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3.21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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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스님과 만난 사람들] 지헌 김기철
흙이 자신自身을 살라 자기磁器로 나투듯이

푸르다! 소나무
풀과 나무 가운데 으뜸이라
눈서리 이겨내고
비오고 이슬 내려도 웃음 짓지 않고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한결같아라.
겨울이나 여름이나 늘 푸르고 푸르다.
달뜨면 잎 사이로 금모래 체질하듯 달빛 거르고
바람 일면 맑은 노래 부르네.

법정 스님을 떠올리면 사명 스님 청송사靑松辭가 절로 입 안에 감돈다. 하늘이 뚫린 듯 비가 억수같이 퍼붓던 여름날, 곤지암에 있는 ‘보원요’로 도예가 지헌知軒 김기철선생(78)을 찾았다. 지헌선생은 79년, 법정 스님이 펴낸 수필집 <서있는 사람>을 읽고 큰 감동을 받았다. 스님이 다기茶器를 구하려고 인사동엘 가셨다가 쓸 만한 건 너무 비싸고 그렇지 않은 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못 사고 되돌아오셨다는 내용을 보고, 스님을 잘 안다는 이웃에게 “스님께 다기를 한 벌 드리고 싶다.”고 했다. 얼마 뒤 법정 스님과 첫 만남. 그리고 서른 해. 법정 스님은 지헌선생과 부인 본자연 보살에게 어떤 존재였을까?

지헌: 저는 불교신자도 아니고, 예법도 잘 몰라요. 여태껏 법정 스님한테 합장을 하고 절을 해본 적이 없어요. 오죽하면 날마다 산에 가서 합장 연습을 했을까요. 여러 해 동안 연습했지만, 어색하고 쑥스러워 스님 앞에서 한 번도 합장하고 인사를 해본 적이 없어요. 저희 집에 그렇게 많이 오셨어도 단 한 번도 불교를 믿으라든지 절에 나오라든가 하는 말씀이 없으셨어요. 스님은 한 마디로 경계가 없고 폭이 넓은 분이셨지요. 어려운 문제가 있을 때마다 의논드리면 늘 해결책을 주셨죠. 스님도 사람인지라 함부로 털어놓기 어려운, 이런저런 속사정을 털어놓곤 하셨어요. 오시면 아주 즐거워하시면서 웃고, 또 웃으셨어요. 우리 밥이 참 맛있다고 늘 많이 잡수셨죠. 참 좋은 인연인데, 아휴~ 그냥 좀 더 사셨으면 좋았을 걸.

본자연: 누구나 그렇지만 저희도 스님 책을 통해서 스님을 뵈었습니다. 방학 때면 식구들이 다 같이 불일암에 가서 며칠씩, 스님과 밥을 해먹고 이야기를 나누곤 했어요. 밤에는 다실에 올라가서 차 마시고 했던 추억들이 새록새록 되살아나요. 다들 스님을 가까이하기 어려워하는데, 저희는 스님을 그냥 아저씨랄까. 버릇없이 보일만큼 스스럼이 없었어요. 이번에 저희 부부 금혼식을 맞아 프랑스를 다녀오면서 스님이 계시지 않으니까 마음 한켠이 허전한 게 영 서운했어요.

지헌: 우리는 삼남매를 두었는데 규호는 남달리 장난이 심해 걱정을 좀 했어요. 하지만 스님은 규호를 제일 좋아하셨어요. 용기를 북돋아주려고 그러셨겠지만, 규호가 가장 덕성스럽다고 하셨죠.

본자연: 저희 딸은 집안 식구들이 반대하는 프랑스 유학을 스님 도움으로 떠날 수 있었어요. 사진을 배우고 나서 세 얻어 사는 조그만 아파트에서 제 친구들과 선생님, 그리고 이웃들이 보게끔 첫 전시회를 열었어요. 한 20년 전쯤 되나? 꽤 오래전 일인데. 그때 프랑스에 가신 스님이 일부러 딸이 사는 곳을 찾아오셔서 전시를 보시고는 한 말씀 적어놓고 가셨어요. “미현이 사진을 보니까 이제 안심이 된다”고. 올해 스님이 돌아가시고 난 뒤에 딸아이가 전화를 했더군요. 사진을 정리하다가 스님이 써놓으신 글을 다시 보게 됐는데 새삼 콧등이 시리고 가슴이 뭉클하다면서.

