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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 같은 귀중한 가치 지닌 책
김재일 사찰생태硏 대표, 7년 조사 3년 편집 끝에 ‘108사찰 생태기행-산사의 숲’ 10권 완간


요즘 매서운 추위가 사람들의 옷깃을 더욱 단단히 여미게 한다. 추운겨울이 언제까지 이어지나 전전긍긍이었지만, 이제 곧 입춘(立春)이다. 계절이 또다시 옷을 갈아입는다. 사찰생태연구소 김재일 대표(63) 역시 “나도 이제 옷을 갈아입게 된다”고 말했다.

김재일 대표는 현재 폐암말기이다. 8년째 암 투병생활을 해온 김 대표는 “작년 11월 담당의사로부터 앞으로 3개월 정도 남았다는 통보를 받고 치료를 중단한 상태”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죽음을 “단지 육신이 옷을 갈아입는 것 뿐”이라 단언했다.

그런 김재일 대표가 최근 2002~2008년 전국 108개 사찰을 생태 모니터링한 기록물 <108사찰 생태기행-산사의 숲>시리즈를 완간했다. 7년에 걸친 조사와 편집소요시간만 3년이 걸린 이 방대한 자료는 원고지 7500매, 5000매 이상의 사진자료가 실려 있다.





“이제 한 달이 지났으니, 앞으로 두 달 남았네요”라고 말하는 김재일 대표의 모습은 여느 건강한 중년남성의 모습과 다를 바 없었다. “제 기분엔 한 1년은 더 살 것 같아요. 요즘 치유의 숲이란 말들 많이 하는데, 저야말로 산과 숲으로만 돌아다닌 사람 아닙니까. 아무래도 그 덕을 조금 보지 않겠습니까.”

김재일 대표의 이런 말은 현생에 대한 미련이기 보단, 숲이 그만큼 그에겐 각별한 존재였음을 의미한다. 스님, 국어교사, 작가, 시민운동가 등 화려한 이력을 자랑하는 김 대표의 삶에는 ‘숲’이 항상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사찰생태조사는 사실 개인이 진행할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러기엔 조사량이 너무 방대했죠. 1929년 조선총독부가 한국의 산림을 수탈하기 위해 한반도 전역을 조사한 이래로, 이런 대규모 조사는 아마 제가 처음일 겁니다.”

김재일 대표가 처음 사찰생태에 관심을 갖게 된 건 1990년 후~2000년 대 초, 사찰환경이 정부와 지자체에 의해 무분별하게 훼손되면서 부터다.

“무작정 시위현장으로 뛰어들어 단순대응을 하는 것 보다, 사찰환경에 대한 기초적인 연구와 자료가 있어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찰환경이 파손됐다는 것을 보여주는 거울이 필요했죠. 그 후부터 주요 사찰들을 중심으로 그 곳의 생태를 기록하기 시작했습니다.”

김재일 대표는 자료조사에 앞서 자신과 두 가지 약속을 했다. 첫째는 운전을 하지 말 것이며, 두 번째는 사찰의 도움을 절대 받지 않는 것이었다.

“생태를 살리고자 조사를 시작하면서 운전을 한다는 것은 말 도 안 되는 일입니다. 또한 기록은 철저히 객관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이뤄져야 하기 때문에 절대로 해당 사찰의 신세는 지지 않았습니다.”

김 대표는 108개 사찰을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일일이 걸어 다니며 사찰의 생태를 모니터링 했다. 단순히 숲의 식물만이 아닌, 동물, 조류, 곤충, 토질, 토양 등을 두루 조사했다.

김 대표는 “생각 외로 사찰 생태가 잘 살아있는 것을 느꼈다”며 특히 “경북 봉화의 어는 사찰 앞 마당에는 천연기념물인 두점박이 올빼미가 스님들과 함께 어울려 사는 걸 보고 깜짝놀랐다”고 밝혔다. 반면 사찰 자체가 생태를 파괴하는 경우도 있어, 안타까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또한 김 대표는 “경전에 나오는 조경과 식생을 거의 찾아볼 수 없어 아쉬웠다”며 “우리 전통의 식생이 아닌 외래종과 많이 교란되거나, 파괴된 상태”라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김재일 대표는 얼마 전 조계종 측에 ‘불교수목원 설립 제안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내가 원하는 불교수목원은 휴양, 교육, 치유 등 다양한 기능을 하는 멀티 수목원입니다. 수목원을 통해 각 사찰에 맞는 식생을 공급하고, 하나의 ‘불교성지’를 만드는 것이 저의 원(願)이었습니다.”



김재일 대표가 이렇게 까지 숲에 대한 애착심을 드러내는 것은 불가와의 인연도 한 몫 한다. 그는 “내가 불자가 아니었다면 절대 생태운동가가 되지 않았을 것”이라 단호히 말했다. 김재일 대표는 교편을 잡게 된 지 6개월 만에 우연히 안성 칠장사에서 만난 한 스님의 화두를 받고 출가를 결심하게 됐다.

“출가해서 가장 놀랐던 점은 부처님이 숲이 성자였다는 사실입니다. 부처님은 일생을 숲과 함께 지내신 분입니다. 만약 내가 다른 스님들처럼 강원이나 선원에 들어가 공부를 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입니다.”

출가한 지 5년 후, 그는 다시 세속으로 돌아왔지만 “다음 생에도 꼭 스님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김재일 대표가 그토록 사랑한 생태는 그에겐 마냥 기쁨만을 안겨주는 존재는 아니었다. 그가 폐암에 걸린 이유도 새만금사업 시위운동을 나갔다 감기에 걸린 것을 방치해 폐암이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태에 대한 그의 사랑은 여전히 식을 줄 몰랐다.

“현대에 이 책은 그다지 주목받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책이 불교계 수행환경에 큰 역할을 하게 될 거란 점입니다. 일연 스님이 쓰신 <삼국유사>도 처음엔 세상의 잡다한 이야기를 모은 단순한 이야기책에 불과했습니다. 제가 생태전문가는 아니지만, 이 책은 분명 1~200년 후에는 이 땅의 생명변화를 관찰하고 깨닫게 해주는 중요한 자료가 될 것입니다.”

108사찰 생태기행-산사의 숲|김재일 지음|지성사 펴냄|17만원
이은정 기자 | soej84@buddhapia.com
2011-02-08 오전 10: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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