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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왕삼매론>에는 ‘몸에 병 없기를 바라지 말라’ ‘세상을 살아감에 곤란 없기를 바라지 말라’ ‘일을 계획함에 쉽게 이루기를 바라지 말라’고 말한다. 즉 고통과 즐거움이 결국 떨어져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뜻한다. 모든 것이 빈틈없이 계획대로만 이뤄진다면 좋겠지만 세상은 그렇지 않다.
시간과 장소를 불문하고 어디서 무슨 일이 갑자기 생길지 모른다. 그것이 우리네 인생이다. 만화에는 이런 ‘뜻밖의 일’들이 기상천외하게 일어난다. 허를 찌르는 만화의 반전과 탈 논리는 노자의 ‘무위무불위(無爲無不爲)’를 떠올리게 한다.
7080세대들에게 웃음과 감동을 줬던 ‘꺼벙이’ ‘독고탁’ ‘까치와 엄지’서부터 요즘 극장가를 주름잡는 3D 애니메이션 영화들까지. 만화와 애니메이션은 시대가 변함에 따라 사람들에게 항상 상상의 세계로 통하는 문이었다.
만화와 애니메이션은 필연보단 우연을, 논리보단 역설을, 상식보다는 상상을 말하며 뜻밖의 만남을 만들어주는 장소가 됐고, 설마, 설마 하는 것들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만화나 애니메이션이 우리 삶 속에 너무 익숙하고 편안하게만 다가와 그것들에 대한 진지한 얘기를 논해본 적이 거의 없다. 단지 움직이지 않는 것을 움직이게 하고, 현실에선 이뤄지지 않는 일들이 벌어지는 가끔 웃기는 존재로만 여겼다. 20년 동안 현장에서 TV 시리즈 등 애니메이션, 멀티미디어 콘텐츠를 창작해 온 저자는 만화·애니메이션 안에도 시대의 화두를 푸는 해답이 있다고 제시했다.
만화나 애니메이션을 그저 ‘아이들이 보는 것’ ‘웃기는 것’ ‘극장이나 TV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라고 여기면 그 속의 거대한 스펙트럼을 발견하기 어렵다. 책은 애니메이션 전반의 문제를 폭넓게 건드리며, 애니메이션 본질에 접근하고 있다. ‘움직이지 않는 것을 움직이게 한다’는 단순한 기법적인 문제보다는 애니메이션의 내용, 형식, 기법, 재료, 감상 등의 다양한 관점으로 시대의 화두와 애니메이션을 연계해 바라보았다.
저자는 우선 철학자와 만화가는 우리가 일상에서 지나치기 쉬운 당연한 것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는 점을 공통점으로 들며, 당연한 것에 질문을 던지면 철학이 되고, 당연한 것에 진지하게 태클을 걸면 만화가 된다고 말한다.
예로, 귀여운 파란 해달이 등장하는 만화 ‘보노보노’에서는 쉽게 풀리지 않을 철학적 질문들도 쉽게 던진다. “너부리야, 난 왜 곤란해 하는 걸까.” “보노보노, 곤란해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해서 곤란한 거야. 살아 있는 한 절대 곤란한 거야. 곤란하지 않게 사는 방법 따윈 절대 없어.” 이 만화에서는 이해력이 부족하고 굼떠서 순진해 보이는 보노보노와 성질 급하고 거칠지만 속정 많은 너부리, 깐죽거리는 포로리가 만나 아무것도 아닌 것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주고받으며 일상의 무게를 덜어준다.
또한 아리폴먼 감독은 ‘바시르와 왈츠를’에서 전쟁과 정치, 종교, 학살 등의 무거운 주제를 애니메이션 형식으로 다뤘으며, 왕쉬보는 개인사와 중국 현대사를 엮어 ‘천안문 광장의 태양’을, 마르잔 사트라피 감독은 이란의 역사와 현실을 ‘페르세 폴리스’로 탄생시켰다.
예술, 종교, 철학, 과학 등이 삶의 문제들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하고 답을 구하려 애쓸 때 만화와 애니메이션은 특유의 익살로 깐죽거린다. 만화나 애니메이션은 철학의 정리들을 들쑤시고, 과학의 가설과 결론을 의심하며 뒤섞어 버린다. 또한 종교의 엄숙함과 예술의 권위마저도 조롱한다. 저자는 이러한 만화와 애니메이션 특징에 대해 “뜻밖의 만남과 영원한 호기심의 세계가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책은 애니메이션 전공 서적도 아니고, 교양서적도 아니다. 그렇다고 미학 책도 아니며 테크닉 북도 아니다. 저자는 단지 애니메이션과 애니메이션이 아닌 것들의 대화, 종교 철학 예술 문화 과학 기술 공학과의 대화, 내용과 형식, 재료와 기법, 창작자와 감상자의 대화, 애니메이션이 담고 있는 넓은 스펙트럼, 대립된 극단 사이의 대화를 이야기한다.
즉, 상생은 서로를 길러주며 상극은 생산적 힘을 갖게 하는 삶의 절대적 필요성이라는 점을 내세워 ‘상생상극’이라는 또 다른 주제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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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과의 대화|이정민 지음|종이거울|1만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