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8.19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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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조화? 사람의 기교?
성덕대왕신종 화엄사상을 소리로 표현
장중·조화·신비의 종소리…완벽한 면모

동해안 감포 앞바다에 거북 머리 모양의 산이 둥실 떠다니고, 그 산 위에 한 줄기의 대나무가 솟아 있다. 이 대나무가 낮에는 둘이 되고 밤에는 하나로 합해진다. 용이 신문왕에게 이 대나무가 소리로써 천하를 다스리게 될 징조라고 말하니, 왕이 이 대나무를 베어 피리를 만들게 하였다.
용의 말처럼 피리를 불면 적병이 물러가고, 질병이 낫고, 가물 때 비가 오고, 비올 때 비가 개이고, 바람이 가라앉고, 물결이 평온해졌다. 그래서 이 피리를 모든 파도를 잠잠케 한다는 의미로 만파식적(萬波息笛)이라고 불렀다.
이것이 <삼국유사>에 전하는 만파식적의 설화이다. 또한 성덕대왕의 공덕을 기려서 혜공왕 때 만든 성덕대왕신종도 단순히 새벽의 정적을 깨우는 목적에 그치지 않았다. 김필해(金弼奚)가 성덕대왕신종에 새긴 명문에서, 이 종은 사람들로 하여금 일승(一乘)의 원음(圓音)을 깨닫게 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밝혔다. 피리와 종은 단순히 소리만 내는 악기나 의식구가 아니다. 오히려 그 이상의 정치적, 종교적 기능을 하였던 것이다.
일승의 원음이라는 화엄의 사상을 소리로 구현한 성덕대왕신종은 빼어난 조형으로 명성이 높다. 장중한 형상, 조화로운 비례, 아름다운 부조, 여기에 웅혼한 소리까지 갖추어 범종으로서 완벽한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김필해는 그 종의 형상을 “그 모습은 태산이 우뚝 선 것 같고, 그 소리는 우렁찬 용의 소리 같았으며, 위로는 지극히 높은 하늘과 아래로는 지옥세계에 이르기까지 막힘없이 소리쳐, 보는 이는 기이함을 칭송하고 듣는 이는 모두 복을 받을 것이다”라고 읊은 바 있다. 그래서인지 당시 사람들은 인간의 차원을 뛰어넘는다는 의미로 신종(神種)이란 칭호를 붙여주었다.
신라 종은 중국 종과 비교할 때, 두 가지의 큰 차이점이 보인다. 하나는 종 위에 음통을 세운 것이고, 다른 하나는 중국 종에 비하여 여백의 활용이 뛰어나다는 점이다. 음통은 신비의 소리를 울리게 하는 데 있어서 조절 역할을 하는 중요한 장치이다. 그리고 미술사적으로 눈길을 끄는 것은 여백의 활용 부분이다.
중국 종이 스님 가사처럼 격자형으로 몸 전체가 구획된 반면, 신라 종은 유곽을 위로 끌어올려 그 아래에는 충분한 공간을 살렸다. 성덕대왕신종에는 이 여백에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신라 장인의 부조 솜씨가 유감없이 발휘된 것이다. 평면의 공간에 그다지 높지 않은 부조로 입체감과 깊이감을 충분히 살려 표현하였다.
천의자락과 장신구를 휘날리며 사뿐히 내려앉은 공양자는 무릎을 꿇고 앉아 연꽃향로를 바치고 있고, 꽃구름은 공양자와 함께 꼬리를 휘날리며 내려와 대좌를 마련하였다.
바람에 휘날리는 천의·장신구·꽃구름이 자아내는 운율이 아름답거니와 동적인 흐름 속에 정적이고 간절한 모습을 담은 극적인 발상이 고귀해 보인다. 성덕대왕신종에 펼쳐진 완벽한 곡선미와 조형성은 과연 하늘의 조화인지 인간의 기교인지 우리의 눈을 의심케 한다. ■경주대 문화재학부 교수
2002-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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