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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격화와 전설이 싯다르타라는 역사적인 인물을 죽이고 있는 주범이라 생각합니다. 지금 이런 것들이 싯다르타를 역사적으로 존재하게 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나도 동감합니다. 신화와 전설에 잘못 도취되면 종교의 중독증이 나옵니다. 종교의 창시자들은 필요 이상으로 우상화되거나 신격화되는 것 같습니다. 이는 특정 종교의 교단이 형성되고부터 교조 찬양주의에 빠진 신자들의 맹목적 충성심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호진 스님(前 동국대 교수)과 지안 스님(종립승가대학원장)이 주고받은 글이다. 호진 스님은 초기불교를, 지안 스님은 대승경전을 연구 중이다. 학승이자 도반인 두 스님이 글로 나눈 대화는 호진 스님이 부처님의 인간적인 모습을 찾기 위해 1년 동안 인도 성지 순례에 나서며 시작된다. 호진 스님은 인도 여행기간 동안 지안 스님과 부처님의 참 모습에 대해 고민하며 진솔한 글을 주고 받았고, 이 글이 책으로 엮였다.
<성지에서 쓴 편지>는 초기불교와 대승불교라는 서로 다른 입장에서 붓다를 논한 ‘인간 붓다에 대한 단상(斷想)’이 정리된 책이다. 책은 읽는 이에게 붓다를 주제로 초기ㆍ대승불교의 교리적인 동질성과 차이성의 지식을 전달해 주는 외에도 도반끼리 주고 받는 말 가운데에서 소소한 재미를 전한다.
두 스님은 편지가 서로 오가는 데에는 거의 한 달이라는 시간이 걸려, 서로의 편지를 받아보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때문에 간간이 책에는 배달사고가 난 부분을 읽지 못한 한 스님의 다소 논지를 벗어나거나 일방적으로 써내려간 글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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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진 스님은 인도에서 섭씨 40도를 오르내리는 살인적 더위, 숙소도 제대로 없는 열악한 환경을 겪으며 부처님이 몸소 걸으셨던 수백 km의 길을 걸었다. 2600년 전 붓다가 걸었던 그 길을 걸으며 스님은 ‘싯다르타 고따마 붓다’는 인간적인 존재였다고 확신했다. 호진 스님은 경전에 나와 있지만, 잘못 전해진 부처님 일대기를 직접 체험하며 무엇이 잘못 된 것인지를 세심하게 적었다.
스님은 “붓다는 우리와 똑같은 감정을 가졌고, 육체적인 기능과 감각과 따뜻한 피를 가진 인간이었다. 매일 밥을 먹고 변소에도 갔고 밤에는 잠을 잤다. 아난다와 사리뿌뜨라 같은 제자들을 사랑했고, 데바닷다와 꼬삼비 비구들은 미워하기도 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언제 부터인가 우리들 앞에 나타난 붓다는 초인간적인 신 가운데 가장 큰 신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고 강조했다.
지안 스님은 호진 스님의 지적에 대부분 공감하며 “종교라 해서 맹목적 믿음에 빠져 인간성이 유린되는 중독 증세를 보여서는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법의 진정한 이해와 그것을 통한 인간현실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고 답한다.
이어 “오늘날 종교는 상업주의에 편승해 겉치레에 형식의 포장하기와 생색내기에 몰두하고 있다. 더욱이 수행을 표방하는 불교가 부처님의 출가정신을 상실하고 개인의 공명을 도모하면서 공리적 입지만 강화해 그것이 교화영역의 확장이라 생각하는 것은 틀렸다고 본다”고 입장을 밝힌다.
성지에서 쓴 편지|호진ㆍ지안 지음|도피안사 펴냄|1만 3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