그릇 쓰임새는 그릇 그 자체에 있지 않다. 차가 담기지 않은 찻잔은 가치가 없다. 뿐만 아니라 아무리 좋은 차나 찻잔일지라도 알아주는 이가 없다면 빛을 잃는다.
“이번에 나온 연잎 茶器 아주 좋습니다. 차관과 숙우, 찻잔 그리고 퇴수 그릇까지 하나하나 만지고 바라볼수록 정이 갑니다. 물레를 돌려 만든, 판에 박은 제품이 아니고 정성을 기울여 낱낱이 손으로 빚어 만든 그릇이기 때문에 만든 이 인품이 배어 있습니다. 천연스런 때깔도 빼어나고 연잎을 닮은 숙우와 찻잔은 아주 사랑스럽습니다. 차는 좋은 그릇을 만나야 비로소 그 차가 지닌 빛과 향기와 맛을 제대로 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좋은 茶器는 차를 마시고 싶게 합니다. 좋은 다기 만들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두고두고 잘 쓰겠습니다. 남은 봄철 두루 淸安하십시오.
-2001. 4. 19 아침 새 다기를 매만지며 法頂 합장”

법정 스님은 지헌선생이 빚은 찻잔으로 차를 드시면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입술에 닿는 이 느낌이 마음에 쏙 든다. 그래서 꼭 이 찻잔만 쓴다.” 비결이 뭘까?

지헌: 글쎄 비결이랄 건 없구요. 요즘은 대개 가스를 쓰고 전기 물레를 써서 도자기를 만들어요. 그런데 우리는 정직하게 손으로 빚어 용가마에다가 소나무를 때서 자기를 구우니까 높은 점수를 주신 것 같아요. 스님께서는 늘 “때깔이 좋다.”는 얘기를 하셨어요. 저는 꽃을 좋아해서 어려서부터 꽃을 키웠어요. 그 인연으로 잎이나 꽃에 담긴 기운이 내 속에 스며들었다가 도자기를 빚을 때 손끝으로 빠져나오는 게 아닌가 싶어요. 그처럼 알게 모르게 스님에게 받은 좋은 기운이 선으로 빛깔로 드러났을 거예요. 스님은 찻잔 굽이 약간 밖으로 벌어져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래야 안정감이 있다고. 어느 해 겨울, 법정 스님을 모셔서 다기 만드는 걸 보여드렸어요. 간단한 것 같지만 숙우熟盂가 완벽하게 균형 잡히기가 쉽지 않거든요. 저는 연잎이 말린 느낌을 살려 우리 태극무늬 곡선을 재현했죠. 스님이 보시곤 “아, 좋다!”고 하셨어요. 그렇게 태어난 게 ‘법정 찻잔’이에요. 먼저 백 벌쯤 만들어 구웠는데 성적이 좋지 않았어요. 한 이십 벌이나 나왔을까? 가장 마음에 드는 걸 골라 스님께 드렸어요. 디자인 값을 그렇게 치룬 셈이죠.


지헌선생 솜씨는 남다르다. 도예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선생 댁 가마에서 도자기를 빚던 도예과 학생 손에 이끌려 참여한 공간대상에서 덜컥 대상을 차지할 만큼. 그때 심사를 주관했던 최순우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연꽃잎을 모티베이션한 이 작품을 불수감佛手柑이라며 찬탄을 아끼지 않았다. 불수감은 부처님 손같이 생겼다고 하여 붙인 이름. 이 작품은 세계 여러 나라들 두루 다니면서 우리 솜씨를 빛냈다. 지헌 선생 작품은 현대미술관은 물론 대영박물관에도 전시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올해 국립현대미술관 달력에 실린 12점, 백남준을 비롯한 빼어난 내·외 거장들 작품 가운데 선생 작품이 들었다.

중국에 가서 자금성을 본 사람이라면 그 규모에 압도당한다. 규모만 놓고 보면 자금성이 경복궁을 압도한다. 하지만 우리 경복궁은 뒤로 감싸 도는 인왕산, 북악산과 어우러져 그대로 그림이 된다. 완당阮堂이 말했다. ‘대교약졸大巧若拙’ 큰 재주는 약해 보인다고. 절대미감은 개체에서 전체로 나가는 길이다.
지헌: 요즘 절들이 불사를 벌이면서 조화로운 본디 모습을 많이 잃었어요. 그나마 송광사가 괜찮은 편이죠. 하지만 송광사 대웅전을 새로 지을 때 스님은 그렇게 지으면 조화가 깨진다고 반대하셨어요. 여러 해 전 유럽 환경잡지를 본 적이 있어요. 송광사 전각 지붕선 연결이 세계에서 가장 조화로운데 대웅전이 우뚝 솟아 안타깝다는 글이 실린 걸 보면서 법정 스님 말씀이 떠올랐죠. 이 작업장은 88년에 지어 완공했는데 마침 완공한 날 스님이 오셨어요. 집을 둘러보시고는 세 가지를 짚어주셨어요. 서까래 끝에 못을 박아서 풍경을 달았는데 “못 끝이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시고는 “현관에 섬돌을 놓고, 뒤 곁에 바싹 붙은 나무들을 쳐내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과연 스님 말씀대로 못 끝을 가리고, 섬돌을 놓고, 뒤 곁에 나무를 쳐내 깔끔히 정리하고 나니 집이 안온해지더군요. 그게 쉽겠어요? 절대미감을 갖추신 분이셨어요.

