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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로병사라는 말을 이제는 못하겠어요. 모를 때는 생로병사라는 말을 했는데…. 죽음이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거지. 이론적으로, 머리로는 내 일이라고 생각 하면서도 앞도 안보이고 그냥 캄캄했어요. 생사가 그렇더라고요. 쉽게 죽으려면 죽는 것 같더라고. 출가한지 29년이 다 되도록 뭐했나 싶어요. 사람들은 나더러 한 것이 많다고 하는데, 내가 볼 때는 수행도 전혀 안 돼 있고, 죽음에 대한 준비도 전혀 안 됐거든요.”
말이 쉽게 떨어 지지 않았다. 11월 30일 템플스테이통합정보센터 2층에서 동출 스님을 만났다. 밝게 웃었지만 스님은 부쩍 핼쑥해진 모습이었다. “스님, 괜찮으세요? 무리하지 마세요.” 사람들이 동출 스님에게 안부를 물었다. 염려와 안도가 묻어 있었다. 사람들은 “안녕하세요” 대신 스님의 건강부터 확인했다.
이날 스님은 불교활동가 이준엽 호남불교문화원 실장, 노귀남 불교포럼 실행위원장에게 각각 지원금 200만원을 전달했다. 지원금 전달은 스님이 2001년부터 매년 2~3명의 불교단체 활동가에게 해오던 사업이다. 3년 만에 7회 전달이 여법하게 진행됐다. 지난 9월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온 스님에게 올해 전달은 어느 해보다 의미 깊은 전달식이었다. 의식 회복 후 동출 스님은 “이렇게 끝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스님은 최근 ‘준비된 죽음’을 위해 관계를 정리정돈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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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살이 돼서 10번 하겠다고 했으니 이제 3번 남았네요. 이 활동은 나와의 약속이고, 대중과의 약속이면서 받은 것을 돌려주는 것이죠. 우리(스님)는 항상 받기만 해요. 받는 것은 부담이고, 받은 만큼 줘야죠. 100원을 받으면 1000원을 돌려줘야 한다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기도, 수행, 물질적 보시를 하든지 구체적인 행동이 담보되지 않으면 보살행 아니에요. 보살행은 삶에서 구체적으로 실천돼야 하거든요. 받을 것은 못 받아도 상관없지만, 줄 것은 줘야 해요. 인연 맺기는 쉬워도 정리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지난 9월 추석연휴 당시 동출 스님은 급성 A형 간염으로 혼수상태로 3일을 보냈다. 2009년 만성신부전증으로 한 차례 수술을 받은 상태에서 A형 간염은 치명적이었다. 위독하다는 소리에 찾아간 사람들을 스님은 알아보지 못했다.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다. 다행히 동출 스님은 의식을 되찾았다. 많이 좋아지기는 했지만 신장 이식을 하기로 했던 일도 절차상의 문제로 보류된 상태여서 약물과 투석으로 유지하고 있다.
스님은 1970년대 말 불교학생회 활동을 하다가 출가했다. 출가 후 정토회를 통해 사회 참여 운동을 했다. 에코붓다 전신인 한국불교사회교육원, 한국불교환경교육원과 정토회 월간지 <정토> 주간 활동, 1990년대 중앙승가대 신문제작을 하면서 승가와 재가가 함께 불교를 이끌어 가야한다고 생각했다.
“불교는 불교를 사랑하는 사람 것이지, 출가자의 전유물이 아니에요. 역할은 다르지만, 출가자들이 재가자를 도반이라고 생각해야죠. 이 생각은 출가할 때부터 지금까지 변함이 없어요.”
스님은 문서포교에도 앞장서 왔다. 동출 스님은 도서출판 솔바람 대표로 <신묘장구대다라니경> <불교지도자론> <불교설법전서>(전 10권) <전통사찰총서>(전 21권) 을 펴내고, <만화불교이야기>(전5권)으로 불교만화 활성화를 통해 대중포교를 이끌어왔다. 또 월간 <정토> 주간으로 문서포교와 인연을 맺은 후 설법연구원 소임을 맡아 월간 <설법>을 발행했다.
출가 후 스님의 관심은 오로지 ‘종단’ 이었다. 1994년 중앙승가대를 졸업하고 1994년 개혁회의 홍보차장, 2005년 조계종 총무원 기회국장을 역임했다. 이후 청정승가를위한대중결사를 통해 종단의 개혁과 변화를 추구해 왔다. 하지만 스님은 “오로지 관심이 종단이었던 것은 잘못된 것 같다. 종단의 개혁과 개선을 위해 뛰어왔지만 계란으로 바위치기 격이었고, 실망과 허탈감을 안겨줬다”고 고백했다.
동출 스님은 “돈 많은 율사는 없다. 계율의 핵심이 무엇인가? 봉은사 직영사찰 전환의 본질이 드러나지 않았다. 직영사찰 운영은 투명하지 않고, 수십 수백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무소유를 이야기 한다. 본질은 지적하지 않고 말장난만 하고 있다”며 올 한해 종단에서 일어난 문제에 대해 토로했다. 이어 “기득권은 견고하게 유지되고 있다. 스님들이 나라 정책을 생각하기 보다는 내 주머니만을 생각해 돈 주는 곳에 투표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앞으로 건강이 좋지 않아 청정승가 등의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지는 못할 것 같다면서도 “현재는 기득권을 인정하고 기득권 내의 합리적 운영 매뉴얼로 평가해야 한다. 종단이 1급수는 안 되더라도 3ㆍ4 급수는 돼야한다”고 주장하는 스님의 눈빛은 빛났다.
한편 이날 수상한 이준엽 실장은 본지를 비롯해 불교계 기자로 활동하다 호남불교 활성화에 원을 세우고 전북 전주로 낙향해 호남지역 불교 발전에 힘써왔다. 호남불교문화원 개원, 전북불교대학 사무처장, 한국의섬불교포교단, 동련, 파라미타 등에서 실무활동을 하고 있다.
노귀남 불교포럼 실행위원장은 통일실천사랑방을 열어 새터민과 소통하며 북한의 현실을 바로 보기 위한 시도를 해왔다. 그밖에 북한 의약품 보내기를 주도하여 성사시키고, 동북아미시사회연구소를 설립하여 북한주민들의 일상에 대한 연구를 통해 한반도평화통일에의 실질적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