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빈마음·빈손으로 시작
선천적 원만함 수행 원동력
성전스님은 정말 스님생활이 잘 어울리는 스님이다. 타고난 여유로운 성격은 급한 일이 하나도 없고, 욕심도 없고 사람들과 시비도 없다. 늘 자신이 스님이 된 것에 만족하며 다행스러워하는 모습은 마치 어린아이처럼 순박해 보이지만 그래도 속에 우뚝한 출가의 마음이 심지를 채우고 있음은 누구라도 금새 느낄 수 있다.
성전스님은 강원도반이다. 십여 년 전 강원에 입학하려고 해인사엘 가서 홍제암에서 청강을 하게 되었다. 홍제암에 도착하니 며칠 일찍 청강을 시작한 성전스님이 먼저 자리를 잡고 있고 그 인연으로 강원을 마치는 4년간 늘 나와 옆자리를 함께 하게 되었다. 당시 적지않은 스님들이 해인사 강원에 입학했지만 끝까지 마치는 스님은 반이 안되는 형편이었는데, 그만큼 해인사 강원생활이 힘들고 어려웠던 까닭이었다. 강원생활 중에는 누구라도 윗반스님의 부름에 가사장삼을 입고 책상 앞으로 불려가는 일이 있기 마련이고, 불려가면 자잘한 지적과 함께 최소 108배 정도의 참회를 받곤 했다. 그래서 윗반 스님이 부르는 것은 아랫반 스님들에게는 상당히 예민한 일이었다.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잡지 않는다는 한국불교 특유의 불문율이 있듯이 강원생활도 갖가지 사연으로 어느날 문득 걸망을 싸면 그렇게 떠나가곤 했고, 누구에게나 장애라 불리는 고비가 있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도반들이 걸망을 싸는 고민을 할 때마다 성전스님은 누구보다 먼저 다가가 고민을 나누고 함께 강원을 마칠 수 있기를 진심으로 권하곤 했다. 부모도 형제도 버리고 출가한 매정함을 바탕에 깔고 사는게 스님들이고, 특히 강원생활은 출가기간이 오래 지나지 않아 더욱 성격이 똑부러지는 시기이지만 성전스님에게서는 오히려 그런 매정함보다는 인정과 인간미가 물씬 풍겨지곤 했었다. 모난 구석이 없는 원만함, 성전스님은 선천적으로 그런 원만함을 타고 난 것 같았다.
강당을 졸업하고 잠시 미국생활을 했으면 하던 성전스님이 짧은 미국생활을 하고 나서는 미국에 대한 정을 뚝 떼버렸다. 역시 한국스님은 한국에서 살아야 한다며 한동안 선방을 다니더니 어느날 <해인>지 편집 일을 맡았다. 강원에 있을 때에도 교지 <수다라> 편집 일을 맡아 책을 만들더니 그 쪽으로 실력을 갖춘 모양이었다. 산사를 좋아하는 까닭에 수시로 해인사를 오갈 수 있고, 전국의 큰스님들을 찾아다니며 책 만드는 일이 스님의 적성에도 맞아 보였고 보기에도 좋았다.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잡지 하나가 성전스님의 손을 통해 만들어져 포교와 불교홍보의 역할을 넉넉히 해내고 있었다. 무엇보다 <해인>지 첫 면의 작은 공간을 채우던 짧은 글은 성전스님의 풍부한 감성과 출가의 마음이 어우러져 읽는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과 공감을 전해주었고, 성전스님의 속내가 은근히 비쳐 보이곤 해서 독자들에게 특별한 의미가 되었다. 그렇게 만 2년을 서울의 북아현동 <해인>지 편집실을 지키면서 책을 만들다가 인연이 다 되어 <해인>지 편집 일을 미련 없이 접더니, 고산 큰스님께서 총무원장을 하실 때에는 도반의 추천으로 사서소임을 맡아 큰스님 시봉을 하기도 했었다.
늘 산사를 꿈꾸며 산에서 활기를 찾는 스님이 어느날 문득 서울 절의 주지 소임을 맡더니 벌써 몇 해가 되어간다. 본인도 처음엔 어울리지 않는 일을 맡았다며 쑥스러워하더니 이제는 틀이 잡혔다. 수십 년 동안 발전이 없던 곳에서 찬찬히 불사를 일으키고, 신도들 기본교육도 실시하며 한번도 법회와 기도를 쉬지 않아 신도들이 많이 늘었단다. 전국민적 관심사인 북한산 살리기와 어린이찬불가 보급운동을 하는 풍경소리에도 헌신을 하고, 지역사회에 장학금도 주며 주변의 손길 닿는 곳마다 작은 관심과 지원이라도 아끼지 않는다.
별달리 드러내 놓고 포교와 불사를 하기보단 그저 자기의 위치에서 묵묵히 제 몫을 해 나가는 성전스님은 누구보다 훌륭한 포교사며 수행자다. 스님이 사는 옥천암엔 도반들과 선 후배스님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성전스님이 가지고 있는 마음의 여유와 넉넉한 승려의 살림살이가 편하기 때문이다. 언제라도 걸망진 도반이나 선후배스님이 오면 그냥 보내는 법 없이 주머니를 털어 반드시 여비를 쥐어준다. 서울에서 주지 살기가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고 사람마다 그렇게 챙겨 주기가 쉽지 않은 일인데 싫어하거나 부담스러운 내색이 전혀 없다. 스님은 스님들이 알아주어야 정말 좋은 스님이라고 하는데 성전스님은 그런 스님이다.
몇 해전 낸 스님의 책 <빈 손>처럼 성전스님은 늘 모든 일을 빈 마음 빈 손으로 시작하고 빈 손으로 살아간다. 무엇이고 스스로 욕심내고 원해서 일을 찾지도 않고 또 자신을 필요로 하는 일을 자기가 할 수 있다면 억지로 피하지 않는다.
도심의 절에 살면서도 산승의 모습을 품고 늘 수행자의 마음을 잃지 않고 여여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수행자가 성전스님이다. ■서산 부석사 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