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 총본산인 조계사에는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이 있다. 이 건물은 “내외국인에게 한국불교문화의 역사성을 근간으로 불교의 정신문화세계를 안내하기 위해 조성됐으며 불교중앙박물관이 위치하고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이 건물은 이러한 소개와 달리 한국불교의 대표종단인 조계종단의 총본산인 총무원청사로서 활용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 건물은 한국불교를 대표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권력과 종교와의 밀착관계를 보여주는 상징이기도 하다. 이 건물을 조성하는 일에 관여한 스님은 당시 권력의 실세로부터 국고보조를 받기로 약속 했지만 불교단체의 사무실을 건축하는 일에 국고보조를 받을 명분이 없어서 고민하던 중 박물관을 짓는다는 명분으로 일을 성사시켰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를 한다.
한국불교의 총본산 사무실 건축에 국민 세금을 편법으로 지원 받은 것을 부끄럽지 않게 여기는 것이 오늘 우리 한국불교의 현실인 것이다. ‘자성과 쇄신’을 주장하는 지금의 총무원장스님 말씀대로 5년이 걸리든, 10년이 걸리든 불교신자들의 시주금을 모아 건립을 했다면 총무원을 드나드는 2000만 불교신도들이 얼마나 큰 자부심을 가졌을 것인가!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이번 조계종 총무원 인사에 대해 일부 불교언론이 새로 임명된 스님이 정관계에 두터운 인맥을 쌓고 있다는 보도 때문이다. 종교적인 차원에서 세간을 떠난 출가자가 세속의 정관계 인사들과 교류를 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일 것이다. 그들이 사사로운 욕망을 버리고 국민과 중생을 위해 일을 하도록 바른 길을 제시하는 출가수행자의 모습은 부처님이 빔비사라왕에게 “힘과 높은 자리로 그 뜻을 제멋대로 하지 말고, 권력을 믿고 약한 이들을 업신여기지 말고, 신의를 지키고 참되게 말하라”고 가르쳤던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세속의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일식집에서 만나 비싼 음식을 먹고, 폭탄주나 마시며 개인이나 특정계파의 이익이나 챙기는 로비를 하는 일에 정관계 인연을 활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조계종이 강조하는 ‘전통문화에 대한 정부의 인식 전환 요구’는 결코 이러한 로비에 의해 달라지지 않는다.
불교는 쾌락과 탐욕에서 벗어나는 가르침이다. 감각적인 쾌락, 사사로운 욕망, 부와 권력에 대한 집착 등 모든 이기적인 탐욕에서 벗어나기를 권유하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따라서 출가자들이 머리를 깎고, 분소의를 입고, 걸식을 하는 것은 탐욕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는 중생들에게 욕망에서 벗어나는 길을 보여 주기 위한 스승의 길인 것이다.
그런데 출가수행자들이 그런 스승으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세속의 정관계 인사들과 어울려 출가수행 자체가 권력이 되는 것을 추구한다면 전통문화뿐만이 아니라 불교에 대한 정부의 인식전환은 불가능한 일이 될 것이고 결국 국민으로부터 외면 받는 길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