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5 (음)
> 종합
‘팔려 간’ 대장경
불교계 무관심 속 경남도 등 지자체만 행사 열중

3월 19일 대구 동화사 통일대불전. 고려 초조대장경 복원간행본 봉정식이 봉행됐다. 불교계로서는 ‘1000년 만의 귀환’이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을 만큼 역사적인, 감격스러운 날이었지만 현실은 달랐다. 봉정식은 ‘조촐하게’ 치러졌다.

행사에서는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은 보이지 않았다. 스님은 이날 고려 초조대장경을 봉정하고 치사를 하게 돼 있었지만 불참했다. 일반 대중의 참여도 적었다. 행사에는 동화사 사중 스님들이 동원됐고, 합창단과 취재진을 합쳐 300여 명이 참석했다.

고려대장경 조성 1000년 기념사업이 불교계의 무관심 속에 뚜렷한 구심점 없이 겉돌고 있다. 행사의 핵심 축이 돼야할 불교계는 강 건너 불 보듯 하고, 사업성과에 치우친 기관별 홍보는 국민들의 혼란만 가중시키고 있다.

조계종 문화부장 효탄 스님은 “고려 초조대장경 1000년과 관련된 사업에 대해서 종단이 무관심한 것처럼 보이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前 총무원장 지관 스님 당시 팔만대장경 목판본이 있는 해인사를 중심으로 사업을 진행하기로 결정했다”고 해명했다.
조계종이 종단차원에서는 진행하는 대장경 천년행사는 9월 20일~11월 20일 불교중앙박물관에서 진행될 대장경 전시회가 전부이다.

일간지, 교계 언론, 단체 등은 고려대장경 관련 기사를 특집으로 보도하고 있다. 하지만 고려대장경 혹은 초조대장경이 아닌 ‘팔만대장경 조성 1000년 해’로 잘못된 기사가 보도되고 있는 실정이다. 팔만대장경을 일반적으로 해인사에서 소장하고 있는 재조(再雕) 대장경을 칭한다는 점에서 대중을 혼란에 빠뜨릴 것은 자명하다.

최근 교계 한 신행단체는 기관 내 사업의 의미를 대장경 1000년에서 찾는다고 밝혔다. 이 단체는 ‘팔만대장경 1000년’을 맞아 행사를 진행한다는 내용으로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이 단체의 관계자는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대부분의 기사에 그렇게 보도돼 의심 없이 팔만대장경 1000년이라고 적었다”고 말했다.

이와 같은 착각(?)은 행사를 주최하는 정부도 마찬가지이다. 대장경천년세계문화축전 조직위원장 김두관 경남도지사는 3월 초 A신문 인터뷰에서 “올해가 팔만대장경 목판을 제작한지 1000년이 되는 해”라고 말했다. 교계 한 신문도 해인사 주지 선각 스님 인터뷰 기사에 버젓이 ‘팔만대장경 조성 1000년’라고 썼다.
이렇다보니 올해가 초조대장경 조성 1000년의 해라는 것을, 초조대장경이 무엇인지 아는 이가 드물 수밖에 없다.

조계종의 한 교역직 스님은 언론의 잘못된 보도를 시정해야 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잘못된 내용은 언론에서 바로 잡아 줄 일”이라며 언론에 책임을 돌렸다. 고려대장경은 우리 민족의 것이고, 전 세계 인류문화유산이라고 하지만 주체는 분명히 있다. 굳이 말하자면 불교계이고, 팔만대장경판을 보유하고 있는 조계종이다.


대구시, 동화사, 고려대장경연구소가 공동으로 복원간행한 고려초조대장경. 2011년 3월 19일 대구 동화사에서 복원간행본 봉정식을 봉행하고, 일반에 최초로 공개됐다.

#천 년의 가치 상업성에 흔들린다
고려대장경축전 두고 지자체ㆍ해인사 이전투구…불교계 신뢰마저 위협


고려대장경연구소(이사장 종림)는 2007년 ‘고려대장경 천 년의 해 선언식’을 열기 한 해 전부터 기념사업을 추진했다. 시작은 불교계에서 터뜨렸지만 이후 사업은 대구시와 경상남도를 중심으로 흘러갔다. 불교계의 무관심을 틈타 대구시와 경남도가 사업을 서둘러 추진하고 관련 사업 예산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당시 초조대장경 디지털화를 진행 중이던 고려대장경연구소는 ‘초조대장경 1000년’의 의미를 부각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2007년 선언식 직후 대구시도 부인사를 중심으로 사업을 진행 중이었지만 실무팀에서 주춤하는 사이 경남시가 한 발 앞서 나갔다. 경남도와 합천군, 대구시와 달리 고려대장경연구소와 해인사는 주도적으로 이끌지 못했다. 연구소는 물론 불교계에서는 해인사에 힘을 실어 줬지만 이미 한 발 늦어 행사를 위한 예산 확보는 어려워졌다.

