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광사 나한도 권위적 면모 자취 감춰
등 긁고 상념에 빠진 모습 너무 인간적
벌써 십 여 년 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백과사전 편찬부에 근무하던 시절, 백과사전에 실을 나한상을 촬영하기 위해 여러 사찰을 조사한 적이 있다. 그 당시 나는 의외의 상들에 약간의 신선한 충격을 받은 바 있다. 그렇게 엄숙하게 보였던 성보문화재 중에서 이처럼 인간적인 면모가 철철 넘치는 상들이 있었구나 하는 당혹감이었다.
갖가지 다양한 인간적인 모습을 만나는 여행은 인생의 의미를 되새겨 보게 하는 기회였다. 그 당시 가장 인상 깊었던 나한상은 마곡사16나한상, 화엄사16나한상, 운수암나한상 등으로 주로 조선후기에 제작된 상이었다. 그들이 펼치는 세계는 인생의 고귀한 드라마를 연상케 하였다.
성문(聲聞)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깨우침을 얻는데는 네 단계가 있다. 수다원, 사다함, 아나함, 아라한. 뒤로 갈수록 높은 단계이니, 아라한이 가장 큰 깨달음인 것이다. 그 깨달음의 정도는 부처에 버금간다. 이 아라한(阿羅漢)을 줄여 나한(羅漢)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나한이란 가장 큰 깨달음을 얻은 분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러나 조선후기에 제작된 나한상의 모습은 의외로 인간적이고 자연스럽다. 그 큰 깨달음이라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일까? 그들에게는 전혀 신적이거나 권위적인 면모를 찾을 길이 없다. 어떤 이는 눈을 지그시 감고 있고, 어떤 이는 호랑이를 쓰다듬고 있으며, 어떤 이는 옆에 있는 분에게 무언가 말씀하고 계신다. 이 분들의 자유로운 모습은 우리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이다. 가장 인간적인 면모가 가장 큰 깨달음이라고.
불화에서도 이러한 감동은 그대로 전해진다. 1725년에 조성된 송광사 응진전 나한도는 조선후기를 대표하는 나한도이다. 응진전(應眞殿)이라 하면 진리에 상응한다는 뜻으로, 바로 깨달음에 이른 나한들을 모신 전각이라는 의미이다. 여기 모셔진 나한도 가운데 제12 나가서나존자(那伽犀那尊者), 제14 벌나파사존자(伐那婆斯尊者), 제16 주다반탁가존자(注茶半託迦尊者)를 그린 장면이 특히 흥미롭다. 제12존자는 호랑이 가죽을 깔고 앉아 어떤 생각에 잠겨 있고, 제14존자는 가려운 등을 긁고 있으며, 제16존자는 위를 바라보며 상념에 빠져 있다. 무언가 깊은 침묵에, 무료함까지 화면에 깔려 있다. 이러한 정서는 조용하면서 가늘게 흐르는 선묘를 통해서 나타나고 있다. 이들 나한상은 두께가 전혀 느껴지지 않을 만큼 얇게 표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풍요롭게 보인다.
특히 호랑이 가죽을 깔고 앉아 있는 제12존자의 경우, 가는 선묘로 묘사되었지만 둥글게 부풀어진 어깨의 실루엣에서 무엇이든 포용하는 넉넉함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배경은 이들 상의 평면적인 표현과는 대조적으로 붓질이 거칠고 강한 질감을 통해 입체감을 내었다. 거칠고 입체적인 배경에 가늘고 평면적인 흐름을 보이는 나한상을 대비시킨 것이다. 조용하고 부드러운 곡선의 흐름이 우리를 이 작품 속으로 끌어당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