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ㆍ한나라당의 날치기 예산 통과의 여파가 조계종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조계종의 거센 비판의 움직임을 ‘템플스테이 예산 삭감에 따른 일시적ㆍ노골적인 감정 표출일 것’이라는 일각의 시각과는 달리 조계종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다.
조계종 총무원은 12월 13일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ㆍ한나라당의 날치기 예산 통과로 4대강국민논의위원회를 통한 4대강 논의가 중단되고 템플스테이 예산이 삭감된 것과 관련한 공식입장을 밝혔다. 이어 로마교황청 등을 방문했던 자승 스님이 업무에 복귀한 17일 하루 동안 중앙종무기관 부실장 국팀장 전체회의, 교구본사주지회의, 템플스테이운영사찰 전체회의, 원로회의, 중앙종회의장단 및 상임분과위원장 연석회의 등을 잇따라 개최했다.
17일 원로회의(의장 종산)는 “오로지 정법으로 삿됨을 끊고 정진하라”는 유시를 통해 조계종 총무원 입장에 지지 의사를 밝혔다. 교구본사주지회의와 템플스테이운영사찰들도 각각 결의문을 내고 총무원을 지지했다.
13일 기자회견에서는 조계종이 정부ㆍ여당과 소통을 단절할 수 밖에 없는 이유, 문화재 관련 종책 변화, 사찰 규제 철폐와 불교문화재 반환 요구 등 대정부 대책 등이 쏟아졌다.
조계종 대변인 원담 스님은 “정부는 일방적으로 4대강을 추진해 사회 갈등을 깊게 했고, 서민 예산을 모두 삭감한 예산안 처리는 국민의 삶ㆍ미래를 위한 투자를 포기한 것”이라며 “조계종은 국민과의 소통, 서민의 어려움을 보살피는 책무를 포기한 정부와 한나라당을 존중할 수 없다”고 말했다.
스님은 “화쟁위원회는 정부ㆍ한나라당 종교계 야당 시민단체와 진정한 화합의 길을 찾고자 노력해 왔다”면서 “한나라당 원희룡 사무총장이 ‘국회 예산안 처리를 미루겠다’고 약속해 놓고 국회에서 일방적으로 예산ㆍ법안을 처리한 것은 더 이상 신뢰를 줄 수 없는 행동이다”고 강조했다.
MB정부 들어 계속된 종교편향에 대한 성토도 이어졌다.
원담 스님은 “2008년 정부의 종교편향 행위에 이어 대구 팔공산 역사문화공원 백지화, 울산역ㆍ통도사역 부시 삭제, 타 종교집단의 봉은사ㆍ동화사 땅 밟기 등 종교편향 행위는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며 “일부 종교단체의 행위에 정부ㆍ지자체 정책이 변경되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가 종교갈등을 중재하고 이를 막는 제도적 노력대신 이를 두고 각 종교에 대한 흥정 대상으로 삼고 있다. 템플스테이도 문화 프로그램이 아닌 종교적인 문제로서 은혜를 베풀 듯이 간주한다”면서 “전통사찰 방재시스템 구축 예산 등도 전액 삭감시킨 장사치의 시각에 민족 문화를 맡길 수 없다”고 말했다.
조계종은 정부ㆍ여당에 대한 항의가 예산 규모의 문제가 아니라고 거듭 밝혔다. 정부ㆍ한나라당이 “삭감된 템플스테이 예산을 관광진흥기금을 활용해 지원하겠다”며 내놓은 대책에 관해서는 “국민과 불교계를 우롱하는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조계종은 이번 템플스테이 예산안 사태를 사찰 등 문화재 보전에 관한 체질 개선의 계기로 삼겠다는 각오이다.
원담 스님은 “이명박 정부의 남은 임기동안 더 이상 템플스테이 예산지원을 요구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총무원장 자승 스님은 17일 교구본사주지회의에서 “(템플스테이) 예산문제를 떨쳐버리고 진정한 변화를 통해 신도들의 힘으로 자생할 것과 의식전환을 이뤄야 한다. 한목소리로 불교가 새롭게 태어나야 하고, 아쉬움과 불이익을 감내해서라도 변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교구본사의 이해관계 따라 종책 드라이브에 수차례 브레이크가 걸렸던 전례로 볼 때 쉽지만은 않다는 것이 중론이다.
총무원의 ‘정부ㆍ여당 관계자의 사찰 출입 금지’ 공포 후인 16일 범어사 천왕문 화재 위로 방문차 범어사를 찾은 한나라당 김무성 원내대표를 범어사 측이 받아들인 것이 그 예이다. 정여 스님은 김무성 원내대표 등 한나라당 당직자들에 현장을 소개한데 이어 점심 공양도 함께한 것으로 알려졌다.
회의 참석자의 전언에 따르면, 자승 스님은 중앙종무기관 부실장 국팀장 전체회의에서 “범어사 천왕문 화재를 빌미로 찾아 온 김무성 한나라당 대표에게 덕담한 것 자체가 문제이다. 이래서는 총무원이 아무리 노력해도 외로운 싸움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여 스님은 교구본사주지회의에서 “교구본사 책임자로서 종단 지침을 엄수하지 못한 책임을 통감하며 참회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여론은 냉정하다. 한나라당 당직자의 범어사 방문 소식에 “조계종은 손발이 안맞는 것 같다” “지관 前 총무원장 시절 차량 검색 파문도 유야무야 마무리됐던 조계종”이라는 조롱 섞인 말이 들린다.
한편, 봉은사 사태로 “정권의 하수인” 취급을 받아온 총무원장 자승 스님이 이번 템플스테이 예산 삭감 파문을 정치적으로 탈출구로 활용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