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경> 간행은 개인 수행에 정진하는 불교를 현실로 끌어냈다. 전쟁이라는 현실적 위기 에서 백성 구제를 위해 참여한 것이다. 이후에도 불교는 사회 참여 및 실천적인 모습과 수행을 중시하는 모습을 시대에 따라 각각 보여 왔다. <편집자 주>
불교의 사회참여 여전한 ‘숙제’
사회가 다변화하면서 불교의 현실 참여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2000년대 들어서 새만금 간척 사업 반대를 위한 삼보일배나 4대강 사업 반대를 위한 불교계 참여는 대표적 사례다.
사회문제에 불교계가 참여 할 때면 불교계에서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존재한다. 이런 상황에서 불교의 사회 참여는 점점 어려워지고 타종교에 비해 사회적 영향력도 감소되고 있다.
현대 포교의 기념비적 사건으로 기록되는 군승제도의 도입(1968년)과 부처님오신날 공휴일 제정(1975년), 불교방송 개국(1990년)은 군목제도(1948년), 크리스마스(1949년), 기독교 방송국(1954년)에 비해 20~30년 가량 늦게 실현됐다. 불교계 복지사업도 과거에 비해 많이 늘어나고 있어도 여전히 개신교에 뒤처진다. 인재불사와 자비실천을 위한 학교와 병원은 이웃종교의 1/10 수준이다.
최근 템플스테이 예산 삭감, 여당의 4대강 사업 예산 단독처리 문제로 정부와 대립하고 있는 불교계는 역대 정권과도 갈등을 빚어왔다. 하지만 갈등의 내용보다는 지속성 여부가 불교 안팎의 관심사다. 이유는 정권 유착 등 불교계가 지난 50~60년간 보여준 행보에 있다.
이승만 前 대통령은 1954년 ‘사찰정화 유시’를 발표하고 대처승 축출에 나서며 불교계의 반발을 샀다. 박정희 前 대통령은 ‘불교재산관리법’을 만들어 불교를 통제하고, 각 사찰 주지를 도지사 승인을 받도록 했다. 전두환 前 대통령은 불교계 인사 100여 명을 연행하고 전국 사찰과 암자 5000여 곳을 수색하는 ‘10·27 법란’을 일으켰다. 그러나 불교계는 이런 문제에 초연하는 것이 불교의 근본인 것처럼 대응해 문제를 확산시켰다.
박광서 종교자유정책연구원 대표는 “경전에 묻혀 수행만 하다보니 사회변화로 나아가는 역량이 부족하다. 조선시대 500년 동안의 탈사회화와 개인적 문제로 출가를 하다보니 자기 문제에 몰입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민주화 시기 사회 참여 꾸준
그러나 불교의 사회 참여와 실천 전통은 오래전부터 이어져왔다. 원효 대사는 항상 민중들과 함께 했으며 조선시대 서사ㆍ사명ㆍ기허 대사는 승병을 일으켜 전쟁에 참여했다.
1980년대 독재 정권이 기승을 부릴 때도 불교계는 정권을 비판해왔다. 여의도에서 출발한 부처님오신날 제등행렬이 광화문으로 진입하면 경찰이 막아섰다. 출재가자들이 시민들에게 독재정권을 비판하는 유인물을 뿌리는 등 대정부 시위 수단으로 활용했기 때문이다.
1987년 2월 7일 열린 故 박종철군 추모를 위한 범국민 대회에서는 ‘49재’가 국민적 의례로 진행됐다. 이는 한국 사회운동 최초의 불교식 천도의식이다.
2000년대 들어 불교계는 환경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새만금 사업을 반대하던 불교계는 2008년 오체투지순례를 펼쳤다. 지율 스님은 천성산을 지키기 위해 도룡뇽 소송을 제기했다. 문수 스님의 소신공양은 4대강 사업의 부당성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대장경’ 속 사회 참여 근거 풍부
<대장경>속에 불교의 사회 참여와 실천에 대한 근거는 풍부하다. <무량수경>에서 부처님은 “내가 부처가 될 수 있다고 해도 그 국토의 사람들이 미혹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면 절대로 깨달음을 얻지 않으리라”라고 밝히고 있다. <화엄경>에서는 ‘회진향속 회지향비’(진리를 돌이켜 세속으로, 지혜를 돌이켜 자비로)라고 가르침으로써 중생의 고통과 함께하는 것이 수행자의 도리라고 깨우치고 있다.
