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남원 실상사 화림원 강당에서 열린 세 번째 금강경결제 논강의 핵심쟁점은 ‘번역’의 문제. 두 번째 논강에 이어 출·재가자 100여 명이 번역의 문제를 놓고 머리를 맞댔다. 논강의 세부 쟁점은 세 가지. 구마라즙은 왜 ‘니맛따(相:영상), 산냐(想:인식,개념), 락카나(特相)’ 등을 모두 상(相)으로 번역했는가, 여래를 어떻게 봐야 하는가, 그리고, 다르마(法)는 무엇인가 등이다. 이날 역시 논주 각묵스님(초기불전연구원 지도법사)이 발제에 나섰고, 도법 실상사 주지, 해강 화엄학림 학감, 해월 동화사 강주, 성륜 화엄학림 원주 등이 토론에 참여했다.
“중국, 상을 외형보다 정신적 관념으로 사용”
“인도와 중국의 사유체계 달라 하나로 번역”
▶구마라즙은 왜 ‘니맛따(相:영상), 산냐(想:인식,개념), 락카나(特相)’ 등을 모두 상(相)으로 번역했는가.
각묵 스님은 “산냐는 마음에 무엇이 개념·이념·관념화 된 것인 반면, 니밋따는 마음에 어떤 것이 형상화된 것이다. 또 락카나는 특징을 의미하는 32상이다”고 주장했다. 이어 스님은 “원어상 의미가 다른 이들 개념을 왜 구마라즙은 모두 상(相)으로만 번역했는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며 “구마라즙이 어떻게 해서 정신적인 영역에 속하는 산냐의 의미를 외형적이고 물질적인 뜻을 가진 ‘서로 相(모양)’으로 번역해, 성(性)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이해시키는 구실을 주게 됐는지 따져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왜 그랬을까? 각묵스님은 “금강경이 나타내고자 하는 주제를 분명히 하기 위해 이 셋을 하나의 술어로 번역했고, 당시 중국에서는 상을 외형적인 의미보다는 정신적인 관념을 뜻하는 단어로 많이 사용됐기 때문이다”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이에 대해 해월스님(동화사 강주)은 “인도와 중국의 사유체계가 달라 구마라즙이 하나로 묶어 번역했다고 본다”며 “모든 존재는 관계 속에서 존재하므로, 굳이 나눠 볼 필요가 없다”고 반론을 제기했다. 반면, 성륜스님(화엄학림 원주)은 “금강경 한역본만 6개나 된다. 역경자별로 상의 의미를 달리 이해하고 있기도 하다. 가령 <대지도론>에는 상을 열 가지로 설명하고 있다”며 “오해의 소지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서 나눠 이해할 필요는 있다”고 동의를 표했다.
논쟁이 치열해지면서 도법스님(실상사 주지)은 “대부분 한국불교에서는 상을 관념적으로 이해하고 있다. 각묵스님이 너무 기복적인 측면에서 본 것이 아니냐” 반박하고, “무엇보다도 왜 우리가 현실적으로 상에 빠지는가. 왜 더 깊이 매몰되고 있는가. 그 원인과 해법이 무엇인가 등을 먼저 고민해야 한다”며 논강의 밀도를 높였다.
각묵스님은 이밖에도 “이번 기회에 정확한 불교 기본용어의 개념규정이 선행되어야 한다”며 “이래야 불교교리체계가 명확하게 드러날 수 있게 된다”고 부연했다.
“32상 모두 허망한 것, 실재 없는 여래 봐야”
“불신관 볼 수 없어, 의미 함축 위한 것일 뿐”
▶여래를 어떻게 봐야하는가-<금강경>의 불신관(佛身觀)
-원문에서의 상은, 분명 여래 육신의 특징인 32상이다.
