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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저문다. 기억될 수 있는 하루였을까. 기억될만한 하루는 누구에게나 그리 많지 않다. 새로운 하루가 오늘의 하루를 잊게 하고 또 다른 하루가 그 하루를 잊게 한다. 짙어진 어둠 속에서 법고 소리가 들려오고, 대중은 각자의 ‘하루’를 들고 법당에 든다.
힘겹게 하루를 살았지만 보고 들은 만큼 가슴은 채워지지 않았고, 가슴을 채우고 있던 생각들은 세상을 채우지 못했다. 부처님을 부르는 대중의 목소리가 파도처럼 부처님 전에 부딪히고, 지옥으로 떠났던 종소리가 파도처럼 돌아온다. 무릎 밑의 좌복보다도 작은 가슴을 오늘도 채우지 못한 채 하루를 또 잊어야 한다. 이천 오백 년 전의 잊히지 않는 그 하루가 오늘도 대중의 무릎 위에 놓이고, 기억될 수 있는 하루를 위해 대중은 다시 부처님을 부른다. 어느 해 겨울 장성 백양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