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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 딱재이 천년의 지혜 이어간다
경북 무형문화재 30호 한지장 김삼식

“철썩~ 철썩~ 철썩~”
출렁이는 물질소리가 겨울파도 같다. 한지장 김삼식 한지장(69, 경북 무형문화재 제30호) 씨의 물질 34번에 전통한지 한 장이 탄생했다. 팔꿈치까지 걷어 부친 김 한지장의 팔에는 탄탄한 근육이 울퉁불퉁 춤을 쳤다. 꽉 다문 입은 면벽(面壁) 60년의 부동심(不動心)이, 집중하는 눈은 살아 있었다.

김삼식 한지장이 만드는 종이는 천연재료만 사용하는 까닭에 날이 조금만 따뜻해도 건조하는 과정에서 부패하기 십상이다. 때문에 그는 늦가을 한로를 전후에 한지제작을 한다. 김 씨는 물질을 하고 얼음덩어리가 된 손을 펄펄 끓는 물에 넣으며 “물이 끓어도 손이 안 디어~”라며 활짝 웃어 보였다. 60년 딱재이(닥나무의 채취부터 한지제조의 전 과정을 능숙히 할 수 있는 한지 장인을 일컫는 경상도 사투리)의 웃음은 호방했다. 작업장에는 황촉규(닥나무) 뿌리가 가득 실린 손수레가 보였다. 그는 황촉규를 화학풀 대신 접착제로 사용한다. 작업실 뒤에는 콩대, 고춧대 등을 태워 만든 천연재가 모셔져 있었다. 양잿물 대신 표백제로 사용하기 위해서다. 그는 닥나무를 파종해서 기르고, 천연재를 만들고, 황촉규를 기르는 등 종이를 만드는데 쓰이는 재료부터 시작해 1000년 전 고려시대 선조들이 하던 방법 그대로 종이를 만들고 있다.


김삼식 한지장의 한지는 초조대장경 복원용으로 사용된다. 초조대장경 복원간행위원회(위원장 종삼)는 2004년부터 진행한 디지털 전산화 작업에 이어 국내 인경본 212권과 일본 남선사 소장 인경본 1825권 등 초조대장경 2000여 권을 원본에 가까운 형태로 복원하는데 김삼식 한지장의 종이를 선택했다. 김삼식 한지장의 종이가 초조대장경 인쇄에 사용된 종이와 가장 유사할뿐더러 종이 질 또한 가장 우수했기 때문이다.
“올 봄 복원 간행사업 관계자들이 진짜 1000년 전 초조대장경 진본을 갖고 와서 보여주는데 한 눈에 제 종우(종이)가 고려지라는 확신이 생기요. 고려지가 1000년이 간다고는 했지만 내가 1000년을 살아보지 않았으니 확인은 못했잖아요. 근데 대장경 원본을 보니 내 종우(종이)가 보이는 기라.”

초조대장경 원본은 글자 혹 하나 안 바뀌고 반짝반짝한 고려한지 그대로였다. 고려한지를 만든 지 60년이 다 돼서야 김 한지장은 자신이 하는 일이 어떤 가치가 있는 일인지 새삼 깨달았다. 초조대장경을 보기 전까지만 해도 그는 특별히 전통을 고수하기보다는 “배운 것이 이것뿐이다. 먹고 살기 위해한다”는 생각이었다.
“사람들이 ‘전통을 지켜나가 줘서 고맙다, 어떻게 지켜나갈 수 있었냐’고 말하는데요. 지켜나가려고 하는 게 뭐가 있어요. 애(고생)는 뭘 애를 먹어요. 저는 초등학교 3학년 중퇴한 무식꾼이라요. 무식꾼이 먹고 살긴 살아야 해서 하게 됐어요. 사람은 진실해야한다는 마음으로 지금까지 한 것 뿐이라요. 내가 대단한 것은 하나도 없어요. 다른 사람들이 전통한지를 만들지 않으면서 거짓말로 전통한지라고 했기 때문에 그런 것이 내 기술이 월등히 뛰어난 것도 아니에요.”
그는 10살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고 시집간 누나 집에 살면서 친인척에 전해져 오던 전통 한지 가업을 이었다. 가난했던 시절 배고픔을 면하기 위해서였다.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사람의 힘만 들이면 만들 수 있는 종이 만드는 일 외에는 다른 일을 생각하지 않았다. 외길을 가려고 해서 갔던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참닥(조선닥)이 자라기에 좋은 토양, 속리산에서 내려오는 풍부한 맑은 물, 맑은 공기와 햇볕 등 천혜의 자연조건에서 4대째 내려오는 전통방법으로 만든 종이가 최고의 종이라는 신념이 있었다.


