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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각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인터뷰]경기무형문화재 제40호 서각장 이규남
이규남 서각장은 <대장경>에 담긴 서각의 아름다움에 매료돼 평생을 서각에 몰두해 왔다.

“불가능해 보이는 것도 혼신의 힘을 다해 노력하면 가능하다는 것을 30년 동안 서각을 하면서 알게 됐습니다. 대장경의 경이로움도 조판에 참여한 사람들의 불심과 정성을 생각하면 고개가 절로 끄덕여집니다.”

이규남(61) 서각장(경기 무형문화재 제40호)이 지금의 자리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고교시절 우연히 보았던 대장경 때문이었다. 고교시절 친척과 함께 강화도 전등사를 방문한 이규남 선생은 그 곳에서 대장경을 직접 보았다. 전등사는 고려 시대 간행된 <초조대장경>이 보관됐던 곳이다. 목판을 직접 본 이규남 선생은 그 세밀함과 아름다움에 놀라 잠시 정신을 잃고 주저앉고 만다. 이 서각장은 전등사 스님이 직접 떠온 찬 물을 마신 다음에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조부가 논산에서 서당을 하셨다. ‘한 일’[一]자 하나를 쓸 때도 심혈을 기울이지 않으면 불호령이 떨어졌지요. 그런데 수많은 글자들이 가지런하게 조판돼 있던 대장경은 신비로움 그 자체였습니다.”

고등학생이던 이규남 서각장은 그 자리에서 자신의 인생을 서각에 던지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고등학교를 졸업 후 취업과 결혼을 하면서 서각에 대한 꿈은 잠시 미루어야 했다. 취업 후 이규남 서각장은 공예학원을 다니며 시간이 날 때마다 혼자서 연습에 몰두했다. 일주일이 걸려 문패를 만들기도 하면서 점점 서각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이 서각장은 원양 어선에서 통신장으로 일할 때가 있었는데, 나무를 구할 수 없던 바다 위에서도 야자열매 껍질로 서각을 연습했다. 야자열매는 껍질이 돌처럼 단단해 쉽게 작업할 수 없는 재질이지만 서각에 대한 열정이 뜨거웠던 이규남 서각장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1982년 오옥진 선생에게 사사

1982년 이규남 선생은 중요 무형문화재 제106호인 철재 오옥진 선생을 찾아가게 된다. 그러나 오옥진 선생은 당시 여수에서 살고 있던 이규남 서각장에게 “집에서 이곳까지 너무 멀어 배움이 고될 것 같으니 다음에 찾아오라”며 제자로 받아주지 않았다. 이규남 서각장은 그래도 3번씩 찾아갔고, 결국에는 오옥진 선생으로부터 “그 정도면 됐어”라는 말을 듣고 제자로서 사사를 받게 된다.

요즘도 서각을 배우겠다며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지만 한 달 만에 그만두는 사람이 많다. 이제는 이규남 서각장도 그런 사람들을 가려내기 위해 처음에 찾아오는 사람들은 몇 번씩 거절한다. 오옥진 선생도 그런 이유에서 이규남 선생을 여러 차례 거절했던 것이다.

이규남 서각장은 오옥진 선생으로부터 본격적으로 서각에 대해 배우게 되면서 시야도 넓어지고 실력도 하루가 다르게 늘었다.
여주에서 서울까지 오가며 서각을 배운 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당시 이규남 서각장은 결혼을 하고 부인과 초등학생 자녀를 두고 있었다. 빠듯한 월급에서 생활비와 아이 학비를 제외하면 오가는 차비도 부족했다. 하지만 이 정도의 어려움은 서각의 매력에 사로잡혀, 꿈을 키워왔던 이규남 서각장의 열정을 막지 못 했다.

이규남 서각장은 어려움에 굴하지 않고 자신만의 꿈을 포기하지 않으면 어려움을 극복할 길이 열린다고 믿는다. 3년을 꼬박 서울과 여주를 오가며 배웠다.

서각을 배우면서 경제적인 어려움 등 여러 번의 고난이 있었지만 그 때마다 이규남 서각장을 버틸 수 있게 해 준 것 역시 서각에 대한 열정이었다.

