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3.20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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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점 따라 다양한 해석 ‘금강경’에 빠지다
김호귀 연구교수 가장 오래된 ‘금강경’ 주석서인 ‘금강선론’ 펴내
김호귀 연구교수가 최근 번역해 펴낸 <금강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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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은 <반야심경>처럼 짧지도 <화엄경>처럼 길지도 않은 적절한 분량으로 읽기 쉬우면서 대승불교의 깊은 진수를 드러내고 있어 오랫동안 대중들에게 읽혀져 왔다.

중국의 구마라습(鳩摩羅什, 344~413)이 <금강경>을 최초로 한역(漢譯)한 이후 2~300년 사이에 <금강경>에 대한 주석서가 중국에서만 900여 권이 나온 것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금강경>에 대한 관심은 지대하다.

이 중에서도 <금강선론>은 <금강경>에 대해 아주 자세한 해석이 담긴 가장 오래된 주석서로 꼽히고 있다.

이런 가운데 <금강경>주석서 번역 및 <금강경>에 대한 연구를 꾸준히 해 온 김호귀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 연구교수가 최근 <금강경>주석서인 <금강선론(金剛仙論)>을 국내에서는 처음 번역해 펴냈다.

김호귀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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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연구교수는 “<금강선론>은 <금강경>에 대한 복주(復註)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금강경>의 경문에 대해 천친이 주석한 <천친론>에 대해 다시 그의 제자인 금강선(金剛仙)이 주석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 연구교수는 “<금강경>은 인도에서 무착(無着)과 천친(天親)에 의해 일찍이 주석서로 저술됐다”며 <금강경>주석서와 <금강선론>에 대해 간략하게 들려줬다.

부처님 열반 후 4~5세기 무렵 <유가사지론>등 미륵보살로부터 많은 설법을 들은 무착은 유가행파(瑜伽行派)를 창시했다. <금강경> 해석에 난해한 부분이 많아 어려움을 겪은 무착은 일광삼매(日光三昧)에 들어 도솔천에 올라가 미륵보살을 만나 <금강경>의 뜻을 물었다. 김 연구교수는 “미륵보살이 77수의 게송을 지어 <금강경>의 대의를 일러줬다. 무착은 이를 77개의 게송으로 요약해 동생인 천친에게 암송했다”며 “이를 받아 적은 천친은 해석을 달아 <천친론>이라고도 불리는 <금강반야론>을 저술했다”고 덧붙였다.

<금강선론>은 이러한 <금강경>의 경문, 무착의 게송, 천친의 해설에 천친의 제자이기도 했던 금강선 논사의 종합적인 해설이 곁들여진 4중의 중층구조로 이루어져있다.

김 연구교수는 “이런 점에서 <금강선론>은 무착과 천친의 <금강경>해석에 대한 충실한 계승이기도 하다”며 “때문에 이 책에는 인도에서 출현하고 계승됐던 <금강경>에 대한 논서의 성격이 비교적 자세히 나타나 있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김호귀 연구교수가 동국대 선학과, 금강경학회의 강의 자료와 연구논문을 위해 국역한 <금강경>주석서 만해도 수권에 이른다.
원효 스님의 금강경 주석서 <금강삼매경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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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번에 <금강선론>뿐 아니라 원효 스님의 <금강삼매경론>도 국역해 펴냈다. 이 외에도 그는 <게송으로 풀이한 금강경><금강반야경소><금강경찬술><금강경주해><금강경약소> 등 다양한 <금강경>주석서들을 국역한 책을 펴냈다.

김 연구교수는 “<금강경>에 대한 주석서가 다양한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경전의 해석을 필요로 하는 것도 있겠지만 관점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을 붙일 수 있다는 이유 때문도 있다”며 “<금강경>에 대한 근본적 이해를 위한 <금강경>주석서들은 고전으로 전해내려 오는 것들이니 한번쯤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금강경 주석서들

# 당나라 지엄(智儼)스님, <금강반야바라밀경약소>
당나라 지상사의 지엄 스님이 보리류지(菩提留支) 한역본에 의거해 그 형식과 내용에 해석을 가한 <금강반야바라밀경약소>를 통해 <금강경>의 가르침을 깨닫고, 그것을 일상생활 속에서 적용할 수 있도록 쉽게 풀이했다.
지엄 스님이 <금강반야바라밀경약소>를 통해서 드러내려고 한 것은 실상반야ㆍ관조반야ㆍ문자반약(방편반야)의 본질에 대해서 체와 덕으로 설명하려 한 것이다. 나아가서 그 수행의 입장에서는 3종반야의 체와 상에 대해 설명을 했다는 점이 특이하다. 이것은 경문의 내용을 반야의 본질과 수행으로 구분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 당나라 규기(窺基) 스님(632~682), 〈금강반야경찬술>
규기 스님은 현장삼장을 도와 역경사업에 힘썼다. <금강반야경찬술>은 나집이 번역한 <금강경본>에 대한 주석서이다. 금강경에 대해서는 이미 당나라 시대에만 해도 900명 이상이 주석서를 냈다는 기록이 있을 만큼 대단했다. 그 가운데서도 당시에 천태지의(天台智?)의 <금강반야경소> 1권, 길장(吉藏)의 <금강반야소> 4권, 지엄의 <불설금강반야파라밀경약소> 2권 및 본 규기의 <금강반야경찬술> 2권이 사가대승사의 소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금강반야경찬술>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는 경론의 인연생기(因緣生起)를 드러내고, 둘째는 언제 누가 번역했는가를 설명하며, 셋째는 경문의 본문을 판별하는 것으로 구성돼 있다.

# 길장(吉藏)스님, <금강반야경소>
<금강반야경소>는 무착의 18주, 천친의 27단의, 소명태자의 32분과 등 다른 분과설에 대한 비판을 가하면서 나름대로 분과를 정립하고, 주석을 달아 전체를 10종으로 분별한 특징을 지닌다.

# 명나라 종륵(宗勒)과 여기(如玘), <금강반야바라밀경주해>
<금강반야바라밀경주해>는 전체의 성격으로 보면 황제의 명을 받아 선사의 주지 종륵과 강사의 주지 여기의 두 스님이 언구를 따라 간단명료하게 주석을 붙인 것을 특징으로 한다. 그래서 지나치게 주석적이지도 않고 소위 선문답적이지도 않아 누구나 비교적 쉽게 읽어볼 수 있는 수준으로 엮어져 있다.
또한 내용으로는 구마라습 번역본을 텍스트로 삼았으나, 후에 소명태자가 분과한 형식을 배제하였다. 그러면서도 이전의 이주분과의 형식은 철저하게 답습하고 있다.

# 원효 스님 <금강삼매경론>
원효 스님이 686년(신라 신문왕 6)에 북량(北凉)때에 번역된 <금강삼매경>에 주석을 붙인 책이다. 원효 스님이 주석서를 내기 이전에는 이 경전에 대한 논급이 없었다.
<송고승전(宋高僧傳)> 제4권 <원효전>에는 논을 저술하게 된 연기(緣起)를 밝히고 있다. 원래 원효 스님은 소(疏)라고 해 <삼국유사>에도 <삼매경소>로 돼 있으나, 당나라의 번경 삼장(?經三藏)들이 소를 논(論)이라고 불러, 중국ㆍ한국ㆍ일본인들이 찬술한 불교서적 중에서 논이라고 이름 붙여진 유일한 책이다.

이나은 기자 | bohyung@buddhapia.com
2010-10-22 오전 10: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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