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1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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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 드리는 참된 공양
진솔·겸허하게 법 실천하는 것
보시·지계 인간사회 윤리규범
가장 불교적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부처님의 법을 실천하면서 사는 것이다. 특히 법을 실천하지 않으면서도 부처님의 가르침에 빙자해 사는 사람들이 많은 현실을 생각하면 새삼 석가모니 부처님의 정신을 계승하고자 하는 다짐이 필요하다. 우다나에 나오는 내용은 진실한 부처님의 제자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말해주고 있다. “비구들이여, 그대들이 비록 내 옷자락을 잡고, 바로 내 뒤에 서서 내 발자국을 따라 다닌다고 해도, 그가 마음속이 탐욕스럽고 증오심을 품었으며, 악의에 가득하고 마음이 부패하며, 마음이 산란하여 감정을 억제할 수 없다면 그 사람은 나와 멀리 떨어져 있고, 나는 그와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니라. 왜냐하면 그는 법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니, 법을 보지 못하는 사람은 나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니라. 비구들이여, 설사 나와 멀리 떨어져 있다 하더라도 그 마음이 탐욕스럽지 않고, 증오심이 없으며, 악의가 없고, 마음을 안정시켜 자신의 감정을 잘 억제하고 있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바로 나와 가까이 있는 사람이요, 나 또한 그와 가까이 있는 것이니라. 그는 법을 보았기 때문이니 법을 보는 사람은 나를 보는 것이기 때문이니라.”
사실 이상의 인용문은 나 자신을 위한 법문처럼 들리기에 간절함과 부끄러움을 동시에 느끼게 만든다. 수로나국으로 포교를 떠난 우바리 존자도 부처님을 그리워하자 상기 인용문과 같은 내용의 답신을 보낸 것으로 전해온다. 초기불교에서는 부처님의 존재 자체가 절대적 권위를 지니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럼에도 진솔하고 겸허하게 법을 실천하는 사람이 진정 자신과 함께 하는 사람이라 가르치는 것은 우리들을 숙연하게 만든다.
녹야원에서 다섯 비구들을 위해 부처님께서 처음 설법하기 시작 했던 그때의 법문 내용은 4제와 보시, 지계, 생천설이었다. 4제란 일체의 존재들은 모두 불만과 불안으로 충만해 있으며, 그러한 것들은 언제나 변하고 있는 것이고, 궁극적인 실체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불만과 불안을 극복하고 행복과 자유를 향유하기 위해서는 8정도를 실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기도 한다. 보시와 지계는 생활 속에서 타인과 어떠한 관계를 설정하고 사는 것이 행복한 일인가를 가르쳐 주는 사회윤리이기도 하다. 어떠한 인생관과 세계관을 지녀야 하는지 알려 주기에 법의 실천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부처님은 두 가지 속성을 지니고 있다. 첫째는 사상가의 면모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사상가란 점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은 매우 논리적이고, 현실적인 가치를 숭상한다. 따라서 형이상학적인 논의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두 번째 종교가로서의 면모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신적인 권위를 가지고 인간들을 심판하는 심판자, 혹은 절대자와 인간을 연결하는 매개자의 역할을 담당하는 종교가가 아니었다. 인간의 면모를 가지고 인간들 속에서 인간들의 이성을 개발하고, 그들의 인식을 제고시키기 위해 실천궁행하는 교사적인 역할의 종교가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이상에서 언급한 두 가지 측면의 성격이 혼재되어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불교적으로 산다는 것에 대해 어려움을 느끼기도 한다.
법이란 다르마(dharma)란 범어를 번역한 것인데 존재라는 의미와 정의, 법칙, 가르침이란 의미를 동시에 함유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법은 바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의미한다. 삼보의 하나를 법보라 하는 데 여기서 말하는 법이란 부처님께서 설파하신 일체의 결전과 율전을 비롯하여 후대에 이룩된 논서들까지 포함되고 있다. 부처님께서 얼마나 법을 중요하게 생각했는지는 경전의 곳곳에 나타나 있다. <<잡아함경>> 권30의 837경에서는 사람을 믿지 말고 법을 믿으라고 말한다. “법을 믿지 않고 사람을 믿으면 다섯가지 허물이 생긴다. 자기가 믿는 사람이 대중의 비난을 받으면 실망하게 된다. 자신이 믿었던 사람이 계율을 범하고 어기면 실망하게 된다. 자신이 믿는 사람을 거리에서 만나면 도량을 찾지 않게 된다. 자신이 믿었던 사람이 속세로 돌아가면 실망하게 된다. 자신이 믿는 사람이 목숨을 마치면 실망하게 된다. 따라서 절을 찾지도, 대중을 공경하지도, 법을 듣지도 않고 선행을 등지게 된다”는 것이다. 사람은 무상의 법칙을 벗어날 수 없지만 법은 무상의 법칙에 사로잡히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는 <<잡아함경>>제46 1238경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나의 법은 현재에서 모든 번뇌를 떠나 시절을 기다리지 않고 통달하여 밝게 보며, 자기를 인연으로 스스로 깨달아 그 법을 증득하는 것입니다. 나는 언제나 중생의 좋은 벗이 되어 중생을 생노병사와 우비고뇌에서 벗어나게 하며, 시절을 기다리지 않고 현재에서 그 고뇌를 벗어나게 하며, 보고 통달하여 스스로 깨달아 증득하게 합니다.” 법의 실천과 그 중요성을 언급하고 있는 대목이다.
<본지 상임논설위원·불교학 박사>
2002-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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