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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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의만 갖추면 어떠한 질문도 가능
윤창화의 선원총림을 가다 - 보설(普說)ㆍ방참(放參)ㆍ청익(請益)



대중, 신도 요청시 열리는 보설(普說)

보설(普說)이란 ‘널리 대중들에게 법을 설한다’는 뜻으로서 선종사원(총림)의 주지가 행하는 법문(설법) 가운데 하나이다. 장소는 법당에서 하기도 하고 방장에서 하기도 하는데, 법당에서 하는 경우가 많다. 법당에서 하더라도 평상복 차림으로 할 뿐, 가사 등 법복을 입지는 않는다.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상당법어, 소참 등은 정기적, 의무적 성격을 띠고 있는 반면, 보설은 비정기적인 설법으로서 대중들이나 유력한 신도가 요청했을 경우에만 한다.

<칙수백장청규>(1338년 편찬)에는 보설에 대해, “대중들이 향을 사루고 청하면 법상이 설치된 곳에서 행한다. 또는 단월(신도)의 특별 요청이 있을 때 대중을 위하여 법좌에 올라가 설법한다”라고 하여, 대중들이나 신도들이 요청하면 행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보설은 ‘특별 법문’이라고 할 수 있다.

보설은 대중적인 설법으로서 송대 초까지만 해도 한 적이 없었다. 당시까지 법어는 상당. 소참, 조참, 만참으로서 모두 4가지였는데 이것은 모두 전문 수행자 즉 스님들을 위한 법문이었다. 그 후 신도 등 대중들을 위한 ‘보설’이라는 형태의 새로운 법문이 생긴 것인데, 이 시기 선불교는 율종, 화엄종, 천태종, 등 중국불교의 모든 종파는 물론, 중국의 민간신앙인 도교까지 제치고 종교계의 전면에 등장했다. 선은 승속 상하층에 깊이 각인되어 아낙네들도 저자 거리에서 선을 담론할 정도였다. 수행승들과 일반 불자 모두에게 어필할 수 있는 대중적 성격의 법문이 필요했는데, 그것이 이른바 보설이었다. 이 시기에 이르러 선불교가 보다 대중 지향적인 성격을 띠고 가고 있었다.

보설은 간화선의 거장이며 사회성 짙은 선승인 대혜 선사(1089-1163)에 의하여 크게 유행했지만, 처음으로 보설을 행한 이는 대혜 선사에 약 60년 앞선 진정극문(眞淨克文, 1025-1102)선사이다. 이후 오조법연(1024-1104)의 제자로서 이른바 삼불(三佛)이라고 칭해졌던 불안청원(1067-1120), 불감혜근(佛鑑慧勤, 1059-1117), 불과원오(1163-1135)도 보설을 했다.

무착도충(無着道忠, 1653-1744)이 편찬한 <선림상기전>에는 “보설은 곧 승좌설법(법상에 올라가 설법하는 것)이다. 상당법문도 승좌설법이다. 다만 차이점은 보설을 할 때는 향을 사루고 축향(祝香)하지는 않는다. 법의를 입지도 않는다. 보설은 진정극문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삼불(三佛 佛眼. 佛鑑, 佛果)도 행했고, 대혜종고에 이르러 바야흐로 크게 성행했다(三佛亦行之, 到大慧方盛)”라고 말하고 있다.

앞의 자료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특히 대혜 선사(1089-1163)가 많은 보설을 남겼는데, <대혜어록> 30권 가운데, 제13권에서 18권까지가 보설이다. 읽어보면 수행자들의 청에 의하여 하는 경우도 있고, 거사 등 유력한 신자의 요청에 의하여 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는데, 내용은 거의 상당법어와 다름없다. 차이점이 있다면 상당법어에 비하여 내용이 길고 군말, 군더더기가 많은 편이다. 대중적 성격을 띠다보니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특히 보설을 요청하는 이가 거사 등 일반 불자일 경우 상당법어처럼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방장의 사정으로 법문을 쉬는, 방참(放參)

방장(주지)이나 조실이 부득이한 사정으로 인하여 법문을 쉬는 것, 법문을 ‘땡’ 치는 것을 방참(放參)이라고 한다.

주로 고급 관료나 귀한 외빈이 왔을 때, 또는 임시 기도, 행사, 불사 등으로 인하여 바쁠 때는 설법을 ‘땡’ 칠 수밖에 즉 거를 수밖에 없는데, 이때는 미리 승당이나 방장, 또는 중료 등에 방참패(放參牌)를 걸어서 알린다.

상당법어를 쉴 때는 상당방참패를, 조참을 쉴 때는 조참방참패를, 만참을 쉴 때는 만참방참패를 거는데, 부정기적인 법문인 보설은 방참패가 없다. 그리고 방참 때가 되면 다시 방참종을 쳐서 재차 알린다. 법어가 없는 날에는 개인적인 시간을 갖게 된다.

선불교의 독창적 교육 시스템

수행자가 별도로 방장이나 조실스님을 찾아가 질문하는 것, 더 가르침을 청하는 것을 ‘청익(請益)’이라고 한다. 더 가르침을 받는 다는 것은 수행자로서는 큰 이익(利益)이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청익은 주로 상당법어나 조참, 만참 등 법문을 듣고 난 후에 궁금한 것이 있거나 이해되지 않는 부분, 의문 나는 점 등에 대하여 개인적으로 조실이나 방장(주지)화상을 면담하여 묻는 것을 말하는데, 시간이 정해져 있다거나 어떤 제약이 있는 것은 아니다. 언제라도 찾아가서 질문할 수 있다. 그 역시 좌선, 설법 등과 함께 선불교의 독창적인 교육시스템의 일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時)도 때도 없이 무작정 가서 불쑥 불쑥 물을 수는 없다. 청익을 희망하는 사람은 먼저 방장시자에게 신청해야 한다.

