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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문화 중흥시킨 초의 선사의 의문을 풀다
화봉갤러리, 명선 초의전(茗禪 草衣展) 통해 초의 선사 조명

초의 선사가 유득공의 아들 유불학에게 보내 준 그림. 파공석조도


차(茶)는 1000년 전 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이 즐겨 마셔온 대표적인 음료로서, 생활의 일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커피나 다른 음료가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면서 현대인들에게 차는 점차 잊혀져가는 존재가 됐다. 차를 마실 때의 까다로운 격식과 예는 바쁜 현대인들이 실천하기에는 어려운 문화로 인식 됐다.

<동의보감>에는 차를 일컬어 머리와 눈을 맑게 하는 약초라고 명시하고 있다. 최근 ‘웰빙’ 열풍이 불기시작하면서 많은 연구가들이 차에 대한 효능을 속속들이 밝혀내자, 차가 다시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일반인들에게 차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면서, 자연스레 초의 선사(草衣禪師, 1786~1866)에 대한 관심도 높아져 가고 있다. 다성(茶聖)이라 불린 초의 선사는 <동다송(東茶頌)>, 일지암(一枝庵), 추사 김정희(1786∼1856)와 도반이었다는 사실 외에는 그 존재가 일반인들에게 자세히 드러나지 못했다.

화봉갤러리는 이런 초의 선사의 대한 의문 해소와, 존재를 알리기 위해 ‘명선 초의전(茗禪 草衣展)’을 개최했다. 이번 전시에는 초의의 유묵과 저술, 소장도서, 그와 교유했던 인물들의 간찰 등이 전시의 주를 이루며, 대부분 자본 묵서가 전시품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또한 초의의 후인들의 자료도 포함됐다.

초의 선사가 조선 후기 민멸 위기에 있던 차 문화를 중흥한 것은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초의 선사는 선수행과 차문화를 일치시켜 다도를 중흥한 다성으로 추앙받으며, 추사 등 문인 학자와 많은 사대부들과 교유하며 조선후기 문화발전에 큰 족적을 남겼다.

실로 초의 선사의 공적들은 박영보의 <남다병서(南茶幷序)>, 신위의 <남다시병서(南茶詩幷序)>, 김명희의 <다시(茶詩)>, 황상의 <걸명시(乞茗詩)> 및 추사의 수많은 걸명 편지에서 나타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의 선사의 존재가 잘 알려지지 않았던 것은, 초의 선사에 대한 자료와 학계에 대한 연구가 부족했던 탓이기도 하지만 그나마 남아 있던 자료도 여러 곳에 분산돼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런 자료들을 한 데 모아 초의 선사의 일대기를 한 눈에 살펴볼 수 있는 자리이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일지암서책목록>에 수록된 초의 소장 도서 중 서명이 같은 도서를 전시한다는 점이다. 이는 그의 수행과 학문, 시학의 토대되는 도서를 어느 정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전시는 서울 관훈동 화봉갤러리에서 4월 3일까지 열린다. (02)737-0057, 1159
이은정 기자 | soej84@buddhapia.com
2011-02-08 오전 11: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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