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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미술사학계의 거목인 초우(蕉雨) 황수영(黃壽永·93) 박사가 2월 1일 별세했다.
황수영 박사는 한국전쟁 동란의 폐허 속에서 고인은 평생을 미술사학 발전과 문화재 발굴에 헌신해 한국문화 전반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절터에서 숱한 문화재를 찾아내고 복원했으며, 또 현재 불교미술을 이끄는 수많은 연구자를 길러내 불교의 문화유산이 황수영 박사를 통해 보존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란 평가를 받는다.
1918년 태어난 고인은 식민지시대 경복중학교와 일본 마쓰야마(松山) 고등학교를 거쳐 1941년 도쿄제국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했다.
이곳에서 우현 고유섭(1904~1944) 선생을 만난 고인은 광복 후 한국으로 돌아와 개성상업중학교 교감으로 일하던 고인은 1847년 국립박물관에 투신하 박물감을 지내며 미술사학자의 길을 걸었다. 1956년 동국대 교수로 임용돼 박물관장과 대학원장을 거쳐 1982년부터 1986년까지 이 대학 총장을 역임했다.
1959년 서산마애삼존불상을 발견했으며 1962년에는 석굴암 보수공사의 총책임자로서 진두지휘했다. 1966년에는 익산 왕궁리 석탑 발굴, 1967년에는 문무대왕의 해중릉 대왕암 발견 등 수많은 문화재를 발굴해냈다.
황수영 박사가 미술사학에 매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스승에 대한 존경과 그 가르침에서 비롯됐다.
우현 고유섭(高裕燮. 1905~1944) 선생으로부터 미술사를 배운 황수영 박사는 1944년 스승의 임종 때 ‘스승의 뒤를 잇겠다고 맹세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지난해 타계한 동갑내기 진홍섭 박사, 그리고 최순우(1916~1984) 전 국립박물관장과 같은 북한 개성 출신으로 한 문하로 ‘개성 3인방’으로 불렸다.
고인의 족적은 단순히 문화재 및 미술사 분야에 한정되지 않고 문화와 교육 전 분야에 걸쳐 광범위했다. 1962년 문화재위원회 위원을 시작으로 1981년에는 위원장을 역임하는 등 오랫동안 활동했다. 이 기간 한ㆍ일 국교정상화회담에서 문화재 반환협상의 실무대표로 활약하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985년에는 하성문화재단 이사장을 맡아 동국대 총장을 지낸 저명한 역사학자 이선근 박사 추모사업을 벌이기도 했다. 1996년에는 경부고속철도 경주노선 선정에 대한 합동조사단장을 맡아 경주 외곽노선을 관철시켰다.
고인이 발표한 논문은 400여 편, 저술은 50여권에 달한다. 대한민국 홍조근정훈장ㆍ국민훈장동백장, 5ㆍ16민족상, 자랑스러운 박물관인상 등을 받았으며, 제자로 정영호 단국대 석주선박물관장, 김동현 전 국립문화재연구소장, 이호관 전 국립박물관 미술부장 등이 있다.
고인은 평소 “우리 문화재는 하나하나가 저마다 사연을 간직하고 있다. 불교미술을 공부하는 사람으로 어찌 현장을 소홀히 할 수 있을 것인가”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정영호 단국대 석좌교수는 “선생님께서 항상 강조하신 학문의 정확성과 현장 조사의 중요성은 후학들이 본받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02)3410-31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