흙이 자신自身을 살라 자기磁器로 나투듯이, 흙이 좋아 흙에든 지헌선생 삶을 투영한 글이 법정 스님 손을 거쳐 세상에 고개를 내밀어 고고성呱呱聲을 울렸다.
지헌: 스님이 오시면 늘 그동안 쓴 글을 보자고 하셨어요. 집사람이 그걸 조곤조곤 읽으면 스님은 눈을 지그시 감고 들으시곤 했죠. 제가 환갑 때 스님이 “김선생, 이제 그만큼 했으면 수필집을 하나 묶는 게 어떻겠어요?” 하시더군요. 어이쿠, 무슨 말씀이냐며 손사래를 쳤죠. 그런데 스님이 원고뭉치를 가져다가 샘터사에 주셨어요. 그 바람에 <꽃은 흙에서 핀다>가 출간됐어요.(1993) 스님이 그렇게 비릿하고 구차한 소리를 하신 건 아마 전에 없던 일이 아닐까 싶어요.

지헌선생 글은 꼭지마다 선생 성격 그대로 진솔한 삶이 생생히 녹아들어 생기가 넘친다. 나그네들이 오래도록 선생을 귀찮게 구는 동안 부인 본자연 보살은 넓은 부채로 시원한 바람을 일으켜 주셨다. 그래. 바람은 저 혼자 바람일 수 없다. 움직임이 바람이다. 소리 또한 그와 같아서, 나 아닌 다른 무엇에 부딪치고 너와 내가 비벼대는 관계 속에서 비로소 소리가 된다.
본자연: 스님 글을 보거나, 뵙고 얘기를 나누다보면 우리가 생각한 걸 스님도 같이 느끼시고, 내가 좋아하는 곡을 스님도 참 좋아하시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스님한테 책이나 음악들을 소개받기도 하고, 저희 또한 좋은 책이나 영화를 보면 스님께 알려드렸어요. 한 번은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 전기 <나의 기쁨과 슬픔>을 소개해드렸어요. 나중에 그 이야기를 글로 쓰셨더라고요. 그 뒤에 ‘내가 사흘 동안만 눈을 뜰 수 있다면’이란 헬렌 켈러 수필을 보내드렸더니 신문 칼럼에 쓰셨어요. 스님한테 책을 보내드리면 좋은 책이 여러분에게 전해지는구나 싶어 헬렌 니어링이 쓴 책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도 보내드렸죠. 또 김종철씨가 펴낸 환경잡지 <녹색평론>은 창간 전에 우전 신호열선생한테 소개를 받아 창간호부터 추천해드렸더니, 스님이 말씀하실 때 많이 참고하셨어요. 영화는 <죽은 시인의 사회>를 특히 좋아하셨지요.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는 스님이 법문하시면서 꼭 한 번 읽고 보라고 권하셨던 책으로 나그네도 그 책을 읽고 나서 삶이 바뀌었다. 지란지교芝蘭之交, 맑고도 고귀한 사귐을 이르는 말이라던가?
본자연: 이 양반은(지헌 선생을 가리키며) 그전에는 거의 길상사엘 가지 않았어요. 저만 스님 법회 때 갔었죠. 그러다가 편찮으실 때부터 안 되겠다 싶어서 스님이 길상사에 오실 때는 부부가 함께 갔어요.

법정 스님 입적 뒤 지헌 김기철선생 부부 길상사 나들이가 부쩍 잦아졌다. 저녁노을이 장엄하게 지는 서산을 바라보는 세 사람이 있다. 한 사람은 “이야! 멋지다. 사진 찍어야지.”하며 감탄을 한다. 이 사람은 사물을 눈으로 보는 사람이다. 또 한 사람은 “지금 해가 지는구나. 그런데 해가 왜 지지? 붉은 노을은 대체 어디서 왔을까?”하곤 고개를 갸웃거린다. 눈과 머리로 보는 사람이다. 나머지 한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입만 벌리고 서있다. 이 사람은 지는 해와 내가 동떨어진 존재가 아니라는 걸 느꼈는데 너무 벅차서 그만,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바라보는 대상과 내가 하나 되는 경지. 우주에는 에너지가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서로 통할 수밖에 없다. 건축가 승효상은 나무에 결이 있고 바람이나 물에 결이 있듯이 땅에도 결(地紋)이 있다고 했다. 하물며 사람에게 결이 없겠는가. 사람 결은 뭘까? 목숨을 주고받으며 만드는 숨결이다.
글=법정스님 자취를 더듬는 변택주, 사진=마음을 담는 사진쟁이 이종승 | einew@hanmail.net
2010-12-14 오후 6: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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