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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방(十方)에 도량(道場) 아닌 곳이 없지만, 굳이 불전(佛殿)을 찾는 것은 깎아놓은 부처님이라도 보아야 하는 중생심 때문일 것이다. 눈으로 부처님을 만나러 다니는 것이다. 그래도 중생의 일상 중에 그보다 기대되는 일이 또 있을까.
절집에 들어 극락 아닌 곳이 없겠지만, 당우마다 각자 이름이 걸려있는 것은 아직도 이름 없인 아무데도 갈 수 없는 미혹함 때문일 것이다. 아직도 마음을 정하지 못한 것이다.
지난 해 늦은 가을날, 그날도 그렇게 절을 찾았다. 구례 화엄사. 각황전 지붕 위로 산새들이 날고, 만월당 처마 밑에는 예쁘게 깎아 널은 감들이 주련처럼 매달려 있었다. 바람 하나에 매달려 다니는 산새들이나, 하루하루 계절에 매달린 감들은 그래도 한 곳으로 마음을 정한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