두번째 쟁점은 ‘여래를 어떻게 봐야 하는가’ 이다. <금강경>의 불신관을 각묵스님은 구마라즙이 ‘범소유상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凡所有相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라고 번역한 경구에서 찾는다. 또 이 경구에서의 상은 산냐가 아닌 ‘락샤나(特相, 32相)’라는 점을 강조했다. 스님은 원전과 한역본을 비교하면서, “‘범소유상…’을 ‘상(32상)과 상이 아닌 측면으로 부터 여래를 봐야 한다’고 직역해야 한다”며 “‘여래가 가지고 있는 32상 등 수승한 상이 사실, 모두 허망한 것이다. 그래서 실재가 없는 여래를 봐야한다’고 주장했다.
스님은 또 “만약 ‘범소유상…’을 원문 없이 해석되면, 모든 것은 허망하니 그 상이 상이 아님을 알 때 여래를 볼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돼, 원문의 뜻을 넘어서게 된다”고 지적했다.
해월스님은 <금강경>의 불신관에 대해 “전통적으로 색신(色身)은 유상(有相)으로, 법신(法身)은 무상(無相)으로 보고 있다. 우선 아견과 집착을 떠난 상태에서 여래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고 말했다.
성륜스님은 “구마라즙은 정확히 여래의 32상으로 파악하고 있었으며, 한역본을 토대로 한 <금강경> 주석가도 분명히 이 경구의 상을 여래의 육신으로 보고 있다”며 “다만 구마라즙이 이 경구의 상을 법신의 상으로 승화시킨 것은 탁월한 재치를 보여주는 대목이다”고 말해, 각묵스님의 의견에 동의했다.
반면, 도법스님은 “이 경구에서는 불신관을 볼 수 없다, 이는 구마라즙의 의도가 있는 번역으로 이후 내용의 반복을 방지하고, 보다 많은 의미를 함축해 내기 위한 것 아니겠느냐”는 의견을 내놓았다.
“법, 마음의 현상, 본성에 의존하지 않는 것”
“異時적이며 전변적 상속적 이라 할 수 있어”
▶다르마(法)은 무엇인가.
-남방 아미달마와 북방 대승불교에서 다르마의 개념은 어떻게 다른가.
세 번째 쟁점은 법에 대한 개념 규정, 그리고 어떤 법을 버려야 하며, 비법은 무엇인가 이다. 우선 각묵스님은 법에 대한 개념 설명부터 장황했다. 스님은 “법은 법문(法門)과 물·심의 현상 등으로 크게 설명할 수 있다”며 “특히 아비달마에서는 사물의 본성(sabhava고유의 성질, 性)을 지니고 있는 것을 법이라 한다. 가령 사람, 동물, 산, 강, 컴퓨터 등은 아미달마불교에서 법의 영역에 속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마음이 만들어낸 개념이지, 그것들이 본성에 의지해 존재하는 실재가 아니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스님은 “법은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물심의 현상이다”고 부연·강조했다.
해월스님은 “다르마 개념을 규정하는데, 대승불교에서의 개념도 함께 고려돼야 <금강경>에서의 다르마 개념을 알 수 있다”며 “각묵 스님은 남방아비달마 중심으로 법을 설명하고만 있다”고 일침을 가했다. 성륜스님은 각묵스님이 주장한 법의 현상에 대해, “동시(同時)적보다는 이시(異時)적이다. 때문에 전변(轉變)적, 상속(相續)적이라고 할 수 있다”고 부연했다. 반면, 일진스님(운문사 승가대학 강사)은 “남방과 북방에서의 법의 개념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논강이었다”고 말했다.
남원 실상사=김철우 기자
금강경결제 일정
11월 23일 왜 금강경인가
11월 30일 상이란 무엇인가
12월 7일 범소유상 개시허망은 잘못된 번역인가
12월 14일 조사는 대승이고 아라한은 소승인가
12월 21일 금강경과 공덕
1월 4일 무엇이 제일바라밀인가
1월 11일 무아를 잃어버린 한국불교, 힌두교의 아류인가
1월 18일 마음은 흐름인가, 불생불멸인가
1월 25일 산냐(상)를 척파하면 허무주의가 되는가
2월 8일 어떻게 산냐(상)를 극복할 것인가
매주 토요일 오후 6시 실상사 화엄학림 강당 (063)636-39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