불교계가 이 사업을 주도적으로 추진하지 않은 이유는 수익이 없을 것이라는 판단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2009년 3월 한국문화관광연구원에서 조사한 대장경 천년 세계문화축전의 타당성 조사 결과 경제적 파급효과는 3283억 원으로 평가됐다. 결국 수익창출과 대장경을 통한 문화콘텐츠 가치 발견, 문화국가로 이미지 향상에 불교계가 기여할 기회를 눈앞에서 놓친 것이다.

지자체가 대장경 천 년 사업을 대하는 자세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경남도는 예산 확보 전까지 만해도 고려대장경연구소와 해인사에 우호적이었다. 콘텐츠 확보를 위해서였다. 하지만 예산 확보 이후부터 경남도와 대구시는 독자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합천 해인사가 있는 경남도는 세계문화유산인 팔만대장경 판전(국보 제52호)과 팔만대장경 판(국보 제 32호)을 전면에 내세우며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대구시는 부인사에 보관돼 오다 몽골군의 침입으로 소실된 초조대장경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사업을 추진 중이다. 이와같은 경상남도와 대구시는 이벤트성 프로그램의 지나친 과열과 중복된 사업으로 예산 낭비와 고려대장경의 가치를 퇴색시키고 있다. 이에 2008년 문화관광부와 2009년 6월 기획재정부에서는 공동개최와 연계추진을 권고했으나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지자체들이 실적위주의 편의주의적 행정을 추진했기 때문이다.

결국 대구시와 경남 합천군은 대장경 관련 사업 예산을 축소했다.
대구시는 8월 열릴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맞아 초조대장경을 문화관광상품으로 팔공사 일대 국제관광선원, 대장경 천년 문화축전, 팔공역사문화 공원조성 등 120억을 투입할 계획이었으나 2010년 대구지역기독교총연합회가 ‘편향적인 종교지원정책 반대’ 입장을 밝히면서 무산됐다. 2014년까지 60억 원을 들여 초조대장경 인쇄본 2000권을 복원 사업 외에 나머지 행사에 계획됐던 24억의 예산도 국비가 배정되지 않으면, 사업을 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김범일 대구 시장은 1월 원불교 대구경북 교구에서 열린 종교인평화회의 신년교례회에서 “불교계가 섭섭하다고 하는데, 제가 섭섭하다. 불교계가 시키지도 않은 초조대장경 천년 기념사업을 기독교인 이어령 前 장관의 조언을 듣고 몇 년 전부터 준비했지만 불교계로부터 고맙다는 소리 한번 못 들었다”며 실망감을 감추지 않았다.

해인사 축전 전체 예산도 450억 원으로 계획했다가 (정부 방침에 따라) 결국 306억 원으로 줄였다.


#‘대장경’ 이름 딴 육식메뉴 등장‘당혹’

올해 9월 해인사 일대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축전 행사의 먹을거리로 육식메뉴가 개발되는 어처구니없는 사태를 낳았다. 정신문화를 강조하겠다던 축전에서 육식과 살생을 피할 수 없는 식단이 개발된 것이다. 합천군이 개발한 대장경 한정식에는 쇠고기 육전, 칡 물로 찐 흑돼지 수육 등으로 구성돼 있다.‘대장경’의 타이틀을 단 고기요리를 상업성의 극치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경남 부산 대구 울산 경북 등 영남권 5개 시도교육청은 대장경 축전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업무협약을 맺고 △2011년 수학여행 및 현장체험학습 계획에 축전 반영 △각급 학교 축전 체험학습 프로그램 참여와 문화탐방 지원 △합천 해인사와 대장경 문화축전의 산 교육장 활용 등에 합의했다. 그러나 대규모 학생 동원으로 대장경축전을 관제 행사로 전락시키는 것은 아닌지 우려되고 있다.

