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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역사학자가 불심 깊은 아흔의 노모를 간병한 이야기를 모아 <아흔 개의 봄>(서해문집 刊)을 펴냈다. 역사학자 김기협 박사(前 계명대 교수)는 2007년 쓰러진 어머니를 처음 모시게 됐다.
주변에서는 김 박사를 대단한 효자로 여겼다. 김 박사는 자식으로서 도리일 뿐, 어머니를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이 우러나서 그러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자식들 중 가장 마음이 어두웠다는 그가 글을 쓰게 된 이유는 어머니 병세가 호전되는 것을 보고 기뻤기 때문이었다. 그는 그때의 심정을 이렇게 적었다.
“튜브피딩으로 연명하며 의식도 미약한 채로 무기력하게 누워 계신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내 마음을 얽매고 있던 시비지심(是非之心)이 사그러들었다. 그러다 어머니가 회복의 기미를 보이기 시작하시자 그저 기쁜 마음뿐이었다. 그래서 ‘시병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김 박사는 2년간의 시병을 통해 작은 깨달음을 얻었다. 가까운 사람끼리는 즐거움만이 아니라 괴로움도 함께 나눈다는 사실, 운명이 주는 괴로움은 아끼는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가장 통렬하게 느껴진다는 사실을.
불교에서 효행은 만가지 선행(萬善)의 근본이며, 부모야말로 좋은 복전(福田)이라 했다.
부처님은 <부모은중경>에서 “천지의 귀신을 다 섬긴다 해도 부모에 효도함만 못하다”라고 설했다. “총명하고 지혜를 가진 자가 있어 생사의 피안에 도달하려면 응당 부모를 존경해야 한다”, “부모에게 효도로서 섬기는데서 오는 공덕은 일생보처보살이 받는 공덕과 같다”고도 설했다. 부모를 섬김이 불보살에 공양함과 다르지 않음이요, 이고득락(離苦得樂)하려면 부모에 자식된 도리를 다해야함을 강조했다.
어머니 이남덕 여사는 이화여전을 나와 이화여대 국문과 교수를 지낸 지성인이기도 했지만, 노년의 상당기간을 공주 갑사 대자암에서 지낸 이력이 말해주듯 여느 사찰에서 만날 수 있는 신심 깊은 보살이었다. 김기협 박사가 어머니와의 인연을 통해 2년의 시병일기를 쓰고, 부처님 법을 만난 것은 절대 우연이 아니었다.
‘아흔 개의 봄’을 통해 그가 소소하게 읊은 사모곡은 무명을 밝히는 목탁이요, 불효를 꾸짖는 죽비에 다름 아니다. 팔만대장경의 또 다른 새김이다.
김 박사는 “운명에 대한 원망이 아끼는 사람에 대한 원망으로 모습을 바꿔서 나타나기 쉬운 것”이라며 “어떤 고통 앞에서도 주어진 인연을 등지지 않는 것, 그것이 인간으로서 나 자신을 지키는 길”이라고 말했다.
김기협 박사는 책 발간에 그치지 않고 사이버 공간에서 오늘도 사모곡을 이어가고 있다. orunki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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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흔개의 봄|김기협 지음|서해문집|1만29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