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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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세인 내게도 깨달을 시간이 있습니까?”
대구 동화사서 선사와 신학자 만나다
불교와 개신교 갈등이 고조되는 가운데 개신교의 ‘땅밟기’가 있었던 대구 동화사에서 선사와 신학자가 만나 종교간 화합과 평화를 말했다.


조계종(총무원장 자승)은 구랍 31일~1월 5일 대구 동화사, 부산 해운정사 등에서 ‘가슴을 열어 빛을 보다’를 주제로 2011년 초조대장경 천년, 밀레니엄 평화토크를 개최했다.

행사 첫날인 31일 대구 동화사 설법전에서는 한국 불교의 대표적 선지식인 진제 스님(동화사 조실)과 세계적인 신학자인 폴 니터 교수(美 유니온 신학대)의 대담이 진행됐다. 폴 니터 교수는 비교종교학자이다. 종교학계에서는 다원주의 신학의 일인자로 평가 받는다.

니터 교수는 “한국은 현재 남북간 긴장과 불교·기독교간 갈등이 그 어느 때보다 위험한 시점으로 알고 있다. 최근 범어사·동화사에서 무례한 사건(땅밟기)을 저지른 그리스도인을 대신해 같은 그리스도인으로서 깊이 사죄한다”며 말을 꺼냈다.

니터 교수는 “종교간 평화 없이 나라간 평화가 있을 수 없고, 종교간 대화 없이 종교간 평화는 없다. 불자와 그리스도인이 만나 깊이 있는 대화를 하는 이 자리가 불교-개신교간 이해와 화합을 넘어 남북 대화의 물꼬를 틀 것을 확신한다”고 말했다.

진제 스님은 “불자와 그리스도인이 마음을 모아 인류 평화·행복을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할 시점”이라며 “사회 갈등을 해소하는 길은 모든 종교가 머리를 맞대고 모든 사람을 바른 길로 인도하는데 있다. 이것이 종교인의 책임이자 의무이다”라고 강조했다.

#평화·정의 실천에 불교적 수행이 도움
폴 니터 교수는 “그리스도인들은 평화·정의를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니터 교수는 “1980년대부터 부인 캐서린 코넬 여사와 엘살바도르에서 평화와 정의 활동을 펼치면서 우리 스스로 평화로워져야 함을 깨달았다. 이 평화는 주변의 불자들로부터 배울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개인의 평화로움에 불교의 명상이 큰 도움이 됐다. 기독교의 평화·정의 실천을 위해서는 불교의 명상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궁극적 실재’=‘참 나’
폴 니터 교수는 1962~1966 로마에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열리던 때, 로마에서 신학을 배웠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는 “다른 종교에도 하나님이 계시며, 다른 종교에도 진리가 있다”는 획기적인 교리가 소개됐다. 그는 그 후 다른 종교와의 대화는 그리스도인의 의무라고 믿게 됐다.

폴 니터 교수는 “우리가 하나님이라 부르는 궁극적 실재가 예수를 통해 이 땅에 나타났다는 기존의 입장과 다르게 나는 그 궁극적 실재가 여러 모습으로 여러 종교에서 나타난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진제 스님은 “모든 종교는 인간을 진리의 언덕에 이르게 하는데 요점이 있다”고 말했다. 스님은 “불교는 ‘참 나(眞我)’ 가운데 우주의 진리가 모두 있다고 말한다. 개개인이 ‘참 나’를 갖추고는 있지만 그 사실을 알지 못하고 수용하지 못할 뿐이다”라고 설명했다.
스님은 “사람 사람마다 갖춰진 ‘참 나’는 무시무종(無始無終)이다. 우주의 모든 생명이 ‘참 나’의 근원에서 비롯된다”고 말했다.

진제 스님은 당부했다. “모든 인류는 일상생활 속에서 ‘참 나’를 발견하는데 꾸준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스님은 부모로부터 태어나기 이전의 내 모습을 살피는 화두, ‘부모미생전(父母未生前)’을 그 방법으로 소개했다.

폴 니터 교수는 “불교에서 우리 안에 ‘참 나’가 있다고 말하듯 기독교에서는 성령이 우리 안에 있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폴 니터 교수는 30년 전부터 매일 명상을 해왔다. 그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내가 이해하지 못했던 많은 고민을 불교를 통해 해결할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자신의 저서 <부처님 없이 나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었다>는 그 이유에서 집필됐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보리·교화=구원·해방
폴 니터 교수는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참 나’[성령]을 찾고, 어떻게 평화를 얻을 것인가를 불자들로부터 명상을 통해 배울 수 있다”면서 “그리스도인은 구원을 받고자 노력하는 것과 동시에 세상을 바로는 구조적 역할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진제 스님은 “불교에서는 부처가 되는, 자아완성을 중요시 여긴다. 이는 간화선을 통해 이룰 수 있다”고 말했다.

폴 니터 교수는 “내가 들어 앉아 수행하고 있을 때 밖에서는 아이들이 죽고, 사람들이 고통 받고 있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이에 스님은 “불교에는 하화중생하는 보현행과 상구보리로 통하는 문수행이 있다. 이는 수레를 이루는 두 바퀴와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스님은 “내 눈이 어두우면서 중생을 밝은 곳으로 인도할 수 없으니 ‘자기를 바로 봄’을 먼저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깨달음은 간절함에 달렸다”
폴 니터 교수는 대담에 앞서 진제 스님으로부터 ‘진아(眞我)’라는 법명을 받았다. 니터 교수는 “진제 스님은 깨달음을 얻기 위해 수년간 용맹정진을 했다. 하지만 나는 71세이다. 내게 깨달을 때까지 시간이 있겠는가?”라고 물었다.

스님은 “깨달음은 시간에 구애 받지 않는다. 남녀노소의 구분도 없다. 오직 간절함에 달렸다”고 말했다.

#‘땅밟기’ 예수 가르침 어긋나
‘땅밟기’ 등 불교폄훼 사건에 대해 폴 니터 교수는 “그 일을 저지른 그리스도인들이 가진 복음은 진정한 복음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그 이유를 “나와 적이 될 수 있는 이웃까지도 사랑하라는 예수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땅밟기’가 예수의 가르침에 어긋난다는 말이다.
폴 니터 교수는 “지금 이 자리에서 불자-그리스도인의 대화가 진행 중이다. 서로 다른 그리스도인끼리의 대화, 특히 근본주의자와의 대화는 스님과 대화하는 것보다도 어렵다”고 말하기도 했다.

진제 스님은 “나와 네가 둘이 아님을 알면 투쟁과 반목이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스님은 “얼마전 총무원장 자승 스님이 로마를 찾아 교황을 만나고 왔다. 조계종이 2013년 개최 준비 중인 세계종교인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행사에 폴 니터 교수도 힘을 보태달라”고 말했다.

폴 니터 교수는 “자신 뿐 아니라 유니온 신학교 차원에서 힘을 모아 돕겠다”고 답했다.
글=조동섭 기자 사진=박재완 기자 | cetana@gmail.com
2011-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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