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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일암으로 오르는 대나무 숲길은 바람이 다니는 길이었다. 사람의 발자국보다는 수군거리는 바람소리가 훨씬 더 잘 어울리는 길이었다. 불일암 대나무 숲길은 침묵이 고이는 길이었다. 어떤 언어도 그 바람소리 앞에서 뜻을 가질 수 없었다.
발자국도 없이, 언어도 없이 걸어간 숲길 끝에 불일암이 있었다. 부처님 모신 집 한 채와 밀짚모자 벗어놓은 요사 한 채가 가랑비에 젖고 있었다.
한 동안 불일암에 살았던 법정 스님은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고 했다. 새들이 떠난 적막한 숲처럼 스님이 떠난 암자는 적막했다. 숲에 남은 적막도 암자에 깃든 적막도 모두 떠난 이가 남긴 분명한 흔적이었다. 적막도 흔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