“목판 작업을 할 때 가장 행복합니다. 세상 모든 근심도 잊고, 배고픔도 잊을 수 있어요. 포기하지 않고 매진하다보면 그 뜻이 하늘에 닿아 뜻하지 않은 도움을 받기도 하더군요. ‘시간이 없다’, ‘돈이 없다’는 핑계들은 자신의 노력과 열정으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이규남 서각장은 5년 전부터는 목판으로 불화를 작업 중이다. 최근에는 기독교 성화도 작업한다. 성화는 불화와 달리 초화를 구하는데 어려움이 있다고 한다. 이 선생은 불화와 <반야심경>을 주제로 작품 전시회도 열어왔다. 하지만 사람들의 무관심이 문제였다.

“한글 작품이나 불화는 그래도 사람들이 감상을 하는데 한문 작품들은 그냥 지나친다. 한문을 읽을 수 있는 사람들이 줄어든 것이지요. 이런 상황에서 계속 서각을 통해 <반야심경> 등을 만들고 전시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스스로도 의문이 많이 듭니다.”

서각은 인간의 기본 욕구

이규남 서각장은 사람들의 무관심이나 경제적 어려움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자신이 가장 행복해하는 일이고, 어려움에 대해 생각하면 아무것도 되는 일이 없다고 굳게 믿기 때문이다. 외부 스케쥴이 바빠서 하루라도 목판을 할 수 없는 날은 허무한 마음까지 들고,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오랫동안 서각장으로서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이 일이 정말 좋은데 왜 남들은 모를까요? 앞으로 10년 동안의 계획도 세웠고 과거와 달리 여건이 조금이라도 개선된 것에 감사합니다. 어려움에 실망하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없고 자신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거든요.”

이규남 서각장의 이런 생각에는 서각에 대한 자신감이 밑바탕에 자리 잡고 있다. 이 서각장은 서각이 인간의 기본 욕구를 반영하는 활동이기 때문에 전자책이 발달하고, 인쇄술이 발전해도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자신의 생각을 글로 남기고 표현하고 싶은 인간의 욕구가 사라지지 않는 한 서각을 찾는 사람도 꾸준히 이어질 것이라는 것이다.

더구나 서각의 재료인 나무가 사람과 가장 친근한 소재라는 점도 이규남 서각장의 자심감을 높이고 있다.

“그래도 서각을 미래 시대에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지는 계속 고민하고 있어요. 쉽지는 않겠지만 좋아하는 마음으로 끈기 있게 매진하면 답이 나올 것 아니겠습니까. 강렬히 원하는 마음이 중요합니다. 대장경도 그래서 그처럼 완벽하게 탄생됐지요.”

오로지 서각만을 생각하며 사는 이규남 서각장은 서각을 배우겠다고 찾아오는 사람들에게도 엄격하다. 처음 시작했다고 장밋빛 전망만 늘어놓지도 않고, 한 번 배우면 끝을 봐야한다고 가르친다.
특히 경제적 이익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말 것을 강조한다.

이규남 서각장은 고등학생 때 단 한번 본 대장경 목판본에 매료돼 평생을 서각과 함께 할 것을 결심하고 흔들림 없는 외길을 걸었다. 그런 이 선생에게 얕은 계산이나 자신감 없는 도전은 용납될 수 없다.

이규남 서각장은 서각장의 지위에 오르고, 고려시대 보다는 발달한 기법과 기술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그에게도 오자도 거의 없고, 마치 한 사람이 제작한 것처럼 정갈한 대장경은 여전히 동경의 대상이다.

“대장경은 지금의 기술로 봐도 대단한 수준입니다. 일정 수준에 도달한 숙련공이 여러명 있어야 가능했을텐데 어떻게 숙련공을 길러냈는지 볼수록 신비해요. 전쟁 상황에서 나라를 구하려는 마음과 불심이 모아진 결과라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저 감탄스럽습니다.”

서각장 이규남 : 011-9154-2702
박기범 기자 | smile2@hanmail.net
2011-01-07 오후 10: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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