ‘19세기 코미디’라는 애칭을 붙여본다. 권위에 얽매이지 아니하고 해학적인 형상으로 친근감을 더해주고 있는 것이다. 삼국시대 불상을 보면 어린아이와 같은 형상으로 민간에게 다가갔는데, 19세기에는 해학적인 형상으로 보는 이로 하여금 편안하게 하여 준 것이다.
불화에 나타난 해학성은 16세기 민간불화가 등장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17, 18세기에도 부분적이나마 해학적인 표현이 꾸준히 이어져 오다가 19세기에 와서 확산된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민간불교가 일반인들 사이에 자리잡아 가고 있다는 징후로 해석된다. 그렇다면 과연 오늘날 불교미술계는 어떠한 모습으로 우리를 부처의 세계로 불러들이는 것일까?
■경주대 문화재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