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3.27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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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의 전부를 내줄 수행자를 기다린다.
김영국 칼럼(前 조계종 총무원장 종책특보)
부처님 오신 날이 가까워진다.

부처님은 잡아함 불방일경에서 “나는 언제나 모든 중생의 좋은 벗이 되어 그들의 근심, 슬픔, 번민, 고통을 시절을 기다리지 않고 현재에서 그 고뇌를 벗어나게 한다”고 하셨다. 그런데 중생에게 닥친 현실은 괴롭고 어렵기만 하고 정치인은 물론이고 수행자들마저도 중생의 고통을 외면하고 있다. 정말로 지금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줄 좋은 벗은 없는가.

납의중경에 보면 마하카샤파가 누추하고 초라한 모습으로 나타나자 다른 수행자들이 보고 업신여겼다. 그러나 부처님은 당신 자리의 반을 내주며 “사랑하고, 가엾이 여기고, 기쁘게 하는 마음, 평등하게 보는 마음을 완전히 갖추었다”고 칭찬하셨다. 우리 시대에 자리의 전부를 내줄 수행자는 과연 없는 것일까.

지금 이 시대의 수행자들이 수행결사를 하고, 생명결사를 하고, 나눔결사를 한다고 하지만 그 결사에 “사랑하고, 가엾이 여기고, 기쁘게 보는 마음, 평등하게 보는 마음”이 안보이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자성이 없기 때문이다.

부처님은 잡아함 회수경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반열반(깨달음)을 얻었다. (그러나)마땅히 나를 돌아보게 하라. 혹 내 몸이나 입이나 마음에 꾸짖을 만한 일은 없는가.”

종단의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수행자들은 부처님처럼 자신에게 꾸짖을 것이 있다면 이야기해달라고 스스로 고백한 적이 있는가.

또 실천이 없기 때문이다.

어떤 바라문이 부처님에게 물었다. “당신은 어떤 종족 출신입니까?" 부처님이 말했다. "어떤 종족인가를 묻지 말고 어떤 일을 행하느냐고 물어라.”

잡아함 손타리경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지금 수행자들은 내가 총무원장이네, 종회의원이네, 본사주지이네 하고 출신만 강조하지 과연 중생을 위하여 어떤 일을 행하고 있는지 눈을 씻고 봐도 보이지가 않는다. 높은 자리에 있는 스님들, 당신은 지금 어떤 일을 하십니까.

부처님은 중아함경에서 “수행자라도 악하고 욕망을 버리지 못하면 사찰에 살고 승복을 걸치고 있더라도 존경받지 못한다”고 경책하셨다.

또한 왕이 수행자를 보고 절을 하며 깨달은 사람이라고 하자, 부처님은 “나타난 형상으로 보지마라. 안으로는 잡된 마음을 품고, 거룩한 척 하며 사람들을 속이는 무리가 있다”고 잡아함 형상경에서 말씀하셨다.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하여 스스로 악하고 욕망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안으로는 잡된 마음을 품고, 거룩한 척 하면서 사람들을 속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진정으로 자신을 돌아보는 수행자가 있기를 바라는 것이 헛된 일에 불과한 것인가.

작년에 열반하신 법정스님은 “함께 살고 있는 이 세계가 지금 어디로 어떻게 움직이고 있건 아랑곳없이 초연하려는 종교인이 있다면 그가 속한 종교는 현장 밖에서 말라죽게 될 것이다”고 하셨다.

소위 5대 결사가 세상과 상관없이 소수 불교인들만의 초연한 신선놀음이 안되어야 조계종단이 강조하는 불교중흥이 실현되는 것이다.
김영국 前 조계종 총무원장 종책특보 | smile2@hanmail.net
2011-04-12 오전 12: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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