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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 노동자들의 수행도량인 마하보디사가 양주 광적면으로 법당을 이전했다.
마하보디사(주지 와치싸라)는 2005년 안산에서 월세로 시작해 이번 이전까지 3번째다. 안산에서는 보문선원이 지원하고 와치싸라 스님이 운영했다. 하지만 매달 내야하는 월세는 큰 부담이었다. 2007년 월세가 낮은 양주의 한 아파트로 옮겼다. 이번에는 아파트라는 공간이 문제. 늘 소곤소곤 말해야했고, 뒤꿈치를 들고 살살 걸어야 했다. 또 이주 노동자들이 법당을 찾는 시간은 저녁 9~11시. 동네 주민들은 그들이 동네에 오는 것 자체를 불만스러워 했다. 당연히 법회도 보기 힘들었다.
와치싸라 스님과 이주노동자들은 법당을 찾아 편하게 기도하고, 대화를 나누고, 마음 편히 걸어 다니고 주위사람의 따가운 시선이 없는 공간을 늘 서원했다. 올봄, 조계사의 후원을 받아 경기도 양주시 광촌면 효촌리에 전세 보금자리를 마련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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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하보디사는 11월 6~7일 이전 개원법회 및 카티나 치와라 다나 법회를 봉행했다. 개원 법회에는 300여 이주민들이 모였다. 이튿날 까지 이어지는 카티나 치와라 다나 법회에 참가하기 위해서다. 카티나 법회는 스리랑카 스님들이 우기 안거를 마치고 재가불자들이 스님들께 가사를 봉헌하고 공양을 올리는 전통 법회다. 이 법회는 스리랑카 노동자들이 가장 하고 싶어 하는 법회라고 한다.
새로 이전한 마하보디사 주변에는 작은 공장이 있었다. 7일 마당에서는 의료봉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트인 공간에서 마음대로 이야기하고, 전통의상을 입고 악기도 연주했다. 그들에게 여유와 자유가 느껴졌다. 법당은 2층 건물이지만 30평이 채 되지 않은 공간이다. 직전에 있었던 아파트에 비하면 공간과 접근성은 떨어지는 편이지만 이사에 대한 걱정이 없고, 자유롭게 말하고 걸어 다니고, 주위사람들의 눈치를 보지 않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4년간 마하보디사에서 한국어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이연옥 국제포교사는 와치싸라 스님을 보자마자 “탁 트인 주변환경과 더 이상 ‘쉿’이라며 조용히 시키지 않아도 되니까 좋네요”라며 축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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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당은 이들에게 먼 타국에 와서 문화, 언어, 음식을 느낄 수 있는 의지처다. 또 법률, 여권 등에 문제도 해결해 주고, 의료사고가 났을 때에는 보호자가 돼 주기도 한다. 특히 스리랑카 사람들은 관혼상제를 비롯한 가정의 소소한 일들까지도 스님들과 대화를 나누고, 기도를 함께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자국인 스님과 기도하고 고민을 털어 놓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된다. 이주노동자들이 그리는 것은 고향에 대한 향수였다.
와산데(35)는 “스리랑카 생각날 때면 이곳에 온다. 하지만 하루에 12시간을 일하고 있지만 지쳐있다가도 여기 오면 좋다”고 말한다.
산자야(24)는 내년이면 한국을 떠나야 해 아쉬움이 남지만, 한국에서의 새로운 문화 경험은 자신에게 커다란 변화를 줬다. 얼마 전 한국인들의 도움으로 허리 디스크 수술을 받았다. 그래도 가장 고마운 것은 스님이었다. 산자야는 “와치싸라 스님은 스리랑카 노동자들이 아파서 병원에 입원해 있으면 직접 스리랑카 음식을 해서 가져다주신다. 아플 때에 부모님 생각도 많이 나고, 입맛도 없다는 것을 아시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가얀가(31)는 “한국에 스리랑카 절이 있어 좋다. 회사에서 안 좋은 일 있다가도 여기 오면 마음이 좋아지고 좋은 생각을 하게 된다. 처음 한국 음식, 문화, 날씨 모두 적응이 되지 않았고, 말도 안 통해서 힘들 때 마하보디사는 큰 힘이 됐다. 노동자들이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된 것을 보고 가게 출국하게 돼 기쁘다”고 했다.
스리랑카 스님인 난다 스님은 동국대 선학과에 재학 중이다. 스님은 “한국에 있는 스리랑카 스님들 대부분은 공부를 하기 위해 왔고, 한국 사찰에서 초대받아도 우선 학교를 다닌다. 이주민을 위해 활동하는 사람은 드물다. 와치싸라 스님 같은 사람은 없다. 나도 그저 조금씩 돕고 있을 뿐이다”며 안타까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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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치싸라 스님 인터뷰
“한국 떠날 때까지도 한국불교 모른다”
충분하지는 않지만 법당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항상 언제 이런 공간이 생길까 하고 고민했다. 이제는 비교적 자유로운 공간에서 다양한 문화행사 등을 하면서 좋은 쉼터가 될 것 같다. 최근에는 조계종에서도 관심을 많이 가지고 도움을 주고 있지만 과거에는 스리랑카 사람들이 외롭고 힘들어도 갈 곳이 없어 교회를 갔다. 그곳에서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으니까. 쉬는 날 혼자서 기숙사에 있으면 외롭고, 사람을 만날 수도 없다. 그렇다고 쉬는 주말까지 회사사람을 만나겠는가. 사람들은 한국 사람과 친해지고 싶어서 교회를 다니기도 했다. 때로는 출국하는 날까지도 한국에 스님이 있고, 불교가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있었다. 아직도 부처님오신날 축제를 보고서야 한국이 불교국가라는 것을 안다. 그만큼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불교계에서도 관심을 가지고 활동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개신교로 개종하는 것이다. 최근에도 신심 깊었던 청년이 교회에서 결혼 후에 집을 준다고 하자 그만 개종을 하고 말았다. 이주노동자의 개종은 스리랑카에서 더 큰 문제를 일으킨다. 이들이 한국에서 개종을 하면 스리랑카에 남겨진 가족 모두 개종해야 한다. 가족들은 돈을 버는 가장의 종교를 따라가게 된다. 또 스리랑카의 불교문화까지도 뒤바꿔 놓으려는 움직임이 있다. 특히 스리랑카, 미얀마, 태국 등 남방불교 사람들을 위한 한국 불교계의 배려가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