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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이야기가 뭐가 어려워?
한국의 대표 연극인 오태석의 3년만의 신작 '북청사자야 놀자'



“아니야! 거긴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니깐! 거기선 힘을 더 빼야지~ 힘이 너무 들어갔어!” 3월 23일. 극단 목화가 3년 만에 내놓은 신작 ‘북청사자야 놀자(오태석 작·연출)’가 저녁 8시 공연을 앞두고 배우들의 리허설이 한창이었다.

벌써 공연을 시작한지도 1주일이 다 돼가지만, 배우들과 오태석 연출가는 대사 하나하나, 동작 하나하나를 몇 번씩 반복하며 새로 수정하고 있었다. 관객도 없는 빈 공연장에는 일흔의 노장 연출가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이미 수백 번, 수백 천도 더 맞춰봤던 대사이고 동작이지만 오태석 연출가는 “다시!”라는 말만 반복하며 마음에 들 때까지 배우들의 동작과 대사 하나하나를 체크하고 있었다.

고희의 나이가 믿겨지지 않을 만큼, 생각보다 너무 젊어 보인다고 말하자 그는 “철없이 한 평생을 살아서 그렇지 뭐”라고 말한다. 오태석은 40여 년 동안 극작가, 연출가, 제작자로 60편이 넘는 작품을 연출해 온 우리나라 연극의 산증인이자 대표적인 연극인이다.

그는 한국의 전통적 소재와 공연기법을 활용해 실험적이고 창의적인 연극으로 자신만의 독자적인 연극세계를 구축해왔다. 극단 목화는 오태석이 1984년 제자들과 함께 창단한 것이다.

이번에 오태석이 관객들에게 새로 선보이는 ‘북청사자야 놀자’는 호원사에 얽힌 슬픈 사랑이야기다. 신라시대 원성왕 때 화랑 김현과 그를 사모한 호랑이 처녀가 사랑의 위해 자신을 희생했다는 내용에 북청사자놀이와 이 시대의 전쟁과 환경파괴 등에 등한 사회적인 이야기를 함께 엮었다.

공연은 70분 동안 남녀노소 모두 즐길 수 있는 신명나는 음악극이다. 하지만 공연은 마냥 즐기고 보기에는 너무 난해한 느낌도 든다. 현대인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소재와 배우들의 토속적인 말투, 감이 잘 안 잡히는 플롯 등으로 관객들은 ‘이게 뭐야?’라는 당황스럽다는 반응도 보인다. 하지만 그런 관객의 반응에 오태석은 담담하다. 생략과 비약으로 넘쳐나는 무대는 오태석 연극에서 빠질 수 있는 요소기 때문이다.

“어릴 적에 할아버지 할머니가 옛날이야기 들려주시면, 어디 문법이 맞고 이야기가 제대로 흘러가는 거 봤습니까. 어느 순간 갑자기 호랑이가 튀어나왔다가 다시 또 다른 이야기로 흘러가고…. 그래도 우리는 그 이야기들을 재밌게 듣지 않았습니까. 어른들이야 합리적인 걸 따지고, 자신들을 이해시켜주길 바라죠. 하지만 아이들은 순순한 상상력으로 이야기 자체를 그냥 이야기로만 받아들입니다.”



오태석이 이번 공연에서 가장 신경 쓴 부분도 바로 옛날이야기처럼 공연이 보여 지는 것이었다. 그는 “일일이 이야기하고, 설명하고, 이해시키려 하면 오히려 지루하고 재미없는 공연이 된다”고 단호히 말한다.

언뜻보기엔 다소 엉성해 보이는 이야기 구성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노장의 세심의 배려가 그대로 녹아있다. 무대에는 이유 없이 말하고, 움직이고, 장치되 있는 것들이 하나도 없다. 하나하나 알고 보면 공연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도통 머라고 구시렁대는지 모르겠는 대사들은 오태석 연극에서만 만나볼 수 또 다른 재미다.

“요즘에는 잘 쓰지 않는 말들이라 낯설게 느껴져서 그렇지, 옛날에 다 우리가 썼던 말들입니다. 모든 대사는 3·4절, 4·4절로 구성돼 있는데 말 그 자체가 하나의 노래입니다. 말이란 게 원래 노래가 되기도 하고, 음악이 되기도 합니다.”

시대가 변하면서 점점 우리말이 파괴되는 것이 안타깝게 느껴졌다는 오태석은 일부러 ‘우리말’을 되살리기 위해 전국의 사투리를 수집해 무대언어로 승화시킨다.

“현대인들의 머리에는 70~80%가 서양문화로 차있지만 자신도 모르 게 전통에 대해 갈망하는 작고 굶주린 방이 있습니다. 그건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전통에 대한 DNA를 갖고 태어났기 때문이죠. 그렇기 때문에 조금만 그 감성을 건드려도 사람들은 폭포수처럼 빨아들이게 됩니다.”

현대인들의 감성을 자극하기 위한 노장의 세심한 배려는 여기에서 끝이 아니다. 공연장 문을 열면 높다란 대나무들이 무대를 꽉 메워, 배우보다 대나무 향이 먼저 인사를 한다. 관객들에게 도시의 각박함 속에서 잠시나마 벗어나 휴식과 안도감을 느끼게 하기 위한 오태석의 자그만 선물이다.

신명나는 우리가락과 어울려 등장하는 커다란 북청사자는 공연의 하이라이트이다. 북청사자놀이는 함경남도 북청군에서 정월 대보름에 사자탈을 쓰고 놀던 민속놀이다. 사자는 잡귀를 쫓고 집안을 평안하게 하는 ‘용’과 같은 영적인 존재로 여겨졌다.

오태석은 연극에 소, 돼지, 닭, 오리 등을 우루루 등장시켜 ‘구제역 파동’에 현실을 비꼬기도 한다. 북청사자는 이런 사태를 해결해 주는 영적인 존재로 등장한다. 오태석은 “원래 놀이라는 것 자체가 그 시대의 어느 것 하나를 들춰내 비판하고 자책하며, 현재의 우리를 다시 되돌아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연극은 구제역이 북청으로 옮겨가면, 북청사자가 이를 해결해 줘야하기 때문에 DMZ를 넘어가야 한다는 이야기도 담겨있다. 연극에서 북에 가고자 하는 열망이 담겨진 건 오태석 자신이 어머니 고향인 북청을 그리워하기 때문이다.

오태석은 “북에 대한 망향은 단순히 나만이 갖고 있는 그리움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그리움 이다”라며 “북에 대한 그리움은 드러내지 않을 뿐, 우리가 모두 인식하고 있는 부분이다”라고 말했다.

40년 넘게 연극과 한 평생을 보낸 그는 “세상에서 버려진 쓰레기들 중에서 또 쓸 만한 것을 골라 사람들에게 ‘이것도 쓸 만하다’고 알려주다 보니 세월이 이렇게 흘렀다”고 말한다. “전통은 박물관에 두고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숨 쉬는 것”이란 말하는 오태석은 “앞으로도 우리의 씨앗을 찾아 작품 활동에 매진할 것”이라 말했다. ‘북청사자야 놀자’는 서울남산국악당에서 4월 17일까지 열린다. (02)2261-0514
이은정 기자 | soej84@buddhapia.com
2011-04-11 오후 2: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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