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2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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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과 봉황이 자아내는 향기
금동대향로의 용트림 다리·연꽃 받침
세련되고 힘찬 백제인의 예술혼 담겨

1992년 부여 능산리 고분 옆의 건물 유적지에서 한국공예사의 백미를 장식하는 금동대향로가 출토되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였다. 처음에는 이 건물터를 고분군 옆이라 제사터 정도로 추정했지만, 뒤에 이 건물터에서 창왕명(昌王銘) 사리기가 출토됨으로써 절터임이 밝혀졌다. 이에 따라 이 향로가 어떤 성격의 유물인지 다시 검토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처음의 추정과 같이 고분에 제사지내기 위한 향로였을까 아니면 불교의식에 사용된 향로였을까?
이 향로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용이 트림으로 다리를 이루고 입에서 연꽃을 토해내어 향로의 받침이 되고, 연화화생(蓮華化生)처럼 연꽃 속에서 박산(博山)이 피어나며, 박산 꼭대기를 봉황이 지키고 있다. 박산에는 전설 속의 동물, 신선들이 노닐고 있는데, 이는 도교적인 내용이다. 굳이 불교적인 도상을 꼽자면 용이 내뿜는 연꽃 정도이다. 이런 내용만 보면 이 향로가 고분의 제사의례에 사용된 것으로 볼 수 있지만, 연꽃의 표현에 주목하면 불교의식에 사용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여기서 잠시 시선을 중국으로 옮겨가 이 향로의 제작시기와 비슷한 서위(西魏)시대(535~556)에 제작된 돈황 막고굴 249굴, 285굴을 살펴보자. 이들 굴은 불교사원으로서 벽면은 불교적 내용인데, 천장은 서왕모(西王母)와 동왕공(東王公)이 등장하고 천마(天馬)가 날고 있는 도교적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불교미술과 도교미술이 공존하는 양상을 보인다. 그렇다면 이 금동대향로에 도교적인 요소가 보인다 하여 불교적인 용구로 사용되지 않았다고는 볼 수 없는 것이다. 오히려 불교와 도교의 도상이 공존한 것이 6세기 불교미술의 특징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옳을 듯하다.
이 향로에 대하여 제기하는 또 하나의 의문은 백제에서 만든 것인가 아니면 중국에서 만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백제미술 하면 일반적으로 우아한 아름다움을 떠올린다. 그런데 이 향로는 우아함을 넘어서 세련되고 힘찬 동감까지 표현되어 있다. 한껏 구부러지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곡선의 흐름, 볼륨이 느껴지는 몸체의 위용 있는 트림, 그 기세에 동승한 구름의 힘찬 동감, 치밀한 공간의 연결, 부드럽게 연결된 산세, S자로 구부러진 봉황의 형상 등 어느 방향에서 보나 짜임새 있는 구성을 갖추고 있다. 용으로부터 시작된 힘차고 아름다운 곡선의 형세는 봉황의 높이 세운 꼬리로 뻗쳐나가고 있다. 이처럼 치밀하고 힘찬 조형 때문에 중국제품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향로는 분명히 ‘메이드 인 백제’이다. 봉황이나 박산의 모습은 부여 외리 출토 문양전의 형상과 닮았고, 세련된 곡선미는 부소산성에서 출토된 금동광배를 연상케 한다. 다만 그 동안 출토된 백제 유물이 세련되고 힘찬 곡선미가 대개 어떤 틀 속에 갇혀 있어 우리가 미처 눈치채지 못했을 뿐이다. 백제인의 기상이 밖으로 표출되면서 이처럼 위대한 예술을 창출하는 민족임을 세상에 통쾌하게 보여준 것이다.
■경주대 문화재학부 교수
2002-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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