김삼식 한지장의 종이는 10년 전 아들 김춘호 씨(37)가 아버지의 가업을 잇겠다고 하면서부터 더욱 빛을 발했다.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한 아들이 가업을 잇는다고 했을 때 김 한지장은 쉽게 승낙할 수 없었다. 김삼식 한지장의 말대로 한 장의 종이가 만들어지기까지 손이 100번이 가는 이 일은 “좀 모자라고 몰라야 한다”고 할 정도로 고된 일이었다. 또 전통을 이어간다는 생각만으로는 할 수 없는 작업이었다. 김삼식 씨는 아들에게 ‘10원 귀한 줄 알아야 한다’며 3년간 객지에서 인생공부를 하고 오도록 했다. 그동안 김삼식 씨는 아들에게 최고의 종이를 만드는 방법을 전수해 주기 위한 연구 개발을 쉬지 않았다. 아들 춘호 씨는 한지대학을 다니며 이론까지 섭렵했다. 부자의 연구와 노력을 끝에 이들이 만든 종이는 2009년 문화재청의 <조선왕조실록>(국보 151호ㆍ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훼손 부분 복원에 사용됐다. ‘진실ㆍ양심ㆍ전통을 심는다’는 신념으로 내걸은 삼식지소(三植紙所)의 종이는 초조대장경 1000년을 맞았다. 시절인연이 딱 들어맞았다.

“먹고 살기 위해 했지만 내가 본심을 지켜 60년 세월을 지내다 보니, 나도 인정을 받았고 대한민국도 옳은 종이를 쓰게 됐어요. 때가 맞았지요. 어느 천년이 다가와서 또 이런 일이 올까요. 아들이 도와준 덕택에 대한민국에 중요한 일을 했구나 생각해요. 우리나라 1000년 문화유산 복원에 쓴다는 것 , 나라에서 인정한 최고의 종이라는 것만으로도 기쁩니다. 우리나라도 운이 좋았고, 우리도 운이 좋았네요. ‘참 즐겁고 기분좋다’ 라는 말 외에 더 이상 할 말은 없네요.”
천년대장경 작업은 보통 종이에 비해 20배의 공이 더 들어간다. 보통 종이가 한 장에 7000원 이라면 이 종이는 20배를 더 쳐서 받아야 하지만 그는 1만 3000원 만 받았다. 그는 아들과 늘 약속했다. 삼식지소의 종이를 값으로 논하지 않기를. <조선왕조실록>과 천년대장경 복원 과 전통을 잇는데 자신들이 만든 종이가 쓰인 것만도 감사할 뿐이기에.


“성공을 바라서는 절대 안 됩니다. 성공을 바라는 것은 욕심의 시작입니다. 욕심을 부려서 최고 종이가 된 것이 아닙니다. 돈을 빨리 벌어야겠다는 욕심은 거짓말을 낳고 결국 인간 노릇 못하고 죽습니다. 행복은 마음에 있습니다. 행복을 찾으면 여유가 생깁니다. 그래서 우리가 만든 종이는 우리나라 1등이 될 수 있었습니다.”
‘지천년 견오백(紙千年 絹五百)’이다. 김삼식 세 이름을 걸고 묵묵히 걸어온 세월 60년. 대장경 1000년의 지혜, 부처님의 가르침이 이들의 종이에 나투었다.
삼식지소:문경전통한지 문경시 농암면 내서1리 122 (054)571-2848
mghanji.com


#고려한지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물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751년)과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사경 <신라백지묵서대방광불화엄경>(755년)은 보존 상태가 완벽에 가깝다. 닥나무를 사용한 닥종이로 1300년 남짓 그 형체를 오롯이 유지하고 있다. 이 2점은 통일신라시대의 종이유물로써 우리 고유의 한지가 천 년 이상이 보존됨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최초의 종이는 서기 전 2세기경 중국에서 발명됐다. 105년 한(漢)의 채륜(蔡倫)이 생인피 섬유를 사용하여 종이를 제조하는 방법을 개량한 것으로 추측된다. 한반도의 제지 기술은 고구려 소수림 왕 372년에 불교 전례와 함께 이뤄진 것으로 추정된다.

한지는 예로부터 우리나라 뿐 아니라 중국에서도 우수성을 인정받았다. 과거 송나라 문인들 사이에선 당시 고려지가 최고의 선물 중 하나였다. 시인 소동파도 고려지를 즐겨 썼다고 전해진다.
자금성에서도 고려지를 사용했고 청나라 건륭황제가 말년을 보낸 권근제 역시 고려지로 도배했다. 고궁 창고 안에 보관 중인 고려지는 수 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본래의 색과 모양을 보존하고 있어 그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다.

종이의 발전은 고려시대 불경을 전하면서 본격화 됐다. 국가에서는 종이의 원료인 닥나무 재배를 장려하기도 했다. 고려시대에는 현종(1010∼1031) 이후에 대장경 등 큰 인쇄사업이 계속돼 제지업이 매우 활발해 졌다. 예종(1106∼1122)에서 명종(1171∼1197) 때에는 거의 100년간 전국에 닥나무 재배를 권장했으며, 민간 제지업을 적극 장려했음은 물론 관영공방을 두어 종이를 생산하도록 하여 제지업이 크게 발전했다.
고려를 이은 조선시대에도 제지업을 무척 중요시했다. 종이를 생산하기 위해 여러 곳에 닥나무 밭을 만들게 하고 닥나무 재배를 시켰다.


글=이상언 기자, 사진=박재완 기자 | un82@buddhapia.com
2011-03-19 오전 8: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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