시자가 주지에게 아뢰고 주지가 시간을 내어 윤허하면 입실하게 되는데 그 절차가 엄숙하다. 청익자는 가사를 입고 방장실에 도착하여 정중한 마음으로 꿇어앉아서 마루에 있는 작은 종(鐘)을 세 번 친다. 그 종을 정종(定鐘)이라고 하는데, 청익하기 위하여 왔다는 신호이다. 이윽고 시자의 안내로 주지(방장) 앞에 가면 먼저 합장하고 인사한다. 그런 다음 향을 사루고 9배를 하고 질문한다. 질문이 끝나면 다시 3배한다. 시자에게도 감사하다는 인사를 해야 한다. 이 시자는 동자승이 아니라, 막강한 실력과 법랍을 갖고 있는 대선배이다.

조실이나 방장이 설법할 때, 또는 언제라도 학인이 묻고 답하는 것은 거의 상례화 되어 있다. 이것을 ‘빈주문수(賓主問酬)’라고 하는데, 학인(賓)이 묻고(問) 선사(主)가 답한다(酬)는 뜻이다.

<임제록>에 나오는 ‘빈주역연(賓主歷然, 주객이 둘이로구나)’이라는 말도 학인(賓)과 선사(主)를 가리킨다. 크게 예의에 어긋나지 않는다면, 즉 예의를 갖춘다면, 어떤 경우든 어떤 질문이든 문제시 하지 않는다. 그것이 곧 선문답, 법거량이다. 격조 있는 질문이라면 주지로서는 그 이상 반가운 일도 드물 것이다. 방장실을 노크하여 질문할 정도라면 그는 이미 투철한 수행자임에 틀림없다. 깨달을 날이 그다지 멀지 않았다고 평해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사실 오늘날 전해오는 <운문록> <임제록> 등 모든 선어록은 이런 과정을 통하여 이루어진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와 같이 선사와 수행자, 선승과 선승들은 활발한 문답을 통하여 생동감 넘치는 선의 세계를 창조해 왔던 것이다. 선문답은 각자(覺者) 곧 부처를 탄생시키는 결정적 순간들이 되곤 했다.

<전등록> 6권 백장선사 장(章)에 수록된 <선문규식>에는 청익과 문답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학인(賓)과 선사(主)가 서로 묻고(問) 답(酬)하여 종요(宗要, 핵심)를 드높이고 발분(發憤)시키는 것은, 이것은 법에 의하여 살아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賓主問酬, 激揚宗要者, 示依法而住也)”라고.

선문답이 곧 살아 있는 선의 정신이고 기개임을 명확히 하고 있는데, 이것이야말로 선불교의 가장 값진 모습이요, 아름다운 모습이다. 활발발하게 살아가고 있는 선자(禪者)들의 생활상이다.

그러나 사실 많은 대중들이 모인 가운데서 선뜻 질문하기란 쉽지 않다. 질문자로서는 그것이 매우 중요한 사항이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별 것 아닐 수도 있고, 또 어리석은 질문으로 치부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선불교는 이런 점을 고려하여 개별적인 대화, 개인 면담을 제도화했던 것이다. 오늘날 강의가 끝난 후 별도로 교수실로 찾아가서 묻는 것과 같은 것으로, 이것을 통하여 깨닫는 이도 많았기 때문이다.

청익(請益) 제도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잘 알 수 없으나 꽤 오래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임제록> 22단 용아참문(龍牙參問) 장(章) 끝에 청익하는 장면이 나온다. 어떤 형태이고 실제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알기 위하여 한 단락을 끌어들여 보고자 한다.

“먼저 용아스님이 임제선사께 질문했다.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이 무엇입니까? 임제선사가 대답했다. 나에게 저 선판(좌선 후 쉴 때 등을 기대는 판)을 좀 건네주게(현재 상황은 선당이라고 생각됨). 용아스님이 곧 선판을 건네 드리자 임제선사는 그 선판을 받자마자 곧바로 ‘탁’ 한 대 때렸다. (…)그 후 어떤 스님이 방장실로 가서 물었다(入室請益). 화상께서는 행각할 때에 두 존숙(고승)에게 참문한 적이 있는데, 이 두 존숙을 인정하십니까? 인정은 하지만 그 속에 조사의 뜻은 없다.(龍牙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云, 與我過禪板來. 牙便過禪板與師, 師接得便打. (…)有僧, 入室請益, 和尙行脚時, 參二尊宿因緣, 還肯他也無. 肯卽深肯, 要且無祖師意)”

‘청익’이라는 말은 이미 있던 말이다. 공자의 언행집인 <논어>에도 보이는데, 어느 날 제자 자로(子路)가 공자에게 질문했다. “어떻게 정치를 해야 잘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공자가 말했다. “솔선수범하고 노력하라.” 자로가 다시 부연 설명해 줄 것을 청하자 다시 공자가 말했다. “정치하는 자가 게으르면 아니 되느니라(子路, 問政. 子曰, 先之勞之. 子路, 請益. 子曰, 無倦)”

매우 훌륭한 말이다. 그러나 요즘 정치인들은 고급 요정에서 술 먹기 바쁘고 국내외로 놀러 다니기 바쁘다.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깊이 새겨야할 금언(金言)이다.
박기범 기자 | smile2@hanmail.net
2011-01-25 오전 9: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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