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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라, 커피, 홍차 등 음료는 이제 세계인의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며 우리 생활에서 뗄 수 없는 존재가 됐다. 이런 음료는 단순히 사람들이 즐겨 마시는 음료가 아닌, 하나의 문화적 상징으로 자리 잡고 있다.
쌍용그룹 창업주 김성곤의 부인이었던 명원 김미희는 선진국이 되려면 이런 음료의 문화가 발전해야 된다고 강조했다. 서양과 달리 동양은 예부터 차(茶)를 즐겨 마셔왔다. 명원은 이런 동양의 차 중 특히 한국의 전통적인 다도(茶道)를 확립시키기 위해 노력했던 인물이다.
그런 그의 둘째 딸인 김의정(명원문화재단 이사장·조계종 중앙신도회장)은 명원 김미희를 아는 많은 사람들의 기억과 증언을 통해 그를 재조명하는 책을 출간했다. 김의정 이사장은 5년 간 명원 김미희를 기억하는 200여 명의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인터뷰와 동영상 제작 등을 진행했다. 책에는 200명 중 45명의 증언이 생생히 기록돼 있다.
前 한국언론재단 이사장이었던 박래부의 증언에 따르면 명원 김미희는 음료문화가 앞으로 사람들 생활에 어떠한 영향을 끼칠 것이며, 음료문화로 인해 한 나라의 문화발전이 좌지우지 될 수 있음을 예견했다고 한다.
명원은 “1952년 헬싱키 올림픽 참관을 위해 우연히 덴마크 왕실 오찬에 초청을 받았는데, 그곳에서 수십 명의 종업원이 의상을 갖춰 입고 질서 있게 음식을 나르며 테이블을 세팅하는 모습에 감동을 받고, 선진국이 되려면 음식문화가 발전해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고 설명하고 있다.
명원은 유서 깊은 안동 김씨 가문에서 태어나 어릴 적부터 다풍을 익혔다. 명원은 일제 강점기가 끝난 뒤 사회적인 혼돈을 보면서 한국 차문화 부흥을 통해 국민의 정신문화를 풍성하게 해야하는 절박감에 늘 사로잡혀 있었다.
“내가 처음 다도를 접하게 된 곳은 확실히 일본이었다. 지금부터 15년 전(1952)에 일본을 여행하며 내가 관심있게 살피고자 했던 점은, 무엇이 일본을 부강하게 만드는 원동력인가 하는 것이었다. 마침 한 가정에 정중한 차 대접을 받게 됐는데, 동작 하나하나에 정성을 다하는 진지한 모습에서 나는 일본인들의 숨겨진 위력을 보았다. 차 대접이 끝난 다음 그들이 내가 물었다. ‘한국에도 다도가 있습니까?’ 나는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일화는 명원이 본격적으로 우리의 전통 차 문화를 연구하기 시작한 계기가 됐다. 1950~1980년대 이르기까지 명원 김미희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거의 사라지다시피한 우리의 전통 차 문화를 복원하기 위해 우선, 학술적인 줄기를 세우기 위한 관련 문헌과 자료를 광범위하게 수집하고 조사했다. 당시 차 문화 연구자는 물론이며, 관련 자료 또한 전무한 시대에서 명원은 스스로 연구한 ‘한국 다도의 의식과 예절’ ‘차에는 인간을 고결하게 하는 천성이 있다’ 등의 논문을 남겼다.
또한 전통 차 문화의 실제 모습을 복원하기 위해 조선의 마지막 황후인 순정효황후 윤씨와, 김명길 상궁으로부터 궁중다례를 전수받고, 산사에 남아 있는 우리 차의 흔적을 찾아 전국을 뒤졌으며 민간의 수많은 다인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명원은 차 문화의 복원과 보급에 힘을 기울이면서 문화·여성·사회운동에도 적극 참여했다. 피폐해진 불교 사찰의 중흥을 지원하는 한편, 수많은 여성단체와 문화단체, 그리고 문화 예술인 등을 후원하기도 했다. 책은 한 여인의 삶의 자취를 통해 당시의 시대상과 차 문화의 역사를 엿볼 수 있다.
차茶의 선구자 명원 김미희|김의정 엮음|학고재 펴냄|2만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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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준비하며 어머니 재발견"
명원문화재단 김의정 이사장
“저에게는 어머니는 있으되 안 계시는 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유년 시절 가슴이 먹먹할 때에는 저의 소소한 일상을 들어줄 어머니가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제 곁엔 그런 어머니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전 어머니의 손길이 그리워 가끔 꾀병을 부리곤 했습니다.”
김의정(명원문화재단 이사장·조계종 신도회장) 이사장이 기억하는 명원 김미희는 항상 올곧은 모습의 엄격한 어머니였다. 김 이사장은 “어머니는 늘 자식들보다 다른 사람들의 말을 경청하는 분”이었다고 설명했다.
10대 시절부터 어머니와 함께 김명길 상궁으로부터 직접 궁중다례를 전수 받았던 김의정 이사장은 “차 문화를 계속 복원하고 보급시키라”는 명원의 유지를 받아 2대째 명원문화재단을 이끌고 있다.
김 이사장이 자신의 어머니를 회고하는 <차茶의 선구자 명원 김미희>를 출간하게 된 것은 차 문화에 대한 인식을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함이다.
김의정 이사장은 “처음 어머니가 차에 대해 나에게 이것저것 알려주며, 가르치져 주실때는 어린 마음에 너무 하기가 싫고 짜증이 났다. 하지만 이번 책을 발간하기 위해 5년 동안 차 역사 탐방을 하면서 저는 어머니의 다력(茶歷)을 찾을 수 있었다. 일지암과 칠불사, 그리고 제주도의 도순다원과 서광다원을 보면서 나는 복받쳐 오르는 감명 속에서 비로소 나의 어머니가 한국 다도의 선구자로 살았던 명원 김미희의 삶을 발견할 수 있었다.”
김의정 이사장은 “차는 전통종합예술이다. 차 한 잔을 마시기 위해서는 예절은 기본이며 도자기, 건축, 음식, 서화, 꽂꽂이 등 많은 것이 어우러져야만 한다”며 “어머니는 이런 차에 모든 인생을 바친 분이다. 이 책으로 인해 우리 시대 후학 차인들에게 차 역사의 길잡이가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