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2.20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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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성불하지 못한다고 하는 사람이 성불하지 못한다
[기획인터뷰] 동국대 불교학부 해주 스님

종교와 젠더연구소(소장 옥복연)는 매월 비구니 스님을 만나 현대 여성들에게 필요한 삶의 지혜를 듣는다. 불교여성리더의 역할모델을 찾아 비구니로서 교단에 최초로 선 동국대 불교학과 교수 해주 스님과 첫 만남을 가졌다. 만남에는 종교와젠더연구소 옥복연 소장, 연구원 김영란 나무여성인권상담소장, 전나미 불교상담대학원 교수, 이희숙 서울여대 강사가 함께했다. 인터뷰는 4월 2일 동국대 교수회관 해주(海住)스님 연구실에서 진행됐다.

Q 불교여성학을 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동국대 대학원 불교학과를 다니면서 승가학과(선학과 전신) 조교를 했을 때 학과장 스님이 새로운 과목 개설에 대해 의견을 물으셨죠. 여성학에 관심이 있었던 저는 불교여성학을 건의 드렸는데, 아무튼 2년 후 불교여성학이 승가학과 2학년 과목으로 개설됐습니다.
당시만 해도 불교여성학은 생소한 과목이었습니다. 학과에서 담당자를 물색했는데 쉽게 찾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학과장 스님이 막 박사과정을 수료한 저에게 제안하셔서 불교여성학 강의를 처음 맡게 되었습니다. 그 때가 1986년 이었는데 또 제가 대학에서 강의를 처음 시작하게 된 것이기도 합니다.(그때까지 비구니 스님이 동국대학 강단에 한 번도 선 적이 없었다) 사부대중 학생들은 진지하고 재미있게 들었던 것 같습니다.
전공도 아닌 과목에 스님이 뛰어들게 된 것은 스님의 전공인 화엄학과의 관계가 깊다. <화엄경(華嚴經)>에는 남녀 차별적인 모습은 보이지 않을뿐더러 여성에게 자비와 청정, 중생을 수순(隨順)하는 덕이 수승해 생불(生佛)하는 특징적인 장점까지 부각시키고 있음을 해주 스님은 주목해 왔다. 무엇보다 <화엄경>에는 선재(善財) 동자가 만난 선지식을 통해 부처님의 평등세계를 보살행을 통해 잘 드러내고 있다. 보살행을 추구하는 선재가 역참한 53선지식중 21명이 여성 선지식이다. 스님은 여성 선지식의 비율은 물론 해탈 경계로도 남녀 불평등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음에 주목했다.

Q 불교가 여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보셨는지요.
부처님은 “비구들이여, 만인의 이익과 안락을 위하여 떠나라” 라고 전도의 선언을 하셨습니다. 만인의 안락 속에 여성이 절반입니다.
부처님은 카스트제도의 철폐를 주장하셨습니다. 부처님은 “사람은 태어날 때 종성이 결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귀하고 천함은 그가 어떠한 행위를 하느냐(業)에 달렸다”고 하셨습니다. 하층민인 수드라(sudra,首陀羅)도 법 앞에서 바라문과 평등하다고 했습니다. 또한 부처님은 교단에 여성을 출가시켜서 비구니가 되도록 함으로써 평등세계를 직접 보여주셨습니다. 여자도 출가해서 수행을 하면 깨달아 아라한과를 얻을 수 있다고 확실히 보여주신 것입니다.