박경준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교수도 <대장경>의 가르침을 사회 참여적 의미로 해석한다. 박 교수는 “팔만대장경은 괴로움을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담고 있는데, 이 괴로움은 사회구조와 정의에 관계된 것이다”라고 밝혔다.
박 교수는 <대장경> 속의 불교의 사회 참여 근거에 대해 여러 가지 경전의 사례를 제시했다. 박 교수는 <장아함경>이 인간의 도덕적 타락이 환경을 열악하게 만드는 원인이라고 지적하고 있으며, 초월적 열반에 대한 집착을 끊기 위해 <반야경>은 공의 기치를 내걸었다고 설명했다.
박경준 교수는 ‘불공업’ 사상에 대해 “개인의 운명은 개인적인 업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공동의 업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는다는 개념이다. 따라서 개인의 행복이 사회적 선업이 뒷받침될 때 성취 가능하다는 뜻이다”라고 설명했다. 개인적 선업을 쌓는데 주력해 온 불교적 태도가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의미다.
출재가자 교육에 불교 미래 성패
불교NGO운동가들은 불교 시민사회 활동의 특수성을 어려움으로 꼽는다. 일반 시민사회단체들이 대정부 또는 대국민적 운동에 역량을 집중할 때 불교 NGO들은 대정부 활동과 불교계 내부 문제에도 대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불교 NGO운동가들과 학자들은 또 불교의 사회 참여 확산을 위해 ‘교육’을 중요한 과제로 꼽는다.
불교환경연대는 출재가자들에 대한 사회인식 강화 교육이 필요하다는 인식에 따라 2009년부터 ‘환경법회’를 진행하고 있다. ‘환경법회’에서는 불교환경연대나 각 사찰의 주지 스님이 환경 문제와 사회 참여의 중요성에 대한 내용을 주제로 법회를 연다. 그러나 사찰과 재가자들의 반응은 아직 미온적이다.
명계환 불교환경연대 조직 국장은 “불교의 가르침에 기반해 환경운동을 하고 있지만 불자들이 이를 자신과 관련된 문제로 인식하지 않으면 참여하지 않는다. 환경 등 현실 문제에 대한 교육이 사찰에서 전혀 이뤄지지 않아 법회를 통한 교육을 추진하게 됐다”고 말했다.
교육의 중요성에 대해 박경준 교수는 “<대장경>은 개인의 완성과 사회의 완성이 둘이 아니라고 가르치고 있다. 불교의 교리와 사상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교육시켜 조직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인터뷰>
“1000명의 불교 파워엘리트 양성할 것”
종교자유정책연구원 박광서 대표
“3년 내 불교인재지금을 연 300억 규모로 조성해 1000명의 불교 파워엘리트를 양성 할 것이다. 이런 교육시스템이 정착되면 불교의 사회참여와 실천이 확산될 것이다.”
박광서 종교자유정책연구원 대표는 현재의 불교를 ‘근본적 위기’로 보고 교육 시스템을 통해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불교가 개인의 변화와 사회의 변화를 동시에 이끌어야 발전할 수 있음에도 이를 이분법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박 대표는 두 가지를 동시에 추구하지 못 하면 불교는 점차 쇠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박광서 대표는 사회 각 분야에서 활동하는 인재들에게 불교적 교육과 화두를 던져주고 양성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불교신자와 무종교인까지 포괄하는 인재교육이 필요하다. 이들이 불교적 가치관을 갖고 각자의 영역에서 엘리트로 성장하면 불교의 사회 참여와 역량은 강화된다. 불교적 화두를 가진 축구선수, 기자, 기업가 등 사회 속에 살아있는 보살을 길러내야 한다.”
불교 시스템으로 양성된 인재들이 사회 각 분야에서 활동해야 한다는 뜻이다.
“부처님도 세상을 구제하려고 출가했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불교는 현대 사회에서는 제도와 시스템 변화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