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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여행은 마치 연애 같아요"
여향학교 '로드스꼴라' 9명 학생들이 엮어낸 백제 역사여행기



여행서적은 여행서적인데, 여느 여행서적과는 좀 다르다. 특히 강도 높은 노동에 시달리다 일탈을 꿈꾸며 여행서적을 뒤적거리는 독자라면 좀 놀랄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꿈꾸는 에메랄드 빛 푸른 바다와 산호초, 만년설에 비치는 호수, 넓은 평야에 뛰노는 얼룩말과 기린, 진기한 음식들, 화려한 풀 빌라 등은 책에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이런 목적으로 여행서적을 찾는 이들에겐 책은 기피대상 1순위다.

좀 놀랍겠지만 오히려 영어, 수학, 과학 등에는 능한데 국사에는 전혀 관심 없는 아이, 공부는 뒷전이고 매일 밤을 새며 게임만 하는 아이, 주입식 교육이 맞지 않는 아이, 꿈이 없는 아이들과 이런 자녀를 둔 부모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책은 여행 전문 작가나, 순례길을 떠난 순례자들이 쓴 여행서적이 아니다. 여행학교 ‘로드스꼴라’의 9명 학생들과 그들의 지도교사가 함께 쓴 여행 이야기다. 여행이 사람들에게 점차 일반적인 문화생활로 자리 잡아 가면서, 최근에는 한 테마를 설정해 여행을 떠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이들도 한 테마를 정해 여행길에 오르는데, 그 테마는 바로 ‘백제’다.

학창시절 국사 교과서에서 잠깐 등장하는 백제를 주제로 여행을 떠난다니, 말만 들어도 고리타분한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을 것 같지만, 막상 책장을 넘기면 그렇지 않다. 오히려 어렵고 진부하게만 느껴졌던 역사 내용을 현대 아이들의 시각으로 상큼하고 발랄하면서 솔직하게 재현했다. 책은 역사를 잘 모르는 학생들은 물론, 어른들까지 쉽게 읽도록 구성돼 있다.

책에는 백제를 주제로 역사여행을 떠난다는 선생님들의 말에 학생들이 “차라리, 조선이면 조선이지, 백제는 또 뭐냐!”고 소리치는 모습 등, 정작 글을 쓰고 여행을 떠나는 학생들조차도 낯설어하던 백제의 이야기들이 솔직하게 담겨 있다.

이들은 2009년 가을과 2010년 여름 두 차례에 걸쳐 백제의 길을 따라 나섰다. 그들이 찾아다닌 백제의 길은 한국의 서울 공주 부여 정읍 서산 익산부터 일본의 아스카 나라 오사카 교토로 이어진다. 학생들과 교사는 모두 열 군데에 이르는 도시를 저마다 한 곳씩 나눠 맡아 글을 썼다.

그들은 백제 여행길에 오르기 전 관련 도서 70여 권과 백제에 관한 다큐멘터리 영상물들을 찾아보고, 전문가를 초빙해 강의를 듣는 등 온갖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곤 이리저리 흩어져 있던 백제의 숨결을 하나씩 더듬어 가며 마치 퍼즐 조각을 맞추듯 맞춰나가기 시작했다. 학생들은 직접 현장을 발로 뛰고, 눈으로 보고, 마음에 새긴 내용을 하나하나 글로 기록해 나가면서 백제의 길에서 배우고, 놀고, 연대하며, 사방에 만연한 백제의 향기에 흠뻑 취한다.

“이상하게 백제를 바라보는데 내 모습이 비친다. 거울처럼. 백제를 만나기 위해 수많은 책을 뒤지고 배낭을 메고 길을 찾아 헤맸지만, 역설적이게도 내가 찾은 건 나와 우리, 그리고 이 사회와 시스템이다.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과거들을 그저 나열하고 있는 것 같지만, 다 내 얘기다. 그래서 역사는 재밌다.”

학생들은 700년의 백제 흥망사를 말하기 위해, 한 장소에서 오래도록 서성이면 역사 기록이 빠뜨린 지점을 상상 속에서 메워보고, 아무 것도 없는 유적지에 홀로 앉아 백제의 숨결을 느끼며 숙소에서, 교실에서 삼삼오오 둘러앉아 머리를 맞대고 토론을 했다. 학생들은 이러한 과정을 마치 연애 같았다고 말한다.

여행은 단순히 지상낙원에서의 즐거운 하룻밤이 아니다. 여행은 새로운 세계를 만나는 창이지만, 그 이면에는 조심스럽게 살펴보지 않으면 모를 심각한 문제들도 가득하다. 책은 ‘로드스꼴라’ 9명의 학생들이 백제의 길에서 얻은 지식과 감상을 바탕으로 성찰과 지혜와 비판적 시각을 함께 드러냈다는 점에서 더 값어치 있다. 그들이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방법이 함께 그려져 더욱 신선하다.



백제의 길, 백제의 향기|로드스꼴라 학생과 선생 지음|호미|1만5000원 이은정 기자
이은정 기자 | soej84@buddhapia.com
2011-04-11 오후 2: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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