Q 불교전래 이후 여성성불 불가론을 내세워 깨침을 얻을 수 없음을 강조하는가 하면, 비구니팔경계(比丘尼八敬戒)로 비구니와 여성을 경시하는 풍조가 만연하기도 했습니다. 비구니팔경계는 여전히 존재합니다.
교리사적으로는 그 문제가 2000년 전에 이미 해결되었다고 하겠습니다. 대승불교가 일어나기 전에는 모든 여성 남성 출가자들의 목표는 성불이 아니라 아라한과에 이르는 것이었습니다. 아라한과는 비구ㆍ비구니 모두 증득한 기록이 있습니다. 석존의 어머니 마야부인(摩耶夫人)의 동생인 마하파사파제 비구니만 해도 아라한과를 증득했거든요.
수행자가 성불한다는 것은 대승불교의 구경과입니다. 만약 여성이 성불하지 못한다고 전제한다면 부파교단에서는 모든 스님들이 성불을 못합니다. 성불할 뜻이 없기 때문이죠.
대승불교 흥기 전후로 여성의 지위에 대한 문제가 있었죠. 경전을 살펴보면 2600년 불교사중 약 100~200년 정도 여성불성불의 말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초기 대승불교 경전에 그 문제는 이미 해결되어 있습니다. 물론 <화엄경>에도 그 답이 다 있습니다. <화엄경>을 일불승(一佛乘) 즉 일승경전이라고 부르는 것도 모든 수행이 성불로 가는 길임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여자가 성불 못하는 것이 아니라, 여자가 성불 못한다고 하는 사람이 성불하지 못한다고 하겠습니다. 공(空)한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유마경>에 보이는 천녀와 사리불의 대화 속에서도 그 답을 찾을 수 있겠습니다. 대승불교가 시작될 때 이미 이런 문제는 해결됐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몸은 남녀가 있지만 불성에는 남녀가 없습니다. “모든 중생이 다 함께 불도를 이루어지이다(一切衆生皆共成佛道)” 라고 발원도 하고 있지 않습니까.

Q 현실적으로 남녀모두 성불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가 얼마나 될까요.
여자 몸으로는 안 되고 다음 생에 남자 몸을 받아 출가를 하고, 성불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지금도 없지 않다고 봅니다. 하지만 이는 여성의 성불불가론이나 깨달음의 문제가 아닙니다. 현실적으로 교단이나 사회에서 여성의 역할이 어디까지 가능한가, 남녀가 더불어 어디까지 역할분담을 하느냐에 달려있다고 하겠습니다.

Q 1999년도 종단에 비구니원, 비구니 총림에 대한 요구를 했다. 그 주장이 유효하다고 보시나요.
생각이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교단내 차별의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총림을 세우고 비구니원으로 종단의 4원 체제를 이루는 방안은 비구니의 수행과 교육, 포교에 효율화를 도모하자는 차원에서 제안했습니다.

Q 종헌종법상의 비구니의 위치 등을 비롯해 교단 안팎으로 성차별 문제의 해결은 어디서부터 해야 할까요.
원리적이거나 부처님의 교설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현재 우리가 해야 할 역할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는 것이 문제가 된다고 봅니다. 문제 해결은 우리들 스스로 자기가 맡은 일을 프로답게 하는데 있다고 봅니다. 비구니 후배 스님들에게도 사자후를 하는 사자새끼가 되라고 늘 강조해 왔습니다.
스님은 수행을 프로답게, 전업주부는 살림을 프로답게 해야 합니다. 전문적인 힘을 키우지 않고 뛰어들었을 때는 이웃은 물론 자신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조금 하다가 장애물이 생기거나 지치면 스스로 ‘이만하면 됐다’ 합니다. 스스로 물러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내가 여자다’라는 생각으로 참여를 하면 여자로서 주어진 일 외에는 하나도 하기 힘듭니다. 당당해지세요. 보살로서 자리이타행을 하는 마음으로 말입니다.
저는 모든 여성들에게 제3의 눈, 정안(正眼)을 가지라고 합니다. 제3의 눈은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보는 눈이고, 활동분야에서 전문적인 안목을 갖는 것입니다.


Q 최근 조계종단은 자성 쇄신 결사가 진행 중인 5대 결사 중에 여성과 관련한 주제, 성 평등, 교육에 대한 주제가 많이 빠져있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비구니 스님들이 개인적으로건 조직적으로건 이런 목소리를 내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없는 것 같습니다.
사부대중이 함께 뜻을 모아 모두를 위해 진행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 다 함께’라는 보살정신의 실천에 다함께 힘을 합해야겠습니다. 조계종은 비구ㆍ비구니가 똑같은 교육을 받습니다. 또 교육하는 사람도 교재도 똑같습니다. 똑같은 교육조건에서 역할에 문제가 생긴다는 것은 자세의 문제이거나, 해결해야 할 그 무엇이 있기 때문이겠습니다. 만약 여러 면에서 모자라는 부분이 있고 일의 진행이 어렵다면 동기와 방편에 문제가 없는지 부처님의 근본정신에 비춰봐야 겠지요.

