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맵 제시와 의욕적인 사업 추진에도 불구하고 제33대 집행부의 지난 1년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토지처분금 활용안, 승려교육 제도 개혁안 등으로 대표되는 총무원장 자승 스님의 개혁드라이브는 출발부터 곳곳에서 삐걱댔다. 봉은사 직영사찰 지정 논란은 정치권 외압과 결부돼 자승 스님의 총무원장직 조기사퇴설까지 회자되기도 했다.
최근에는 봉은사 땅밟기, 대구 동화사 동영상 제작ㆍ배포와 팔공산 역사문화공원 계획 무산 등 개신교의 강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승려개인명의 재산의 종단 출연령’은 시행 전부터 종도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힌 대표적인 경우이다.
사유재산출연에 동의하는 유언장을 작성하는 스님들에게 노후복지를 종단이 확실히 책임지겠다는 확인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특히 법안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사유재산 논란은 일반인들에게 ‘무소유’여야 할 출가자를 사재에 집착하는 집단으로 비춰지기도 했다.
중앙종회의원 정범 스님은 “사유재산출연과 관련한 법안 제정 전 충분한 논의가 부족했다. 법안 제정 후 논의가 되면서 좋은 내용이었음에도 성과가 따르지 못했다”고 말했다.
스님 외에도 집행부가 명분만 믿고 의욕적으로 정책을 강행하다보니 홍보 등에 미숙했다는 지적은 심심챦게 들린다.
승가교육 제도 개혁도 기존 강원 관계자 등으로부터 거센 저항이 있었다. 기본교육기관 조정과 교과과정 개편, 전문교육기관 다양화, 재교육 강화 등 올곧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자승 스님은 이러한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3월 10일 승가교육진흥위원회를 출범시켰다. 강원 교직자를 중심으로 한 교육개혁 반발은 종단 중진급으로 구성된 승가교육진흥위원회의 권위와 연이은 공청회 등으로 설득ㆍ무마되긴 했으나, 강원 교직자의 처우에 따라 갈등의 불씨는 여전하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종헌종법상 재가불자도 종도로 명시돼 있음에도 승가교육 개혁에 치중한 나머지 불교를 연구하는 재가자를 소외시킨데 대한 아쉬운 소리도 들린다.
최용춘 불자교수협의회 회장은 “한국불교를 중국불교의 변방으로 여기는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해외대학서 한국불교를 연구하는 연구자에게 연구비를 지원하는 것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수교육을 세분화ㆍ전문화해 상설운영하고 교육 대상을 본말사주지에서 종단의 모든 승려로 확대한 것은 성공적이었다. 연수교육은 주지인사고과제와 연결됐다.
일부 사찰이 종단에 등록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 스님 또는 문중을 중심으로 주지직을 독식하고 있는 현실에서 주지인사고과제가 얼마나 실효를 거둘지는 미지수이다.
토지처분금 활용안을 골자로 한 ‘사찰부동산관리법’도 종도 반발에 부딪혀 명분과 취지가 빛바랜 정책의 한 예이다.
제도 시행은 초기부터 큰 걸림돌을 만났다. 일부 교구본사가 총무원의 토지처분금 활용안에 노골적으로 반대하고 나섰던 것. 교구본사들은 교구별 토지처분금 편차가 커 해당 교구의 토지처분금은 해당 교구내에서 활용돼야 한다는 논리를 앞세웠다.
교구 이기주의에 의해 토지처분금 활용안은 당초의 취지와는 다르게 본사주지회의와 중앙종회를 거치며 해당 교구내에서 토지처분금을 활용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33대 집행부는 취지가 좋은 제도를 재료 삼아 레시피 격인 로드맵까지 작성했다. 매 월ㆍ분기별로는 해당 사업의 진행 정도를 점검하는 치밀함까지 갖추며 행정을 집행해 왔다. 처음 의도와 다르게 정책이 변질되거나 저항에 부딪힌 것은 정치력만 강하고 행정력이 부족한 자승 스님의 한계라는 지적이 있다.
참여연대 정웅기 사무총장은 “제33대 집행부의 여러 과제들의 시도는 좋았다. 진척이 없었던 것은 역량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정 사무총장은 “(로드맵이 있었지만) 구체적인 계획도 부족하고 역량에 대한 고려도 없어 결과적으로는 공감대 형성에 실패했다”고 평가했다.
봉은사 사태는 이 같은 스님의 한계를 극명하게 보여준 예.
제33대 집행부는 수도권포교 강화 방침에 따라 3월 봉은사를 직영사찰로 지정했다. 중앙종회에서 통과에 난항을 겪던 것을 자승 스님이 직접 종회 단상에 올라 종회의원들을 설득해 통과시켰다. [정치력]
하지만 종법상 인준된 직영사찰 지정을 집행함에 있어서는 주지 명진 스님과의 갈등으로 6개월 이상을 허비해야 했다. [행정력]
다행스럽게도 자승 스님은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발군의 정치력을 발휘했다. 교육제도 개혁이 저항에 부딪혔을 때에는 승가교육진흥위원회를 만들었다.
봉은사 사태가 벌어지자 화쟁위원회를 출범시켰다. 화쟁위는 출범과 함께 내부적으로는 봉은사 사태를, 대외적으로는 4대강 문제를 안건으로 채택했다. 메가 이슈를 선점한 덕에 화쟁위는 출범과 함께 세간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이제는 제33대 집행부의 최대 성과의 하나로 손꼽힌다.
정치력으로 흥한(?) 자승 스님은 정치 문제로 크고 작은 곤란을 겪기도 했다.
5월 소신공양한 문수 스님 장례절차와 관련해서는 정치권 압력을 받아 교구장으로 축소됐다는 불교단체의 주장이 있었다. 이같은 불교단체의 주장은 정치권 압력의 사실 여부와는 무관하게 집행부에 대한 종도들의 신뢰와 도덕성에 큰 타격을 입혔다.
자승 총무원장은 자신의 권력을 탄생시킨 종책모임간 연대로 인해 곤란을 겪기도 했다.
종단 내 4대강 반대 목소리와 다르게 7월 8일 총무부장 영담 스님이 민주평통 종교인지원위원 자격으로 4대강지지 발언을 했던 것. 자승 총무원장은 영담 스님에게 불참을 권고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한 종무원은 “각 부장이 종책모임간 안배에 의해 임명되다보니 종책모임간 이익이 상충하는 경우 크고 작은 업무 혼선 및 갈등이 있기도 했다”고 말했다.
다행스러운 것은 제15대 중앙종회 선거에서 자승 스님의 정치적 기반인 화엄회가 압승을 거둬 내부적인 기반을 다졌다는 점이다.
적지 않은 내홍과 외적 갈등에도 불구하고 자승 총무원장의 지난 1년이 나쁘지만은 않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그러면서도 대중은 총무원장의 강한 리더십에 목말라하고 있다.
자승 총무원장은 11월 1일 취임 1주년을 즈음한 월례조회에서 ‘공심’을 강조했다.
‘소통과 화합’에서 ‘공심’을 화두로 삼은 자승 총무원장의 취임 2년차 행보에 대중이 주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