대구시와 경남도간의 대화 부재도 문제지만 해인사의 의욕과다도 문제다. 우선 불교계 내에서도 지자체에서 예산을 가지고 있는 이상 지자체를 중심으로 사업에 참여할 수밖에 없다. 경남 합천군과 함께 축제를 준비하고 있는 해인사는 팔만대장경을 부각시키기 위해 고려대장경연구소나 대구시와도 소통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불교계에서는 이런 모습에 대해 해인사가 당장 1000년의 해가 1/4분기에 들어서고 있는 시점에서 대장경 가치의 현대적 구현보다는 이번 행사에서 불교계 독점지위를 차지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대장경의 의미 축제로만 알려야 하나

초조대장경 1000년을 맞아 각 시도별 자체 행사가 난무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축제에 대장경의 가치가 일반 대중들에게 정확히 전달될 가능성은 미약하다. 자칫 축전은 물론이고 고려대장경 1000년의 가치 자체가 장사치들의 속셈으로 평가 받을 우려가 높다. 관람객들이 허술한 축전에 실망하고 예산 낭비를 질책하면 해당 지자체는 물론이고 불교계에 대한 불신마저 제기될 수 있다.

고려대장경연구소를 비롯해 불교학계에서는 올해가 대장경 1000년의 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정작 축전은 개신교 신자인 이어령 前 문화부 장관이 대구시에 요청하면서 성사됐다. 축제는 지자체가 앞장서고 있는 것이다. 불교계는 뚜렷한 대안이 없다며 수수방관하고 있다.

자신의 가치를 깨달으라는 부처님 말씀을 따르는 부처님 제자가 경제논리에 따라 대장경 1000년을 일회성 행사로만 보는 안목으로는 새 천년을 기약하기 어렵다. 자성과 쇄신을 위한 결사가 우물 안의 메아리가 되지 않으려면 대장경이 민중의 힘으로 이뤄졌듯, 결사 또한 대장경의 의미를 되새겼어야 한다. 불교문화재에 편성되는 예산이 종교에 편성되는 예산으로 보여 지는 것도 자기 종교를 포교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삼는 옹졸한 태도에서 비롯된다는 자성은 해보지 않는 것인지.

올해가 초조대장경 1000년이라면 앞으로는 새롭게 쓰는 대장경 1000년의 시대다. 예산을 탓하면서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려는 불교계의 무관심부터 자성과 쇄신이 필요하다.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책정된 예산 안에서 연등축제를 활용하는 방법은 생각해 보지도 않고 식상한 축제를 여는 자신의 모습이 부끄럽지는 않은지 묻고 싶다. 불교계의 무관심 속에 고려대장경 1000년의 해가 무심히 흘러가고 있다.

고려대장경연구소 오윤희 前소장은 “당시 불교계가 예산을 확보했어야 대장경의 의미를 살리며 행사를 진행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지금이라도 불교계와 자치단체가 대화를 통해서 협력을 하고, 국민들에게 최소한의 교육효과와 관심이라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초조대장경은…
초조(初雕)라는 말은 ‘처음으로 새긴’이라는 말이다. 목판에 도장을 새긴 듯 글자를 새기고, 도장을 찍듯 찍어서 책을 만드는 이른바 ‘목판 인쇄술’로 만들었기 때문에 ‘새겼다’고 부른다. 초조대장경은 고려현정 2년(1011)에 새기기 시작했던 목판대장경으로 송나라 개보대장경(開寶大藏經)에 이어 역사상 두 번째로 새겨진 대장경이다. 이 대장경을 초조 ‘처음 새긴 대장경’이라 부르는 까닭은, 두 번째로 새긴 재조(再雕) 대장경이 있기 때문이다. 해인사에 보존돼 있는 팔만대장경이 그것이다. 보통 해인사의 대장경을 그냥 ‘고려대장경’이라고 부른다. 일반 사람들이 보통 해인사의 팔만대장경을 고려대장경이라고 부르는데 비해, 학자들은 초조대장경과 재조대장경 그리고 그 중간에 교장(敎藏)이라고 부르는 또 다른 대장경(교과서 표현은 속장경)을 합해 ‘고려대장경’이라고 정의한다. <대장경, 천년의 지혜를 담은 그릇> 中
이상언 기자 | un82@buddhapia.com
2011-04-05 오전 11: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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