Q 스님의 자리와 역할이 크게 느껴집니다.
아닙니다. 전국비구니회(회장 명성)의 역할과 비구니 스님들의 꾸준한 노력으로 비구니의 위상이 많이 높아지고 활동영역이 꽤 넓어졌다고 봅니다.
(해주 스님은 1999년 ‘한국 비구니 승가의 현황과 방향’을 주제로 쓴 종교교육학연구 제8권 논문에서 종헌종법상에 나타나는 권리제한이나 차등적 조항을 지적했다. 비구니의 참정권이나 교단 내 비구니의 지위가 거의 보장받지 못하는 실정을 지적하며 비구니 역할론을 대두시켰다.)

Q 가정폭력 성매매 피해, 세계 빈곤인구, 인권침해 등 여전히 여성이 피해를 당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불교적으로 어떻게 바라볼 수 있으며 구체적인 방법이 궁금합니다.
우리사회에서 소외된 이들입니다. 소외계층에 밝은 빛이 가지 않고는 ‘우리 모두 다함께’라는 불교정신은 살아날 수 없습니다. 따라서 특별히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불교에서는 큰 틀로 이야기하다보니 현실적으로 세밀한 부분에서 부딪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선교방편을 찾는데 더 한층 노력해야 되겠지요.

Q 기복적이고 성차별적인 모습이 불교계에 여전합니다. 일반 사회 도덕보다 뒤떨어진 모습을 볼 때 실망스럽습니다.
출가, 재가나 종교적, 여성학적인 것을 떠나 생각해보십시오. 틀에 가두거나 나누지 않고 본다면 전체적으로 품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여성이 가지고 있는 특징적인 장점, 관세음보살의 대자비심으로 끌어안는 것은 어떨까요. 그러면 상황은 달라질 것입니다.

Q 여성 불자들이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지 말씀해주십시오.
여성주의와 불교신앙이 부딪친다고 생각하는 분이 많은 것 같습니다. 모두가 행복한 일이라면 같이 가야합니다. 주저하지 말고 보살로서 당당해지세요. 불교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불교신행의 기반이 튼튼한 재가여성운동이 필요합니다.
대승보살운동도 부처님의 평등정신을 공으로 펼쳐 보인 것입니다. 불교정신에 입각한 새로운 방편을 개발해 내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보살도를 펼쳐야 불국토가 이뤄집니다.
바꿔 말씀드린다면, 우리 모두가 본래 부처님과 다르지 않음을 철저히 믿고 그 본래모습대로 살기 위해 발보리심한 여성보살이 돼야겠습니다. 지금 여기서 이 몸으로 부처님의 무한한 공덕을 심고 나누는 여성선지식이 되시기 바랍니다.


#해주 스님은...
1972년 반야사에서 호거산 운문사 입산 성관 스님을 은사로 석암 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
1977년 동학사승가대학 대교과 졸업.
1978년 통도사에서 월하희중 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 수지.
1982년 동국대학교 불교대학 졸업.
1984년 동국대학교 문학석사 취득.
1987년 동국대학교 대학원 철학박사과정 수료
1990년 동국대학교 대학원 철학박사학위 취득.
1994~1996년 동국대학교 비구니 수행원(혜광사) 사감(겸 주지). 1994~2002년 대한불교조계종 제11대 제12대 중앙종회 종회의원
1994~2001년 대한불교 조계종 교재편찬위원회 위원.
1997년 Center for of World Religions, Harvard University, U.S.A Senior Fellow.
1997~2002년 대한불교조계종 기초교육개혁 위원.
2000~2004년 불교학연구회 초대. 제2대 회장.
2003~2007년 대한불교조계종 전국비구니회 감사.
2005~2008년 현재 대한불교조계종 역경위원회 위원
1990~2011년 동국대학교 불교교수. 현재 수미정사 주지 및 동국대 불교학부 교수, 중앙승가학원 법인이사 맡고 있다.
저서로는 <화엄의 세계> <의상화엄사상사연구> <불교교리 강좌> 등 다수 있다.

글=이상언 기자, 사진=박재완 기자 | un82@buddhapia.com
2011-04-24 오전 12: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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